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건축사
최승호 건축사

경북 예천의 어느 농촌 마을에는 너른 마당과 대청이 있는 한옥으로 이루어진 동네가 있었다. 산 너머로 동이 트면 할아버지는 아룻채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소죽을 끓였고 닭 울음소리에 잠을 깬 손자는 말없이 옆에 앉아 불을 쬐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온 가족이 대청마루에 상을 펴고 저녁을 먹는 모습과 모깃불을 피우고 삼촌들과 평상에 누워 별을 헤던 기억들이 가득하다. 한 겨울이면 머리맡 자리끼가 얼 정도로 웃풍이 심하던 방 때문이었을까, 부엌과 뒷간만 있고 화장실이 없어 세수를 하려면 가마솥 뜨거운 물을 길어야 했던 서글픔 때문이었을까, 아버지는 한옥집을 헐고 양옥집을 지으셨다.

그 후로 할아버지는 아궁이에 불을 때는 수고를 덜 수 있었지만, 군불에 고구마를 손자에게 구워주던 재미도 잃어버렸다. 이것은 비단 우리 가족만의 경험이 아니며,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1970년대를 시작으로 도시에서는 급격한 인구의 증가로 소위 ‘빌라’로 불리는 서양식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건설되기 시작하였고, 농촌에서는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문화주택’이라고 불리는 도시형 양옥 건립이 추진되었다. 그동안 많은 한옥이 철거되었고 사람들의 인식에서도 한옥은 자리를 잃고 말았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 한국 문화에 대한 열풍과 전통, 친환경을 추구하는 주거문화에 대한 관심이 싹트면서 드디어 한옥은 국가정책의 대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한옥 활성화 정책은 2007년 ‘한(韓)스타일 육성 종합계획’으로 시작하여 2010년 ‘신(新) 한옥 플랜’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지난 10년간 ‘2020년 한옥 르네상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한옥 보급 확산’, ‘기술 개발 및 산업화’, ‘한옥 보전관리’, ‘한옥의 적극적 활용’을 목표로 총 24건의 세부 실천과제가 수립되어 진행되었다.

정책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한옥 인허가 건수는 2013년 1,067채, 2016년 718채, 2018년 474채로 지속적인 감소 추세에 놓여있다. 또한, 마을경관과 지역공동체를 상징하는 농촌 한옥은 생활양식의 변화와 거주의 편리, 경제성만 강조한 주택 개량과 신축공사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한옥센터에서 실시하는 ‘대국민 한옥 인식 및 수요 특성 분석(2018년)’ 자료에 의하면 응답자의 70%가 한옥에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30%는 한옥에 거주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옥에 호감이 있는 이유로는 ‘편안함’, ‘친환경적’, ‘전통적’ 등 인문학적 가치를 주로 언급하고 있으며 반대로 호감이 없는 이유로는 ‘불편함’, ‘관리·유지보수의 어려움’, ‘겨울철에 추움’ 등 성능적 가치를 언급하고 있다. 한옥 거주의 장애 요인에 대해서는 ‘정보를 취득하기 어려움’, ‘상담센터를 찾기 어려움’이 과반을 차지한다. 즉, 한옥활성화의 저해요소로 거주 성능개발 부족과 정보의 취득과 상담을 위한 전문 인력의 양성 부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전문 인력의 양성을 위해 2011년부터 대학, 협회, 교육원 등을 대상으로 ‘한옥전문인력 양성 교육기관’을 공모, 선정 후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한 해 약 150여 명의 건축 실무자를 선발하여 6개월에 걸쳐 설계·시공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과정은 현재의 한옥 건축수요에 걸맞은 규모로 예산의 효율적 사용, 양질의 강사진 확보, 실무활용 가능성 증대 등의 장점이 있는 반면 교육대상의 평균연령 증가와 다양한 분야(실내건축, 보전관리, 재료·설비 등)의 접근이 어려운 단점도 있다. 최근에는 일부 대학에서 전통건축학과, 한옥학과 등의 학사, 석사교육 과정을 신설하여 젊은 건축학도로 하여금 전통건축에 대한 종합적인 이론과 설계, 시공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매우 고무적인 시도로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전체 건축시장의 0.7% 밖에 되지 않는 한옥 시장의 작은 규모와 국가 차원의 자격제도 미비로 인해 자칫 힘을 잃을까 걱정이 든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2020 한옥 르네상스’ 슬로건을 내건 ‘신(新) 한옥 플랜’ 정책 이후에 맞는 첫 번째 해이다. 지난 10여 년간의 한옥 활성화에 대한 각계각층의 노력과 성과를 되짚어보고 앞으로 10년을 위한 새로운 목표와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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