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간 방의 전통(箭筒) 책상 거문고는
공의(公義) 조화 안빈낙도 선비 삶
옷방은 있어도 서재 없는 우리는
절름발이 삶을 살고 있다


무더위가 유독 기승을 부리는 올 여름이다. 수박 한쪽 베어 물고 한동안 업무 외적으로 바빠 미처 손대지 못한 클라우드의 사진들을 정리하다보니 해남 대흥사와 일지암의 여러 모습들이 들어온다. 다산을 스승삼고 추사는 친구하며 소치의 스승이기도 한 시서화다詩書畵茶의 사절四絶 초의선사가 40여 년 간 머물던 한간초가를 보노라니 선현들의 시조가 떠오른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당 한간 지어내니 / 반간은 청풍이요 또 반간은 명월이라 / 청산은 들일데 없으니 한데 두고 보리라.” 10년 동안 모은 돈으로 겨우 초가집 한간 지었는데 반간에는 맑은 바람이, 나머지 반간조차 밝은 달이 차지하였다. 그런데도 주인은 덩치 큰 청산을 들일 수 없음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시에는 살림살이 가구는 물론 자연 이외에 그 어느 것도 등장하지 않는다. 가히 무위자연의 세계이다. 그런데 다음 시조는 어떠한가.
“다만 한 간 초당에 전통 걸고 책상 놓고 / 나 앉고 임 앉으니 거문고는 어디 둘꼬 / 두어라 강산풍월이니 한데 둔들 어떠리.” 이 또한 안빈낙도의 삶에는 변함이 없지만 사람이 만든 화살통과 책상 그리고 거문고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은 반다지나 장롱, 밥상이나 그릇 같은 생필품이 아니다. 시쳇말로 돈 안 되는 물건일 수 있다. 그렇지만 먹고사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가. 전통이 필요한 활쏘기는 사냥과 심신을 수련하는 스포츠이면서 무예이다. 거문고는 단순히 악기를 연주하는 즐거움뿐이 아니라 ‘세상은 예를 통해 유지되고 악을 통해 조화된다’는 공자의 예악禮樂사상에 기인한다. 책상은 독서를 통한 지식의 함양과 인생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확립하게 한다. 그렇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왕의 잘못을 상소하고, 외침 시 의병을 모으고 앞장서서 싸웠다. 이는 평소 연마한 활쏘기가 병기가 되고 음악으로 상하 간에도 조화와 통합을 꾀하며 독서를 통해 얻은 정의와 공의에 대한 올바른 신념을 실행한 것이다.
동서고금이 같지만, 선조들 중에도 이러한 선비들의 보편적인 삶과 상반된 소수의 졸부와 세도가가 있었다. 판소리 흥부전의 놀부네 사랑방을 들여다보자. “사랑에를 들어서며 방치레를 살펴보니 능화도배, 소란반자, 완자밀창, 모란장 오색보료, 청담홍담, 백담요와, 밀화쟁반, 호박대야, 청유리병, 황유리병, 양각등, 면경체경 옷걸이며 문채 좋은 대모책상...” 끝없이 이어지는 방의 치장과 놓인 물건들이 홍수를 이룬다.
우리는 지금 소파와 텔레비전과 식탁을 기본으로 침대와 화장대와 옷장과 문갑이 놀부네 보다 화려한 방에서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운 물질적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자녀들은 몰라도 자신이 악기하나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고 골프든 테니스든 스포츠에 직접 참여하여 즐기는 사람도 흔치 않다. 옷 방은 있어도 서재는 없고, 거실을 서재로 꾸미는 지혜도 사용하지 않는다. OECD국가 중 독서량과 문해율이 최하위권이다. 우리의 경제성장은 정신세계가 따라가지 못한 절름발이가 되었다. 인문서가 밥 먹여 주냐고 팽개치다보니 정의와 공의는 실종되고 아부만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윤리는 간데없고 사지선다형은 강퍅한 성정을 만들어냈다. 초의선사야 오르지 못할 거목이지만 궁핍한 한간 초가에서 여유로운 삶과 풍요로운 정신세계를 추구한 선비라도 닮고 싶다. 우리는 지금 화려한 놀부 방에 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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