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인의 가능성과 생명력을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에서 찾는다.… 남대문과 동대문시장은 아랍권 시장 기능의 원형인 바자_bazaar의 변형이다. 바자는 페르시아와 아프리카의 카사블랑카에서 시작되어 터키의 이스탄불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거쳐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신장, 위구르, 그리고 한국의 동대문, 남대문시장을 거쳐 다시 중국 대륙의 시장으로 연결된다. 까마득한 세계 경제의 동맥을, 독재도 못 건드리고 독점 기업도 건드리지 못하는 양대 시장의 기능을 우리가 갖고 있었던 것이다.” <백남준/동아일보1999. 4. 16>

1894년 갑오개혁에서 정부공인시장이었던 시전 육의전의 금난전권이 전면 폐지된 것은 청, 일 등의 상인들이 많아지며 일어난 현상이다. 1905년에 일제가 시행한 화폐정리사업으로 인해 이현시장의 상인들이 피해를 받게 되자, 자본을 모아 광장회사를 설립하여 동대문시장을 만들어서, 일본상인 등이 투자했던 남대문시장에 비해서 민족적 자본으로 설립되어 한국인의 시장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18세기 때부터 시전에 상대하는 민간시장으로 이현시장의 전통을 이은 것이다. 이후 동대문시장은 일제 강점기의 백화점과 같은 신식 상점이 늘어나면서 일본 자본과 민족 자본사이의 갈등아래 기층민의 거래를 주로 하는 시장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종로 예지동에 위치한 동대문시장은 현재 광장시장으로 되었고, 동대문 쪽에는 동대문종합시장이 형성되었다. 현재 광장시장부터 동대문종합시장에 이르기까지의 평화시장, 방산시장, 광장시장 등은 근대화가 진행되며 도로체계에 의해 나뉘어지며 각기 다른 수요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백남준이 통칭하여 언급한 동대문, 남대문 시장은 사실상 자본의 성격은 달랐고, 그저 시장의 북적거림을 현상적으로만 본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눈에 비쳤던 시장의 생기발랄함은 새로 만들어지는 신식 상점과는 다른 전통적인 시장의 건축유형이 주는 사람 사는 모습이었다. 이상의 <날개>의 “내가 미쓰코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하는 구절의 미쓰코시 백화점은 일본의 대자본으로 조선의 중소자본을 누르고 새롭게 형성되는 소위 신식을 배경으로 쓴 것이다. 이에 비하면 백남준의 독재, 독점이 못 건드리는 기층민의 시장에 대한 예찬은 보다 순수하다.

재래시장은 누가 뭐래도 대형화, 시스템화 되지 않은 모습에 그 매력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보다 싼 것을 찾는 것이 인간의 심리이지만, 재래시장의 에누리는 싼 것만을 찾는 것과 의미는 다르다. 대형마트는 도매와 다매로 에누리를 만들어 투명하지만, 재래시장은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한 주인의 편견으로 만들어지는 불투명한 에누리이다. 보행자 스케일의 문화생활권내에서 이루어지는 코드와 편견이다. 최근에 대형마트의 일요일 영업제한에 따른 6개 대형마트의 소송은 물건판매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대형마트로 규정이 되지 않고 재래시장과 같은 구조로 인정되며 해당 지자체에서는 영업이 허용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형과 소형업체의 차이를 물건판매를 도와주는 사람의 여부로만 본 것이다. 미국계 대형매장 C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구조인 반면에, 한국형 대형매장에는 피고용인들이 월급을 받으며 식품매장에서 판매를 돕는 것을 염두한 모양이다. 상인들의 자발성에 의해 가동되는 시장의 역학을 모르면 이런 판결결과가 나온다. 시장을 지배구조로 보는 법조인들의 표피만 본 법적해석으로, 대형마트의 소유주인 대기업만을 위한 것이며, 피고용인이 아닌 중소상인의 성장을 저해하는 것이다. 대형마트는 주인이 협동조합으로 바뀌지 않는 한 무늬만 시장이다.

한편 아케이드(Arcade)의 설치로 대표되는 재래시장 활성화 정책은 시장의 매출을 올려 주긴 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현대화사업’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분명 아케이드는 건축적인 해결만 있으나, 현대화사업에서는 생산과 수요가 현장에서 바로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시설도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유통마진을 줄이며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상품에 대해서 맞춤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할 것이다. 대기업의 독점아래 벌어지는 생산과 소비의 구조에서는 상품에 대한 믿음보다는 점점 더 유통과정이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주말에 대형마트에 주차하기 위한 30분의 시간도 스트레스를 넘어선 지 오래이다. 유럽의 건축사가 설계한 시장들도 이런 비판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엔릭 미라예스의 시장은 시에서 주도한 시장이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지만, MVRDV가 설계한 ‘MarkthalL’이라는 주상복합건물은 개발업자가 발주한 것으로 누구의 소유이다. 여기에서 시장은 다양한 형태의 상점이 공존하는 현대의 거리를 개발업자가 한순간에 집적해 놓은 것일 수만 있다. 테마파크와 같은 것으로, 고도화된 독점사회에서 다양성의 일례일 수만 있다는 것이다.

독점화되는 대형마트의 문화에서 바자르로 대별되는 시장의 DNA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건축사의 디자인보다는 노동과 부의 분배를 서로 나누어서 하는 방식의 채택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마치 영화 “설국열차”와 같은 시장의 대형화나 피라미드화의 일방통행을 제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 “파리대왕”의 결말 같은 무인도의 약육강식에서 세상의 윤리로 변하는 반전이 필요할지 모른다. 우리 중 누군가가 볼로냐에서 성공한 협동시장(COOP)과 같은 제도&시설(Institution)을 우리의 실생활과 가까워지도록 할 제도를 마련하여야 한다. 공교롭게 차 앞의 생협트럭에 “윤리적 소비”라고 적혀있다. 건축사는 이런 시장이 형성될 수 있도록 기업인들에게 시장의 DNA는 자발적인 생산과 소비의 장이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렘 쿨하스의 YES(¥€$) Regime은 새로운 시스템으로 극복하라고 그가 우리를 위해 분석해준 것이다.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가 만나며 그 이상 스스로 프로슈머(Prosumer)가 될 수 있는 곳 말이다. 이렇게 물자와 생각을 공유하는 곳이 된다면, 21세기의 시장은 광장이 될 것이다.

▲ Markthal, 로테르담, 네덜란드 2014 MVRDV
▲ 동대문시장(1900년)

 

 

 

 

 

 

 

 

 

 

 

 

▲ 시장 바실리카, 에페수스, 터키-1A.D 이곳의 바실리카는 160M 길이의 아케이드로 시장의 역할을 했다. 바실리카는 3세기에 기독교화 되며 지붕이 덥혀 교회가 되어 성당이 바실리카로 불리운다.
▲ 그랜드 바자, 이스탄불, 터키, 1455-1451년 건립. 1,200개의 상점들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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