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공공건축물의 디자인 품질 향상은 결국 지역의 교수, 건축사, 공무원에 의해 중장기적으로 주도되어야

박상현 논설위원
박상현 논설위원

대한건축사협회로부터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논설위원 제안과 함께 원고를 의뢰받고는 다소 부담도 되었지만, 그간 필자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긍정적 생각도 들었다. 학술적이고 이론적인 이야기보다는 필자의 경험담을 위주로 한국의 현대건축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분히 에세이(essay)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음을 미리 언급해 두고 싶다.

필자가 최근에 공공건축물을 주제로 강연 등을 할 때, 아이스 브레이킹(ice-breaking) 차원에서 즐겨 하는 일종의 우스갯소리가 있다. 필자의 이름(박 상현)을 거꾸로 하면 ‘현상 박’이다. 사람이 이름을 잘 지어야 하고 이름대로 운명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말이 정말 우연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학교 학창시절 때부터 설계작품들을 공모전에 출품하여 단맛과 쓴맛을 경험했었고 결국엔 단맛의 유혹을 못 이겨 건축사사무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었다.
4년간의 건축사사무소에서의 필자의 주된 업무 역시 설계공모였다. 반복적인 설계공모 업무로 지쳐갈 즈음에 대한민국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조금은 늦은 나이에 이탈리아 밀라노로 건축유학을 가게 됐다. 거기에서도 졸업논문으로 공모전 작품을 병행하게 되었으니 현상과의 인연은 필자의 젊은 시절에 대한 기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의 유학 시절 중 주말이나 방학 때면 지방의 소도시나 시골들을 많이 여행하곤 했었다. 그때마다 느낀 것이 대도시나 관광지의 화려함 속에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건축물 못지않게 소박하면서도 설계에 세심함과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는 작지만 공간적으로 풍요로운 건축물들을 경험하게 됐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한 나라의 건축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귀국 후 필자는 짧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지방으로 내려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간간이 설계작업을 병행하면서 20여 년 가까이 지내오고 있다. 5년제 건축학교육 인증프로그램이 도입된 이후에는 건축설계 교수의 연구행태도 과거 이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으로 변화된 것을 실감한다. 특히 필자처럼 건축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는 교수들은 더더욱 설계작품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실무적인 역량 증진에 매진하고 있으며 대학에서도 그것들을 연구업적으로 논문에 등가한 실적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일부 사립대학을 제외하고는 ‘겸업금지’라는 이유로 건축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이름을 걸고 다양한 설계공모에 참여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필자 역시 그러한 제약 속에서 지역 공공건축물의 디자인 품질 향상을 위해 디자인 역량을 필요로 하는 건축사사무소와의 협업으로 여러 공공건축물의 설계공모에 참여해왔다. 하지만 당선이 된 후에도 그 실적물에 대한 크레딧(credit)을 법적으로 보장받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5년제 건축학교육을 받고 서울의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수련을 하고 다시 고향인 지방으로 내려오는 제자들에게 앞으로의 지역 공공건축물의 디자인 품질향상에 대한 많은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에는 서울과 지방 학생들의 설계 능력이 어느 정도 평준화되었음을 실무나 학계에서 공감하고 있는 바이다. 다양한 공모전에서도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을 포함한 지방의 학생들이 우수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고 그것을 발판으로 서울 소재의 유수한 건축사사무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으며 최근의 건축사 자격시험 결과에서도 다양한 학교 출신자들이 합격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필자 또한 힘들고 고된 과정인 줄은 잘 알지만 학생들에게 다양한 공모전에 도전하도록 격려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공공건축가 제도에 대해서도 몇 마디를 첨언하고 싶다. 서울에서 시작된 공공건축가제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지켜보면서 많은 우려 섞인 생각을 하게 된다. 지역의 공공건축물의 디자인 품질 향상은 결국에는 지역의 건축사들에 의해 중장기적으로 주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급하게 성과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서울이나 외부인사의 수혈을 통해 견인차 역할을 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지속가능하지는 못 할 것으로 판단한다. 그것보다는 지역의 공공건축물이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이고 시스템적인 보완책이 더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오랫동안 지역에 있으면서 지역에도 능력 있고 훌륭한 건축사, 교수 등의 전문가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일례로 충남연구원 내의 공공디자인센터에 대한 언급을 하고 싶다. 필자 역시 5년 가까이 센터의 운영(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충남 소재의 거의 모든 공공건축물들에 대한 컨설팅을 자문 또는 디자인 제안 형태로 행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크게는 센터의 연구원, 건축사, 교수 자문위원, 발주처 담당공무원이 함께 현장에서 만나 상황을 파악한 후, 1∼2주 정도 후에 자문 결과보고서를 전송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물론 시간과 노력의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서 정말 건축에 대한 사랑과 열정 없이는 힘든 일이지만, 거듭할수록 미약하나마 지역 공공건축물의 디자인 품질 향상을 위해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인지 많은 타 지자체들이 관심을 보이고 벤치마킹하려고 한다는 이야기와 광역공공건축지원센터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리는 것 같다.

같은 맥락으로, 필자가 최근 5년간 주력했던 일 중 하나가 설계공모(현상설계) 관리·평가용역이다. 평소에 학교건축에도 관심이 있던 차에 우연한 기회에 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에서 발주한 설계공모 평가용역을 시작하게 됐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에 힘입어 다양한 공공건축물들이 단순한 최저가입찰방식에서 벗어나 설계공모로 최적안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변화되었고 이제부터는 소규모 공공건축물까지도 설계공모를 하도록 법제화되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발주처 입장에서는 업무가 늘어나게 되고 게다가 설계실무에 대해서 잘 아는 전문가가 부족하다보니 외부 전문기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이제까지 12건의 설계공모 관리·평가용역을 통해 모두 22개의 공공건축물의 산파 역할을 했다는 데에 나름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어찌 보면 잘 해도 좋은 소리 듣기 어렵고 조금이라도 못하면 구설수에도 휘말릴 수 있는 일이기에 적잖은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이제는 수차례의 경험에 힘입어 운영의 묘와 요령이 어느새 노하우(know-how)로 체화된 것 같다.

설계공모 관리·평가용역을 해오면서 특히 제안공모에 대해서는 조금 더 다변화가 필요한 것을 느낀다. 현재의 제안공모는 그 규모가 크건 작건 이미 유사용역에 대한 실적이 있는 업체, 그러다보니 어느 정도 규모와 조직이 갖추어진 데만이 응모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앞으로 설계비 1, 2억 미만의 지역의 소규모 공공건축물의 경우에는 실적보다는 인적 구성, 과업수행계획 등의 아이디어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품질 향상을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이러한 소규모 공공건축물의 경우에는 건축사 자격을 보유한 교수들에게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2020 경자년에도 지역에 좋은 사회적 공공프로그램이 담긴 공공건축물이 생겨나기를 기대하며 교수, 건축사 및 공무원과 같은 지역의 건축인들이 합심하여 지역의 공공건축물의 디자인 품질 향상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적극적으로 앞장서 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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