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사·의사·교사 등 주요국 전문 자격시험 간
면접 또는 구술 테스트, 건축사 시험에는 없어
건축현장 각종 안전사고로 윤리 강화 필요성 증대…
건축사 사명감 등 면접시험에서 검증 가능

건축사 자격시험이 내달 20일 시행된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확산으로 예정됐던 3월보다 석 달 연기돼 치러지게 됐다.
올해는 예비시험이 폐지되고, 하반기 추가 자격시험이 예정돼 년 2회 실시되는 등, 사실상 개편된 시험제도 시행 원년이라고 할 수 있다.

◆ 건축사 자격시험, 건축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와 판단 담보해야

건축사 자격시험을 앞두고 건축사 본업인 설계와 감리 업무의 이해를 위해 교육과 실무수련의 과정들이 평가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건축사 자격시험이 ‘시험을 위한 시험’에 급급하고, 단순암기식 문제가 제시되는 등 시험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수도권에 있는 한 대학 건축학과 L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5년제 인증과 실무수련, 시험 횟수 확대 등은 미국 등 국제사회 기준에 부합하는 건축 교육과정과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를 국내에 도입하려는 의도였다”면서 “하지만 시험 시스템에 한정하면 미국은 국내 사정과 비슷하게 모범답안이 있는 형태이고, 시험을 위한 지식만 습득한다면 실무에 익숙하지 않아도 되는 맹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건축사 자격시험이 건축사 역량제고를 위한 성격을 가지려면 설계 등 건축사 고유 업무에 대한 이해와 실무수련 노력이 평가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 건축사 자격시험은 직업계고와 비전공자 등을 위한 예비시험과 본시험으로 나눠 진행되던 체계에서 교육부장관으로부터 인정받은 기관이 인증한 건축학 대학(5년제)이나 대학원을 졸업하고, 건축사사무소에서 3년 이상 실무수련을 받은 사람에 한해 응시자격이 부여되고 있다. 글로벌 설계시장 개방에 대비해 국내 건축사 자격제도를 국제적 수준으로 구축하고, 건축사의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시험체제가 개편되었기 때문이다. 제도시행 이후 2020년 5월 현재 60개의 5년제 건축학인증 프로그램이 개설돼 있다.

건축사 자격을 획득한 일선 건축사들 역시 건축사 자격시험이 한 단계 진일보해 업그레이드돼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고 있다. 현재 건축사 자격시험이 다른 국가전문자격 시험에 비해 실무능력 이해를 묻는데 인색하다는 평가이다. 이는 자격 취득 후 건축물 설계와 감리업무 등의 수행률이 낮은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업계 진입 15년차를 맞는 A 건축사는 “건축에 대해 종합적인 이해와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담보해야 하는 시험인데 건축물 안전 등 관련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평가하는데 충분치 못하다”면서 “시장에 진입하자마자 능숙한 업무수행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건축사 자격을 증명하는 시험이라면 업무역량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게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 예비시험 폐지로
    건축법규 소홀해져
    시험과목 등 지속적인 보완과
    개선 요구돼

시험제도가 개편되면서, 건축사 실무에서 중요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건축법규에 대한 이해를 묻는 과정이 누락된 점에 대한 아쉬움도 제기되고 있다. 예비시험에는 건축계획과, 건축구조, 건축시공과 함께 건축법규 등 4과목이 치러졌고, 본시험에서는 배치계획, 대지분석 등 대지계획과 건축설계 등의 과목이 포함됐다.

서울시 강남구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B 건축사는 “건축법규에 대한 이해는 건축사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소양이다”면서 “일례로 설계와 감리 업무 간 건축법규 미숙지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고, 건축물관리법 등 새롭게 시행되는 제도를 제때 파악하지 못해 새로운 시장개척이 지연되거나 서비스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학부생 시절에 배웠던 법규들 역시 현업에 종사할 즈음엔 개정이 되는 등 변경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법규에 대한 반복적인 학습과 점검은 필수’라고 밝히면서, “법규의 중요성을 건축사 자격시험 과정에서 반드시 환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계과목에 대한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건축설계 시험수준이 계획설계의 제도 수준에 불과하고, CAD 등 전산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업계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견이다. 앞선 수도권 건축학과 교수는 “현재 자격시험이 논란이 되고 있는 점은 실무능력에 대한 평가가 다소 결여되어 있다는 점과, 예비시험을 통해 검증이 이뤄지던 건축법규 등에 대한 전문적 지식 평가 수단이 전무해졌다는 부분, 그리고 건축설계 시험이 설계능력 평가가 아니라 설계도면 제도에 치중되어 있고, 이마저도 CAD 등 전산작업이 이뤄지는 업계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건축사는 설계와 감리업무에서 건축주와의 소통이 중요한 만큼 창의력과 논리적인 쓰기와 말하기, 그리고 건축물 안전을 책임지는 만큼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에 대한 접근이 중요한 평가 잣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인구구조와 시장구조 등
   국내 환경과 비슷한 영국의
   설계 면접은 ‘유의미’

 
우리나라는 다양성과 창의성 제고, 우수한 산업인력의 수급, 국가인적 자원개발 등의 목적으로 자격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국내 자격제도는 구별기준에 따라 국가기술자격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기술사, 기사, 산업기사 등 국가자격이 있고, 건축사와 변호사, 의사, 공인노무사, 세무사 등 개별법상 인정된 국가자격이 있다.

건축사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이 요구되는 직업이자, 자격제도를 통해 공공복리를 위해 헌법상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법률로 금지한 다음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에 한해 직업 선택의 자유를 회복시켜준 자격자다. 공공성과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때문에 건축사 자격시험에 면접시험을 추가해 실무능력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직업에 대한 사명감 등을 시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영국에서는 건축사 자격시험과정에서 면접형 구술시험이 이뤄지고 있다. 영국건축사 자격을 가진 서울 서부권의 한 건축학과 K 교수는 14일 본지와의 유선통화에서 “영국은 학생들이 파트별 과정에서 학업과 실무수련을 체험하고, 건축사 자격을 얻기 위한 최종관문으로 수련과 프로젝트 사례연구(Case Study) 부문에 대한 보고서 제출과 이를 면접시험에서 평가해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실무수련과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수련한 건축사사무소에서의 실무수련기록(일지)과 검증과정이 신뢰성을 확보하고 있고, 시스템을 통해 결과적으로 실무 전반을 이해한 균등한 수준의 건축사를 배출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수련과정에서의 활동이 담긴 실무수련일지 등이 중요한 평가 자료인데, 건축사사무소와 수련생 간 합의에 따른 허구 작성 등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영국식 건축사 자격시험제도가 건축사의 실무능력을 보장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건축계에서도 자국 내에서도 논란이 있는 미국형 건축사 시험 및 교육제도를 국내에 그대로 도입하는 것보다 설계 중심의 면접 시스템으로 건축사 역량 강화와 더불어 사회적 관점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영국식 제도 도입에 대한 요구가 확대되고 있는 모양새다. 
국내 전문자격사의 경우로 보면 과거 사법시험에서 1차 필기시험과 논술형 2차 시험, 그리고 면접시험이 이뤄졌다. 법조인으로서의 국가관과 사명감, 전문지식과 응용능력, 의사발표 간 논리력을 평가한 것이다. 지난 2018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정숙 의원은 의료인 국가시험에 인성면접 전형을 도입하는 자격시험 제도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의료행위를 하는 의사 등 의료인을 배출하는 국가시험은 필기시험과 실기시험 등의 과정을 거쳐 면허를 발급하고 있는데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만큼 윤리의식과 사명감 등을 묻는 면접시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현재 전문자격사 중 기술사와 공인노무사가 면접전형을 시행하고 있다. 공인노무사법 시행령에 따르면 공인노무사의 면접시험에서는 ▲국가관과 사명감 등 정신자세 ▲전문지식과 응용능력 ▲예의·품행 및 성실성 ▲의사 발표의 정확성과 논리성 등을 평정하게 된다.

관련해 K 교수는 “우리나라도 건축학교육인증원과 건축사등록원 등 건축사 자격을 위한 교육과정 인증과 실무수련 감독기관 지정 등이 이뤄지면서 5년제 SPC Matrix(학생수행평가항목), 실무수련, 건축사 자격시험과 실무교육 등 주요 선진국과 비슷한 형태의 교육, 시험시스템을 구축한 셈”이라면서 “기본적으로 구축된 현재의 시스템을 잘 활용하며 보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향후 실무능력 평가를 특정해 면접시험 도입을 준비한다면, 투명하고 신뢰성 있는 수련과정 기록과 검증을 위한 시스템의 정착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 건축사의
    공공성·사명감 강화 위한
    자격시험, 지금이 개선과
    보완 나서야 할 때

당장 학위과정 이수와 건축사 자격시험을 연계하는 영국과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건축학교육 인증프로그램의 근본적인 대수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시험이던 자격시험의 시행 횟수가 더해졌을 뿐 평가체제는 과거방식과 차이가 없다’는 건축계의 지적은 자격시험을 앞둔 지금 이 시점에 다시 한 번 곱씹어야 할 문제이다.

건축사는 자신이 설계하고 감리한 건축물을 건축물의 사용이 다하는 순간까지 책임져야 하는 국가전문자격자이다. 따라서 업계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전문자격자인 건축사의 자격시험은 전문적인 지식은 기본적인 평가 항목이고, 여기에 국민의 생활안전을 담보해야 하는 건축물의 설계와 감리를 맡고 있는 탓에 직업윤리와 철학, 실무적인 능력 등도 종합적으로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A 건축사는 “문제를 인식하는 수준에 있다면 해결은 쉽다”면서 “자격시험 문제는 건축사들 모두 잘 알고 있는 문제인 만큼 건축계에서 현재의 시스템을 보다 적극적이고 의욕적으로 보완해 나가자는 의지를 보인다면 당국 역시 이를 수용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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