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행정 간 도 넘은 공공 갑질에 신음하는 건축전문가의 비애
허가 업무 지연, 폭언·협박 공익제보에 감사기관은 ‘제 식구 감쌀 뿐’

건축행정, 공공발주 업무처리 간 공공분야 담당자 및 발주처들의 ‘갑질’이 도를 넘고 있다. 이런 갑질의 대상이 설계와 감리를 담당해, 그들과 자주 조우할 수밖에 없는 다수의 건축사들을 향하고 있어 연대를 통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건축사업계에서는 건축사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창구이자 조직이 파편화 되어 있다는 점도 건축행정이 복잡해지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업무 간 절차를 복잡하게 해 적기대응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건축 인허가
    법정 처리기간 초과는 예사…
    입찰 참여기회도 제한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에 따르면 지자체가 민원서류를 방치하는 식으로 법정기한을 넘겨 인허가 처리를 지연시키고, 행정심판 및 소송 패소된 민원처리를 장기간 이행하지 않으며, 각종 인허가시 법령에 근거 없는 사유로 정당한 인허가를 반려하거나 부당한 조건이나 서류제출 이행을 요구해 규제를 남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행안부가 공개한 규제개혁 저해 실태 특별점검 결과보고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광역시 ○○구에서는 건축물 용도변경 허가신청 민원에 대해 처리기한(7일)을 초과해 36일간 방치하다가, 구청을 방문한 민원인에게 취하하고 재신청토록 요청 후 허가 처리한 사례가 공직감찰을 통해 밝혀졌다. 또 ○○도 ○○시에서는 신청된 건축허가에 대해 주변 주거환경 저해 사유로 반려 처분하고, 민원인이 행정소송에서 승소해 지체 없이 허가해야 하는데도 20개월간 미이행한 사례도 나왔다. 막무가내식 민원에 따른 행정마비로 시간을 다투는 건축인허가 등의 업무 간 사회적 손실을 야기한 일례다.
○○도 ○○시는 기술용역 입찰 간 실적을 제한하면 안 되는 데도, 1년 4개월 동안 7건의 입찰에서 2억 원 이상 용역 수행업체 등으로 실적을 제한해 입찰 참여기회를 제한했다.

◆ 건축사 업무대가 무시하는
    공공발주

최근 사례도 있다. 지난 달 한 기초지자체의 건축행정 공무원이 “건축사들 조져버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데 건축사법 업무상의 성실의무로 걸면 된다”는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발언을 했다는 제보에 조직 내 감사당국의 조사가 이뤄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업무처리를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가 해당 발언을 듣게 된 A 건축사는 “수치감과 함께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면서 “억울한 마음에 민원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건축업무 담당자가 ‘건축사들을 다 조치(보완, 반려)해버려’라는 내용으로 경위보고를 했다는 감사 담당자의 ‘제 식구 감싸기’식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비단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의 기준없이 형편없는 설계대가와, 끝없는 요구가 담긴 과업지시서 문제도 대표적인 갑질 사례라면서, “과업지시서에 명시되지 않은 부대업무 강요, 부족한 용역기간 등 입찰 단계부터 사후설계관리업무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공공의 갑질 계약 문화는 업계 종사자들의 낮은 임금, 주말·밤낮 없이 일하는 ‘워커홀릭의 삶’을 강요한다”고 성토했다.    

이처럼 정부의 노동환경 개선 정책과 반대되는 일들이 공공발주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건축계의 애로사항 중 하나가 발주처의 사정으로 설계과정이 연장되더라도 설계비 등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발주처의 사정으로 과업 시간이 늘어나거나, 설계변경 및 내용 증감이 되더라도 건축사 대가는 요지부동이다. 면적이 줄어 재설계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경우, 설계비 감액을 시도하는 황당한 일도 생기고 있다. 공사비는 인건비 등 상승요인을 청구하면 대체로 인정받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관련해 건축계는 정부나 지자체 등 발주처에서 건축사 업무를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방증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 협박과 폭언,
    갑질 가해자 개인 일탈의 문제인가?

앞선 사건을 취재하던 중 같은 지역에서 귀농·귀촌 세대를 위해 농가주택을 건축해 분양하고 있는 B씨를 접할 수 있었다. 그는 “7년 전 한 지역에 농가주택을 짓기 위해 시청을 방문했는데 건축과 직원이 ‘거긴 집 못 짓는다’고 잘라 말하더라”면서 “영문이 궁금해 물어보니 ‘그냥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라’고만 말해 황당했고, 이 일로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사와 함께 시청을 4번 방문하고 방문 때마다 법과 규정을 들이밀고 근거를 따져 결국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법령을 말해줘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과 오만한 태도를 잊을 수 없다”면서 “인허가 문제로 시간을 끄는 것은 애교이고, 시정 등 행정명령 후 이행강제금 부과 조치 등의 사안들도 처리기간을 준수하지 않고, 법적 근거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문서 작성을 종용하는 등 전문성 부족과 이해할 수 없는 업무처리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불쾌감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수도권 건축학과 K교수는 “합리적인 사유와 절차를 통한 민원에 갑질이 작용하는 것은 공공이 인허가, 감독, 처벌, 용역 등의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는 우월적 지위와 전문성 부족 등의 이슈에 노출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그는 “갑질을 행한 개인의 처벌이 이뤄져도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되는 상황은 개인 일탈자를 처벌한다고 해결 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제는 건축 인허가와 관련해 건축 민원인 입장에서 제도를 다시 재정립할 필요가 있고, 일환으로 재량권의 축소 내지는 전문가들에게 인허가, 감독 업무를 맡겨 행정업무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갑질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시기이다”고 말했다.

실제 국토교통부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진행했던 건축인허가 보고서(‘건축인허가 처리기간 단축방안 연구’)는 건축허가업무의 전문화 및 민간 이양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는 “일본의 경우 일정자격을 소지한 전문가가 건축확인 업무를 전담해 건축확인기간을 단축하고 전문성을 확보했다”면서 “우리나라도 건축허가 전담 공무원을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현재 국내 건축인허가와 관련 있는 유관부서의 심의 등의 절차가 복잡화 되면서 토목이나 교통, 에너지와 도로 등 각종 심의 행정이 건축서비스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다.

◆ 건축 등
    민원인 42.5%가 갑질 경험

44개 중앙부처와 지자체, 교육청, 공공기관 등이 합동으로 조사한 갑질 피해 대표사례에서도 건축사를 만날 수 있다. 2018년 진행된 공공분야 갑질 실태조사에서 발주기관 귀책사유로 공사기간 연장 시에도 감리비 등 실비를 미지급하고, 인허가 승인, 낙찰자 선정 등을 조건으로 금품과 향응을 수수한 공무원이 적발되기도 했다. 인허가 시 부당한 조건을 부여해 불허 또는 처리지연 사례가 어김없이 등장했고, 인허가 담당 공무원이 건축사사무소 직원에게 반말을 하거나 협박한 경우와, 기술제안 용역과정에서 발주기관이 정당한 대가없이 제안 내용을 사용한 사례도 나왔다.

실태조사 간 진행된 설문 결과를 보면 실상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건축 등 민간분야 종사자의 42.5%가 공공분야의 갑질을 경험했다고 응답했고, 41%는 공공분야 갑질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피해자 대부분이 가해자가 권리·의무를 결정하는 관계가 지속돼 저항하기 곤란했다고 하소연했고, 갑질에 대해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다’는 민원인이 전체의 77.7%를 차지했다. 안타깝게도 이들이 갑질에 대항할 수 없었던 이유는 원활한 관계를 유지해야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고, 향후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해당 조사에서 공공분야 종사자들의 갑질 피해에 대한 사례도 보고됐다. 내용을 살펴보면 조직 내 갑질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에 권위주의 등 갑질 유발적 공직문화를 근본적 원인으로 인식하고 있고, 미약한 처벌과 윤리 의식 부족 등의 의견도 제시됐다. 한마디로 갑질은 윤리의식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고, 공직 종사자들 간 갑질이 적발되어도 처벌 없이 단순 경고에 그치며, 형사처벌, 징계, 인사조치 등 제재 수위도 낮아 억울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자신의 상사이자 공직자인 갑질 가해자가 받는 처벌이 약하다는 이들이 건축사 등 민원인들에게는 정신이 피폐해질 만큼, 직업적 회의를 가질 만큼의 갑질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셈이다.

경기도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 중인 이 모 건축사는 “인허가 업무를 처리해야만 하는 입장에서 철저하게 스스로 ‘을’이 됐던 건 아닌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면서 “그럼에도 ‘앞으로도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인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절대 안 될 말이라고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혼자 대응하면 힘들고 소모적인 일이 되는 만큼, 피해구제 창구를 일원화해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고질적이며, 반복적이고 고의적인 갑질 행위 등 부패·행동강령 위반 등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취하고 있다”면서, “갑질 피해에 대해 국민신문고 갑질피해 신고센터나 카카오톡 ‘국민콜 110’을 통해 365일 24시간 채팅상담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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