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론자로 망한 아테네 민주정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
종합평가 없이 한쪽 매도 
규제와 안전은 동전의 양면
다수 국민 편에 서야


“선생님, 선생님께 변론을 배우고 싶은데 수업료가 없습니다. 제가 배운 후 독립하여 선생님을 능가하면 수업료를 드리겠습니다.” 2,600여 년 전 그리스 아테네의 변론술학당에 학생이 찾아와 사정하자, 이를 딱하게 여긴 선생은 외상 수강을 허락하였다. 그 후 독립한 제자는 꽤 많은 돈을 벌었지만 수업료를 내지 않았다. 선생이 제자에게 말하였다. “재판을 하겠네.  이기면 이겼으니 받아야 하고, 지면 자네가 나 보다 나은 것이 판명됐으니 받아야겠지.” 그러자 제자가 답하였다. “천만에요. 저 또한 재판에 이기면 당연히 안내는 것이고, 지면 아직도 선생님을 능가하지 못하는 것이니 낼 필요가 없지요.”
BC6세기의 아테네는 솔론의 개혁으로 보통시민들이 참여하는 민회를 통한 민주정이 실현되었다. 웬만한 법안은 민회를 거쳐 최종결정 되었고 누구든지 다른 사람을 민회에서 고발할 수 있었다. 따라서 민회는 사실상의 최종법정이었다. 따라서 아테네 시민들은 민회에서 활약 하는 것을 출세의 지표로 삼았다. 그러다보니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변론술과 수사학을 공부하였다. 특히 부자들은 변론술이나 수사학을 자식들에게 교육시키기 위해 유능한 선생에게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였고, 이들은 뛰어난 정치적 식견과 우월한 말솜씨를 활용해서 민회에서 경쟁자들을 꺾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켰다.
결국 이러한 변론술은 오로지 자신의 승리와 그에 따른 실리가 목적이 되었다. 설령 자신의 주장이 궤변이고, 이로 인하여 사회나 타인들에게 많은 피해가 가더라도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이 논쟁에서 승리할 수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상대를 논리적 수렁에 빠뜨릴 수 있다면 어떤 궤변도 주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들을 소피스트 즉 궤변론자라고 하였다. 이러한 소피스트들의 궤변 중 대표적인 사례가 글머리의 선생과 제자의 논쟁이다. 소피스트의 어원이 지혜로운 자라고 하는데, 그 지혜를 자신의 사리에만 써먹는 자들이다. 그러하기에 아테네의 민주정은 이들에 의하여 쇠퇴하였고, 소크라테스는 두 번째로 나쁜 제도가 민주정이라 하였다.
요즈음 건축 관련 사고의 매스컴 보도를 보면 열린 입을 다물 수 없게 한다. 의정부, 제천헬스장 그리고 밀양병원화재가 드라이비트 외벽마감 때문이라고 하지를 않나, 경주지진과 의정부화재가 커진 것도 필로티구조 때문이라고 한다. 기본 발상은 다르지만 필로티구조는 르 코르뷔지에 선생이 건축의 5원칙으로 창안한 것이고, 드라이비트는 화재에 약하지만 저렴하고 마음대로 컬러를 조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불법 증축과 용도변경, 소방시설의 불비 및 정상적인 관리매뉴얼이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AI 등 첨단산업이 규제에 묶여 향후 먹거리가 없다고 하자 또 다시 규제혁파가 도마에 오를 모양이다. 역대 정권처럼 각 부처별로 수백개씩 할당이 내려온다면 국토부는 개인이 지을 수 있는 집의 규모를 증대시키거나 감리범위 축소 등을 또 내세울지 모른다. 규제와 안전을 혼동하면 안 된다. 이는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하기 사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운동에 관여된 소위 민주 혁신 양심세력들의 자기비호는 궤변도 아니다. 소피스트들의 말은 잠시 판단을 헷갈리게라도 하지만 이들의 말은 속이 훤히 다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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