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횟수 연 2회 확대’ 졸속추진 논란
건축사협회 반대에도 국토부 ‘시험 연 2회’ 강행
결론 정해 놓고 명분 쌓기 의견수렴

합격자 수보다 중요한 건 시험의 내용과 질!
다면평가 등 협회 요구 묵살돼
그래 놓곤 “협회가 동의했다”…아전인수격 ‘일방통행’ 구태 여전

건축사자격시험은 교육, 실무수련과 같은 일련의 과정과도 맞물려 있어 개편이라도 있게 되면 민원이 빗발치는 등 건축사 관련 정책에서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건축사 수급문제와 직결되어 시장의 구조적·시스템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여파에 따른 후유증이 생길 경우 연쇄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한 둘이 아니다. 

올해 시행되는 건축사자격시험 연 2회 확대는 정책 시행이 가져올 결과, 실행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검증, 그리고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추진된 걸까.

건축사자격시험 연 2회 확대는 본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작년 국토교통부가 주재한 ‘건축사 자격제도 개선 관련 회의’ 한 번 만에 시험 시행 횟수 확대가 결정되어 졸속 추진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가 자격시험 시험횟수 확대의 건을 포함한 5가지 안건을 심사하는데 걸린 회의 시간은 불과 2시간이었다. 회의록에 따르면, 시험 응시기회를 확대하는 편의 도모 차원에서 시험 횟수를 확대코자 한다는 국토부의 발언에 대해 2회 시행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한 대한건축사협회 의견 한 건만이 기록되었을 뿐, 새로운 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검증 논의 또는 이에 대한 어떠한 타 단체 의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회의 결론으로 국토부는 ‘2020년부터 건축사 자격시험 시행횟수를 확대하기로 함’이라고 기록했다. 결론을 이미 정해놓은 상황에서 구색 맞추기식 졸속 추진 논란이 빚어지는 이유다. 관계자에 따르면 국토부는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이 수행한 ‘건축사자격제도 운영방안 개선연구’ 결과에도 없는 내용을 회의안건으로 상정하고, 회의자료도 회의 석상 당일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결정이 얼마나 깜깜이로 이뤄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시험 확대 결론이 난 작년 3월 이후 국토부는 4월 비공개심의위원회의 서면의견서 접수를 거쳐 다음 달인 5월 초고속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하기에 이른다.

◆ 회의자료 당일 배포,
   회의안건 등 사전 논의 없이
   참석위원 의견 묻고
   이를 협회의견으로 ‘공식화’…
   제도시행 영향분석 없이
   일사천리로 밀어붙여

 

대한건축사협회 관계자는 “국토부는 시험 연2회 확대에 대해 ‘대한건축사협회의 동의가 있었다’라고 말하지만, 협회는 첫 번째 회의에서 연 2회 시험의 문제점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서면의결서에서도 합격자 과다배출의 경우에는 반대한다는 조건부 동의의견을 제출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건축사자격시험에 대한 논의는 타 단체나 학계보다 합의주체인 대한건축사협회의 의견을 가장 비중 있게 검토해야 함에도 협회 의견 또는 시장 영향·효과에 대한 검증 부분은 배제된 채 과속으로 추진한 셈이다”라고 강조했다. 국토부가 당일 회의자료를 배포했던 점에 대해서도 “회의에서 국토부가 회의자료를 당일 배포하여 사전 논의 없이 안건을 상정했던 점, 또 회의에 참석한 위원의 의견을 묻고 이를 특정 단체의 공식의견으로 삼은 점 등은 일반적인 경우와 달라 정책추진·검증에 구멍이 많다”고 지적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부는 자격시험 횟수를 확대할 경우 건축사 과잉배출로 인한 부정적 여파가 국내 건축시장 전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된 검증 한 번 없이 ‘회의 한 번, 고작 2시간’ 만에 결정해 버린 셈이 된다. 회의록은 어떤 논의를 거쳐 결과가 도출됐는지를 따져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근거이지만, 회의록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흔적조차 없었다. 의대 정원 확대 등을 두고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의료계도 정부가 코로나 정국을 이용해 형식적인 협의회 몇 번 거친 뒤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려 한 점에 파업을 불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토부가 ‘시험, 내년부터 연 2회로 확대 시행’ 제하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이후 그동안 협회는 ▲국토부와의 면담 ▲건의 공문 ▲국회 토론회 ▲국건위 및 건축사자격제도 개선 협의체 논의 ▲국토부 주최 간담회 등을 통해 수차례 협회의 의견을 제출했지만, 정책은 이미 결정이 난 상황에서 이 모든 절차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건축사자격시험 2회 시행 관련 국토부 협의 등 주요경과
건축사자격시험 2회 시행 관련 국토부 협의 등 주요경과


시험횟수 2회 시행을 두고 그동안 국토부가 “대한건축사협회의 동의가 있었다”라고 반박하는 것도 그런 점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정책추진상 부실검증, 졸속추진을 가리기 위한 면피행정이라는 지적이다.

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서에서 “국토부는 시험 연 2회 실시가 수험생이 유연하게 시험시기를 조정할 수 있도록 편의를 주기 위한 것이며, 합격자 수 늘리기는 아니라고 수차례 강조했다”며 “그럼에도 아무런 대책 없이 현재 등록건축사의 약 10%에 해당하는 인원을 1회 시험에서 배출한 것은 당초 약속과 다르다. 국토부는 현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하고, 협회와의 약속을 이행해야 함”을 촉구하고 나섰다. 졸속 정책 시행에 따른 시장 충격, 부작용을 인식하고 제도보완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와 같은 극심한 저가경쟁이 일상화된 구조에서 무작정 합격자 수만 늘리면 시장참여자 모두가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비대위는 ‘시험출제 위원 및 채점기준 공개’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자격시험에서 국토부는 문제출제 및 채점관리, 합격자 결정 등의 역할을 하고, 협회는 원서접수 등 시험시행관리만 맡고 있다. 사실 자격시험에서 중요한 것은 실무경험이 바탕된 검증방식이다. 시험의 내용과 질에 대한 개선 없이 시행 횟수만 늘어난 점도 논란거리다. 

◆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 
  “정부는 자격을 수여한 자격자가
   사회 구성원으로 제 기능을 다해
   국가·국민에 봉사하도록  보호·지원해야
   이번 시험은 건축사 자질의 문제!,
   협회와의 협의를 명분 쌓기 과정으로 여기고
   일방적으로 결론을 짓는
   국토부의 관행 중단” 촉구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은 시험 결과에 대한 협회의 입장을 영상으로 회원에게 밝히며 “국가가 자격을 수여했으면, 자격자가 사회 구성원으로 제 기능을 다해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도록 보호하고 지원할 의무가 있는 바 국토부는 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며 “이번 시험 결과의 문제는 자격자의 숫자가 아니라 자질이며, 합격자 과다배출로 자격자를 무한경쟁으로 내몰아 놓고 공공의 역할에 충실하기를 기대할 수 없으니 무책임한 탁상행정을 즉각 중지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석정훈 회장은 대한건축사협회가 건축사법에 규정된 유일한 법정단체임에도 국토부가 협회와의 협의를 단지 명분을 쌓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여기고 일방적으로 결론을 내는 점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관행을 끝내기를 촉구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협회는 국토부가 합의주체인 협회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인 점에 대해 대책을 요구하는 단체행동에 나서며 지난 9월 14일부터 청와대, 국회, 국토부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는 중이다. 오는 9월 28일은 정부세종청사, 국토부 등에서 대규모 반발 집회를 개최한다. ▲건축사자격시험 연 1회 환원 ▲건축사 면허제도 부활 ▲시험출제, 채점, 합격자 기준 개선 ▲민간대가 현실화 등을 내세우며 협회가 수긍할 만한 제도보완책이 나올 때까지 투쟁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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