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세리 벽화마을

장양순 건축사l승인2018.09.0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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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아파트를 늘리는 재개발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고 주거환경 개선의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한 이래, 눈에 띠는 변화는 벽화마을의 탄생이다. 이러한 벽화마을은 환경개선과 함께 국내외 관광객의 증가로 주민소득이 증대하는 긍정적 효과도 가져왔지만, 약삭빠른 투기꾼들이 집을 사서 가게를 내는 바람에 서민들의 주거비가 높아지고 관광객의 소음과 쓰레기투기 등으로 주민의 삶에 고통을 주는 반작용이 나타났다. 그로 인하여 서울 이화마을의 경우 계단에 그려진 그림을 지워버린 주민이 구속 되는 등 갈등을 빚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부산의 경우 40여 개소의 벽화마을이 생겼다. 이들은 대부분 주민의견 수렴과 미술가와 벽의 선정 등에서 철저한 계획의 부재로 주제와 정체성을 찾을 수 없고, 그러다 보니 개개의 작품성을 떠나 어디를 가나 정체모를 ‘천사의 날개’ 그림 등 무개성과 일관성 없는 벽화마을이 되어버렸다.
얼마 전, 평소 교류가 있던 서울 신길동 품세리마을의 벽화제막식에 초대 받았다. 담장의 벽화는 놀랍게도 어린 손자를 키운 할머니 이야기였다. “한없이 작게만 느껴지던 네가 이곳에서 언제 이렇게 컸나”로 시작하여 ‘형편 상 잘해주지 못해 미안했던 할머니’가 “어릴 적엔 내가 너에게 귤을 먹여줬는데, 이젠 네가 내 입속에  귤을 먼저 넣어주는구나”라며, 다 큰 손자를 대견해 하는 모습들을 22개의 문장에 담아 그림과 함께 표현한 것이다. 이는 주민들이 쓴 글들을 모아 논의 끝에 선정하여 다듬은 것들이었다.

골목길 벽화에도 철학과 특성 필요
무개성 벽화의 새 지평 열어
내 담장이 남 위한 것 될 때
사랑과 공동선의 마을이 될 것이다


귤 하나 까서 드리고 소주 한 잔 할머니와 나누는 것은 일상가정의 보편화된 풍경일 수 있다. 그런데도 잔잔한 감흥에 젖는 것은 부모가 용돈을 주지 않는다고 살인하는 세상, 가족이 모여도 각자 모바일에만 집중하는 개인주의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골목을 지나는 어린이들은 매일 이 문장들을 보면서 “나도 크면 부모님과 할머니를 즐겁게 해드려야지”라 생각할 것이고, 어른들은 ‘내 자식 내 손주도 정성을 다하면 그리 하겠지’란 바람을 가질 것이다. 근묵자흑近墨者黑 근주자적近朱者赤이라, 수천·수만 번을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그리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기에 맹자의 어머니는 세 번이나 이사하지 않았던가. 이곳에서 이런 벽화를 조석으로 보고 자라는 어린이들은 반드시 효자동이 우애동이로 클 것이다. 지하주차장과 놀이터 넓은 정원을 가진 재개발 아파트가 생활에는 편리할지 모르지만, 사랑이 담겨있는 벽화가 있는 지금 이 동네가 인성함양에선 한결 우위에 서있지 아니한가. 더구나 요란한 그림이 없어 관광객의 발길이 뜸 할 것 같고, 설령 있다 해도 배우고 가는 조용한 관광이 될 것이다. 동네주민의 열성과 지혜가 다른 벽화마을과 다른 ‘조손간의 사랑’이란 일관된 주제로 탄생한 것이다.
한옥고택에도 천하태평이나 태극팔괘 그리고 함박웃음을 담은 얼굴 등 주인이 후대에 전할 교훈이 기왓장을 이용하여 새겨져 있다. 서양에선 우리의 골목길과 차원이 다른 도시의 벽화가 멕시코와 미국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나 한 동네의 골목길 벽화는 우리만의 철학과 특성이 있어야 한다. 담장이란 가족을 위한 이기적인 산물이다. 그런데 이런 벽화를 품음으로써 이타적으로 변화하였다. 이런 담장이 많아지면 이타利他를 실천하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다.


장양순 건축사  cyss1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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