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 위한 기다림에
발견한 주련 속 시 한수
기다림은 때로 목적과 다른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한다


자연에서 좋은 사진을 얻는 것은 기다림이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풍경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한 달을 같은 곳에 진을 치기도 한다. 열흘 전 특검 마치고 은평구청을 나오니 오후 3시 반, 가까운 한규설대감댁으로 향하였다. 평소 차 문화의 보급을 위한 명원민속관으로써 어느 고택보다도 관리가 잘 되어 있기에, 석양의 햇살이 흰 창호지에 간살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사진을 찍기에 안성맞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좋은 사진을 위해 사랑채에 머물다보니 평소 지나쳤던 주련에 낯익은 시구가 들어온다. “月白雪白天地白” 아니 이건 김삿갓이 금강산에서 시담(詩談) 할 때, 공허스님이 읊은 7언 절구가 아닌가. 그런데 옆 주련의 김삿갓 대구가 “山深水深客愁深”이 아닌 “山深水深意氣深”으로 판각이 되어 있다. 젊은 날 김삿갓 소설을 읽으면서 외워둔 몇 안 되는 시였지만 혹시나 하여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틀림이 없다. ‘달도 희고 눈도 희고 온천지도 흰색이라/산도 깊고 물도 깊고 방랑객의 근심도 깊다’는 시를 (망국을 건져내야 하는 나의) ‘뜻도 기(氣)도 깊어만 지네’가 된 것이다. 이태백 등 중국 시인들의 시가 다수를 차지하는 주련에 역적의 자손으로 이방인이었던 김삿갓의 시가 있다는 것이 의외였지만, 을사늑약을 외롭게 반대하여 파직된 후 내일을 기약하기 위해 조선교육회를 창립한 공의 뜻이 이 시의 부분을 바꾼 것이리라.
본가를 뒤로하고 비탈길을 내려오니 비원의 애련정처럼 기둥 두 개를 못 속에 담근 두간짜리 기와집 녹약정과 다성(茶聖) 초의선사가 기거했던 전라도 해남 대흥사의 일지암과 똑같이 지은 초정이 세련된 도시처녀와 소박한 시골처녀처럼 눈앞에 선다. 동네 아이들의 모여 노는 녹약정을 지나쳐 초정의 방 안에 들어간다. 차를 음미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규모라는 한 칸 방에 앉아 초의선사가 손수 달인 차를 받아 마시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상상의 나래는 고려시대 이규보의 사륜정으로 날아간다. 바퀴를 달아 그늘진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만든 이 정자의 설계서에는 방 안의 배치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방 2.4m를 가로, 세로 80cm씩 3등분하면 9개의 공간이 나온다. 가운데에 바둑판을 두고 기사가 양쪽에 앉는다. 왼쪽 3곳에는 거문고와 연주자 그리고 가수가 앉고 오른쪽 세 곳에는 술상과 주인과 시인이 자리한다. 우리 민족 최초의 모듈설계서이다. 이 초당에 둘이 마주 앉거나 넷이 자리할 때 사람 사이는 80cm 내외일 터이니 얼굴의 표정을 읽으며 격조 있는 담소를 나누기에 최적의 거리인 셈이다.
800년 시공을 넘나들다 아쉬운 대로 햇살이 창호에 그림자를 드리운 사진을 촬영한 후 초당을 나서니 녹약정의 아이들은 간곳이 없다. 마루에 오르니 안에서는 초의선사 차 맛을 상상하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초당의 옹이 지고 올곧지 못한 기둥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수덕사 만공스님 거처인 소림초당의 가늘며 멋대로 굽은 기둥에는 비할 바 없는 곧고 굵은 재목이다. 어느덧 나의 심혼은 지금 같은 한 여름철, 나무들 사이로 건너다보면 어느 것이 기둥이고 어느 것이 산 나무인지 알 수 없는 무위자연의 소림초당에 가 있다. 만족할만한 사진은 못 얻었지만 상상과 사색의 나래를 펴게 한 기다림의 시간은 때로 목적과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한다. 기다림은 결코 지루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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