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건축사협회 새 집행부가 출범했다.

회장이 바뀌는 2년마다 우리 협회의 새봄은 술렁인다. 우리는 무슨 일을 새로 벌일 때 흔히 ‘변화와 개혁’을 말한다. 오래도록 많이 들어왔기에 식상할 법도 하지만 그 말이 갖는 마력(魔力)에 빠져 새로 시작하는 집행부는 너, 나 할 것 없이 많은 일을 계획하고 동시에 새롭게 바꾸려한다.

일을 많이 하고 새롭게 바꾼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마는 이 대목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正祖와 연암 박지원이 살았던 200여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 본다. 정조는 통치의 한 수단으로 신하들에게 종종 편지를 보냈다. 그중 남인의 영수 채제공에게 보낸 편지에 ‘사람 모두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쓴 구절이 보인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有所不爲)는 <맹자> ‘사람은 하지 않는 것이 있은 뒤에 큰일을 할 수 있다.(人有不爲而後 可而有爲)’에서 유래된 말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다 하려 한다면 조직의 힘을 모을 수도 없고 그만한 시간도 없어 정작 해야 할 중요한 일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렇기에 조직을 이끌어 가는 집행부는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한 구분을 잘 할 필요가 있다.

또 한 사람, 연암 박지원은 <초정집> 서문에서 ‘문장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놓고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역설 했다. 문자 그대로 옛것을 본 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옛 것을 모범으로 삼는 사람은 낡은 자취에 구애되는 것이 病이고, 새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상도(常道)에서 벗어나는 것이 탈이다’라고 法古와 創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 다음 그는 ‘참으로 옛 것을 모범으로 삼되 변통(變通) 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 내되 법도가 있게 할 수 있다면...’이라고 말함으로써 그 해법도 제시하고 있다. 결국 법고와 창신은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동시적인 개념이다.

어찌 글쓰기에만 국한된 말일까. 오늘날 이 뜻을 우리 협회에 적용한다면 협회의 전통과 설립목적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우리 상황에 맞게 변화 시킬 줄 알고, 새롭게 만들되 그 근본을 잃지 말라는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우리 협회는 회장이 바뀔 때 마다 협회의 운영 기조가 바뀌어 졌다. 문제는, 회장 임기는 불과 2년이지만 협회는 항구적으로 존속되고 발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회장이 바뀌어도 아무런 공백 없이 움직이는 시스템의 구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른바 ‘지속 가능한 협회’를 만드는 것이다.

종(種)의 다양성이 있는 생태계가 건강하듯이 협회 회원의 인재 pool을 만들고 사무처 직원의 능력을 적극 활용한다면 직원에게는 동기부여가 되어 사기가 진작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시간 할애가 어려운 회원 참여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 결과 일의 연속성과 전문화를 이뤄 회장은 이 시스템이 잘 굴러가도록 하는 관리자 혹은 조정자 역할을 하면 된다.

1995년 3월 협회에서 발간한 <건축 개혁(안)>을 보면, 이미 16년 전에 우리가 해야 할 많은 Text에 대해 통계표와 함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대안까지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다. 16년의 세월을 넘어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는 그 보고서의 많은 Text중 필요한 것을 골라 우선순위를 정해 현 상황에 맞게 보완 정리한다면 선배 회원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뿐더러 불필요한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변화와 개혁’이라는 기치아래 우리는 2년마다 얼마나 분주했던가.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혁신이 아니라 점진적인 개선이 아닐까? 우리 내면에서 스스로 만들어 내는 고요한 움직임이 우리를 변화 시킨다. 되는 조직은 조직 내에 좋은 기운이 감돈다. 조직 내의 건강한 소통은 조직을 생기 있게 만든다. 밖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이면 그동안 우리가 소홀히 했던 ‘해야 할 일’이 보인다. ‘특별한 소수’가 아니라 ‘보통의 다수’를 배려한 일들이 물안개 걷히는 강가에 동두렸이 떠오르는 섬처럼 다가온다. 협회의 어떤 목표도 회원의 권익 옹호와 자존심 유지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

어찌 보면 법고창신은 유소불위가 전제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이 둘은 묘하게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군주와 신하로 동시대를 살아간 정조와 박지원 ­ 200년의 세월을 넘어 古와 今을 아우르는 선조들의 가르침은 오늘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하게 한다.

4월 ­

새 희망으로 가득 채워질 빈 들판을 그리며 나는 하마 마음이 설렌다.

*하마 : ‘벌써’의 충청도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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