우지환 건축사
우지환 건축사

40대부터 어설픈 문장의 이런저런 글들을 이곳저곳에 적어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환갑의 나이가 되고 보니 철도 들지 않았는데 환갑부터 되었다는 생각에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무언가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서너 달간 먼저 길을 간 저자들의 이야기를 섭렵했다. 장고 끝에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로 내심 마음을 굳게 먹고 작년 정초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저녁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고 살아온 과정을 사실적 근거에 기초해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자 내가 걸어온 길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1년 이상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시작하면서 보잘것없는 내용이 아닌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계속 써야 하나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도 없지 않았다.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며 끝까지 쓰게 됐다. 마무리에 접어들면서 나는 무언가 남길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과 내심 흐뭇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 나와 같이 지금까지 자신의 삶의 전부를 글로 표현하게 된다면 아마도 느껴보지 못했던 신선함이 선뜻 다가오게 될 것이라는 확신은 더욱 분명함으로 다가왔다.

탈고를 마치며, 내게 남겨진 삶은 결코 우물쭈물하지 말아야 하며, 기쁨의 강도가 아닌 기쁨의 빈도인 행복한 삶을 위해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나만의 오롯한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홀로 살아가는 삶이 아닌 나를 위한 시간의 할애를 말이다. 때로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너는 네가 진정 원하고 갈망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그리고 이제는 그 무엇이 지금까지 너를 그렇게 힘들고 눈물 나게 했고, 가장으로 리더로 아버지와 어머니로 자식으로 그 맡겨진 역할에 충실하며 살아가게 하지만, 정작 스스로 하고 싶고 원했고 이루고 싶었고 도착을 희망했던 그 어딘가로 향하기 위해서는 보다 늦기 전에 자신에게 진한 사랑을 먼저 줄 수 있어야 한다.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은 삶의 순간순간이 퍼즐과 같은 기록이었지만 표현의 주저와 함께 다가오는 중압감은 나를 적지 않게 힘들게 했다. 하지만 완성을 향하는 조각난 부스러기의 글들이 나의 전 생애를 비추며 영화의 한 장면인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을 때, 내게 선명하게 다가온 것은 그 무엇에도 비할 데 없는 눈부심의 환희였다. 그 누구의 평범한 삶도, 파란만장한 삶도, 거장들의 삶도, 화려한 삶도, 그 어떤 초유의 유명한 삶도, 모두 정해진 유한한 인간의 아주 짧은 삶들이었다. 그런 과거의 모든 삶들은 지금 모두 사라지고 없다. 그렇기에 인생은 어느 외롭고 낯선 곳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며,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자 찰나일 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오직 현재라는 순간을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다음 달 초 세상에 선을 보일, 내 삶의 공간 이력서 ‘종이 위에 목숨을 스케치한 설계자’ 라는 자전적 에세이는 모든 건축사들의 가슴으로 다가가는 글이 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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