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람에 따라 다른 동부콩 용도
하나만 알고 둘 모르는 우리는
그 하나로 얼마나 사람들을
매도하고 단죄했을까


“여보, 당신 좋아하는 동부 콩을 깍지 채 팔기에 사왔는데, 저녁밥에 넣게 까줄래요?” 시장 다녀온 아내의 밝은 목소리에 “그거야 내 전공이지, 알았어요” 대답하고 식탁에 신문지를 깔고 장바구니에서 동부를 꺼냈다. 동부를 까는 것은 아주 쉽다. 길쭉한 동부를 양손의 엄지와 검지로 쥐고 살짝 비틀면 톡톡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여물지 않아서 그런지 동부깍지를 비틀어도 가운데가 잘릴 뿐이었고, 손톱을 이용해 봐도 손톱만 얼얼할 뿐 까지질 않았다. 할 수 없이 칼로 쪼개보니 대부분 삶은 보리만한 덜 여문 것들만 있었다. 아무리 장삿속이라지만 이런 걸 베어 판 농민이나 상인들에게도 화가 났기에, 다음에 그 가게에 갈 때 잊지 말고 항의하라고 아내에게 일렀다. 제 맛이 나지 않는 덜 여문 동부 밥을 먹은 탓인지, 제대로 아물기도 전에 베어진 동부의 애처로움 때문인지 그날 밤, 꿈속의 나는 고향 집 툇마루에서 콩을 까고 있었다.
우리 집은 늦봄의 완두콩부터 초여름의 강낭콩 그리고 늦여름부터 추석 무렵까지 동부나 두렁 콩을 안채 툇마루에 걸터 앉아서 깠다. 특히 추석 때가 되면 송편에 넣을 콩을 많이 깠는데 그럴 때는 손톱 밑이 아파오기도 하였다. 이런 단순작업이 재미있었던 것은 가족 간의 끝말 이어가기나 이야기 이어가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옛날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었대요.” “그런데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었어요.” “하루는 할아버지가 산에 가서 나무를 하는데 아기울음소리가 들렸어요.”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빨간 포대기에 싸여있는 아기를 보았어요.” 이렇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대부분 “옛날에”로 시작되었지만 주인공이 같은 경우에도, 산과 바닷가로 장소가 바뀌고 자식과 재산이 없기도 하고 많기도 하는 등, 전개과정이 매번 달랐기에 흥미진진하였다. 이야기 이어가기가 이토록 늘 재미있었던 것은 갓 시집온 형수가 문학에 조예가 있어 이야기판을 극적으로 바꾸는 등 항상 리더의 위치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갔기 때문이었다. 콩 까기가 끝나면 이야기로 부른 배를 내밀고 얼얼한 엄지손가락을 맞잡아 기지개를 폈는데, 어떤 날은 별똥별이 소리 없이 밝은 선을 긋고 밤하늘로 사라져 갔다.
송편의 소는 검은콩 동부 깨 등이 있는데 콩을 제외한 소들은 단맛이 들어가 있다. 그렇기에 어린 날의 나는 단맛 없는 콩 송편이 먹기 싫어 겉모습을 유심히 보면서 골라냈다. 그리고 흑임자 송편은 달기는 했지만, 가끔 깨알이 씹히는 소리와 입술이 검어져서 싫었다. 가장 맛있는 것은 우윳빛의 동부송편이었다.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사흘 후 아내가 말했다. “그게 까서 먹는 동부가 아니랍니다. 깍지 채 볶거나 삶아 반찬으로 먹는 거래요.” 어릴 적 시골에서 살았어도 반찬으로 동부를 먹어본 적이 없었기에 이는 놀라움으로 다가왔고, 스스로의 무지는 생각지 못하고 무조건 불신부터 하면서 상인과 농민을 매도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올 추석, 형님 댁에서 동부소가 담긴 송편을 먹으면서 “나는 단편적인 지식으로 아는 체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단죄하고 상처를 줬을까” 돌아보았다. 깔 수 없는, 까서는 먹을 수 없는 반찬거리 어린 동부를 억지로 깐 후에 얻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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