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도 건축사 자격시험 합격자 2,298명은 충격적인 숫자다. 지난 55년간 누적 합격자 숫자가 2만3,000여 명 선인데 단 일 년 만에 10%에 해당하는 합격자를 배출했다. 어떤 국가 자격시험이 이럴까? 그동안의 건축사 자격시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특출나게 2020년 시험이 쉬웠다면 이 역시 시험의 의미를 훼손시키는 일이다. 학력 사회의 성격을 갖는 대한민국에서 대학 입학시험의 난이도는 사회 문제로 종종 비화 된다. 너무 쉬워도, 너무 어려워도 문제다. 하물며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건축사 자격시험의 난이도가 고무줄처럼 왔다 갔다 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혹자는 평가의 주관성이 개입할 수 있는 시험이라는 주장도 편다. 그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소위 말해 공정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는 문제인 까닭이고, 과연 내가 치룬 시험은 그때그때 달랐단 말인가와 같은 문제 제기도 발생할 수 있다. 정확한 데이터가 공표된 것은 아니지만, 건축사 시험 합격자의 70%가 건축사사무소를 창업한다고 한다. 건축사 자격시험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게 보면 국가의 자격시험 권위와 공정성을 흔드는 아주 위험한 일이 2020년 벌어진 셈이다. 시험과 관련한 어이없는 상황이 이어지자 현장의 건축사들은 다양한 피해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중 가장 큰 반발은 시장 격화다. 혹자는 경쟁을 유도해서 양질의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경쟁이 아주 없으면 독점과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소위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 수 있다. 속된 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되다 보니 서비스의 질은 낮아지게 된다. 이런 문제 때문에 경쟁의 장점이 부각되면서 독점 불가한 시장 상황을 만들어 내려 하는 것이다. 문제는 질적 개선이 되는 경쟁을 넘어서 과잉 경쟁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다.

무차별적으로 공급된 서비스가 좋을 리 없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떤 상품이던 가격경쟁은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이다. 차별이 확실하니까 초반에는 스스로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오히려 만족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비스가 아무리 좋고, 품질과 내용이 우수하더라도 덤핑의 위협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약육강식과 생존의 법칙만 통하는 정글이 된다. 따라서 적정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시장 구성이 중요하다.

건축사를 양산하기로 작정한 당국에게 정글 경쟁으로 인한 품질 격화와 서비스 악화는 평가 지표에 없다. 오로지 숫자만 존재한다. 질이 담보되지 않는 경쟁은 위험한 일이다. 더구나 전문직의 영역에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아틀리에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대형 건축사사무소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와 악화된 경제 사정으로 정부를 비롯한 공공이 마중물을 대고 있지만, 공공 프로젝트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시장의 전망은 암울하다. 건축사 자격시험의 공정성과 평가에 회의를 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건축사는 국민의 안전을 디자인하는 국가 자격이다. 종이로만 답을 만들어내는 시험에 국한해서는 안 될 일이다. 7급 공무원도, 대부분의 기술사 시험에서도 진행하는 다층 면접 평가 방식을 도입할 때가 되었다. 교사의 경우는 강의평가까지 한다.선 하나로 수십 명, 수백 수천 명의 안전을 위협하는 건축사야말로 필기 못지않게 면접을 통한 평가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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