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DE 사회는 선택을 고민
건축사 창작권 소멸될 수도
빅 데이터 축적 활용만이
건축사 신뢰와 생존 직결


건축학도로서는 뒤늦게 성 소피아 성당과 자연풍광을 완상하기 위해 터키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장거리 여정이라 오랜만에 비즈니스 석에 앉고 보니, 스튜어디스가 눈높이에 맞추려고 무릎을 꿇고 식 메뉴를 설명한다. 생소한 행동에 대한 면구스러움은 반주로 백포도주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없어졌다. 그녀는 세 종류 이름을 말하면서 선택하란다. 국적기이니만큼 수 백 종의 포도주 중 그들이 권한 것들은 한국인이 즐겨 마시는 것이 되겠지만, 평소 포도주를 가까이 하지 않아 모두 생소한 이름이었다. 마주친 눈으로 설명을 요구하려다 그냥 ‘달콤한 것’으로 부탁하고 보니 큐레이션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큐레이션(curation)이란 원래 미술 등 예술 작품의 수집과 보존 그리고 전시 하는 일을 말한다. 그러나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현 시대에서는 ‘선택의 문제’로 두루 쓰이고 있다. 현 사회는 선택할 것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 중에 올바르게 선택하는 것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삼성, 애플, 퀄컴의 두뇌인 모바일반도체 arm의 최고경영자 시거스는 이와 같은 IT시대를 ABCDE 사회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AI, Big data, Cloud, Data, Edge Computing으로 인공지능, 빅 데이터, 클라우드, 데이터, 모든 기기의 컴퓨터화한 세상이란 것이다. 그 이전에도 과학의 발달은 공상만화나 소설을 현실로 만들었다. 특히 창의적인 분야는 컴퓨터가 할 수 없으리란 생각을 깨버린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도 벌써 2년이 넘은 지금은 어떠한가. 많은 수련과 경험이 필요한 의료계도 AI 의사의 진단이 더 정확하고 빠르며, 예술분야에서도 가사를 쓴 후 '슬프게 또는 쾌활하게' 등 분위기를 제시하면 컴퓨터가 작곡을 해주며 이로써 음반을 내는 세상이 되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건축사의 디자인영역도 머지않아 독점적 지위를 상실하리라고 본다. 누구나 자신이 꿈꾸는 집을 컴퓨터에 조건을 넣어 디자인하면, 건축사는 법규검토나 부대설비를 추가하여 허가행위와 감리만 하는 세상이 올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유영역인 창작권이 훼손되는 것이지만 공상소설가나 만화가의 디자인이 기존 건축사들보다 더 기발할 수 있고, 더 획기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세계 최초의 팬던티브 기법으로 직경 30m가 넘는 돔을 네 기둥과 이를 연결한 아치 위에 높이 50m의 돔으로 지어진 성 소피아 성당. 이를 설계한 사람도 건축가가 아닌 역학과 물리학자 안테미우스와 수학자 이시도루스였다.
감사 피선 후 현장을 살피기 위해 특검원 직무를 수행하다 보니, 한 건축사가 설계한 다세대 쌍둥이 건물을 보게 된다. 조화든 대비든 색조라도 다르면 보기도 좋고 입주자의 선택폭도 넓어질 텐데 아쉬움이 크다. 이는 큐레이션이 아니고 과거로의 회귀이며, 공급이 많아질 때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건물이 될 것이다. 협회는 다가온 ABCDE 사회에서 건축에 대한 빅 데이터를 모아서 건축사 모두에게 개방해야 한다. 이것은 국민에 대한 질 높은 서비스, 나아가 '건축 설계는 역시 건축사에게'란 신뢰의 기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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