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만으로는 부족, 특별한 경험 더한 건축물
기장군 어촌마을과 어우러진 건축물, 지역성 담아
신주영 건축사 “건축은 완성 후 쓰임이 더 중요”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는 새로 지어진 건축물 가운데 우수한 작품을 선정해 건축상을 수여한다. 당시 건축 문화를 선도하며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던 수상작들은 지금도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을 다시 찾아 해당 건축물의 현재 모습을 살펴보고, 설계를 맡았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2024 부산다운건축상 금상 수상작인 ‘이제호텔’(신주영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엠오씨, 부산광역시건축사회)이다.
기장(機張)은 부산광역시에서 유일한 군(郡) 지역이다. 부산에는 15개의 구와 유일한 군인 기장군이 있다. 기장군 연화리 어촌마을 입구에 자리한 2024 부산다운건축상 금상 수상작 ‘이제호텔’(신주영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엠오씨)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반적인 호텔과는 조금 다르다. ‘호텔’ 하면 떠오르는 편리하고 안전한 서비스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작은 펜션이나 독채 숙소처럼 개성과 특별한 분위기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됐다.
대지는 바닷가를 향해 기울어진 삼각형 모양이다. 건축사는 이 땅의 특성을 살려 객실에서는 바다가 잘 보이도록 하고, 도로와 마을 쪽에는 계단과 승강기 같은 시설을 배치했다. 호텔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도록 규모와 형태를 조정했다.
호텔 입구는 마을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구분되도록 안쪽 중정에 두었다. 손님들이 돌바닥길을 따라 들어가면 낮은 담장 너머로 작은 정원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동선은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차분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느끼도록 한 설계자의 의도다.
객실은 한 층에 세 개씩 배치됐으며, 방마다 구조가 조금씩 다르다. 같은 층이라도 어느 방에 묵느냐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모든 객실에는 발코니가 있어 바깥과 직접 연결되며, 특히 바다 쪽 발코니에는 작은 자쿠지(욕조)를 두어 바닷바람을 즐기면서도 외부 시선은 가릴 수 있도록 좁고 깊게 설계했다. 옥상에는 수영장이 있어 햇볕과 바다 냄새를 만끽할 수 있고, 마을 입구 쪽 식당에서는 어촌마을의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제호텔은 바닷가에 있으면서도 주택가와 가까워, 바다 전망과 이웃의 시선을 동시에 고려해야 했다. 객실 수를 더 늘릴 수도 있었지만 주변 환경을 지키기 위해 한쪽 방향에만 객실을 배치했다. 또 소규모 호텔이기 때문에 객실의 상태, 서비스, 분위기가 모두 통일감 있게 유지돼야 했다. 이를 위해 인테리어, 조경, 가구 등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와 협업했다. 조율 과정에 많은 시간이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완성도 높은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신주영 건축사는 “건축은 완성된 후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호텔의 상태는 달라질 수 있지만, 공간이 주는 감각은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깊은 발코니는 시간이 지나도 아늑함을 유지하고, 1층 로비 앞 중정은 여행의 설렘을 전하는 변하지 않는 공간으로 남는다.
신주영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Q. 이 건축물을 설계하게 된 과정과 설계 과정에서 특히 염두에 두신 점,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구현하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먼저 호텔의 방향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했습니다. 대형 호텔은 다양한 부대시설과 적정 수준의 객실로 편안함을 제공하지만, 특별한 경험을 중시하는 최근 흐름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습니다. 반면 독채 스테이는 지역성과 주인의 개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 색다른 공간을 원하는 이용자에게 적합합니다.
이제호텔은 이 두 가지 숙박 유형을 결합해, 호텔이 제공하는 편리하고 안전한 서비스와 독채 스테이가 주는 특별한 경험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산 연화리 어촌마을 입구에 자리한 이제호텔은 상층부에서는 탁 트인 바다 조망을 확보할 수 있지만, 저층부는 도로와 마을의 분위기가 방해 요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삼각형 경사진 대지의 특성을 활용해 바다 조망이 가능한 방향에 객실을 배치하고, 도로와 마을을 향한 측면에는 계단, 승강기, 서비스 공간을 두었습니다. 동시에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건물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볼륨을 세밀하게 조정했습니다.
출입구는 어수선한 주변 분위기에서 벗어나도록 중정 깊숙이 배치했습니다. 판석과 굴림석 바닥길을 따라 들어서면 낮은 담장 너머 작은 정원이 펼쳐지고, 자연스러운 재료와 익숙한 스케일의 공간, 리셉션과 카페의 분위기가 더해져 방문객이 환대받는 느낌을 주도록 했습니다.
객실은 한 층에 세 개씩 배치하되 구조는 모두 다르게 계획했습니다. 모든 객실에는 발코니를 두어 외부와 직접 연결되도록 했습니다. 특히 자쿠지가 있는 발코니는 넓게 열기보다 좁고 깊게 만들어 바닷바람을 즐기면서도 외부 시선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발코니를 감싸는 벽과 기둥이 자연 풍경을 정제해 보여 안정감을 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옥상 수영장은 부산의 햇살과 바다 냄새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경사진 도로에 면한 식당은 마을 입구에서 아침과 저녁의 활기를 느낄 수 있도록 계획했습니다.
Q. 설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제호텔은 해안가에 위치하면서도 주거지역과 인접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객실에서 바다 조망을 확보하는 동시에 인접 주거지역과의 차폐를 고려해야 했습니다. 객실 수를 더 늘릴 수도 있었지만, 주변 환경을 존중해 한쪽 방향으로만 객실을 배치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소규모 호텔의 특성상 객실 컨디션, 호텔 경험, 서비스가 모두 일관되게 유지돼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브랜딩, 인테리어, 조경, 가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했고, 그 결과가 건축계획에 반영돼야 했습니다. 협업과 조율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완성도가 높은 호텔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Q. 건축설계를 시작하면서 가지신 건축적 지향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건축은 건축물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완공 이후 어떻게 사용되는지가 본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용자가 바뀌거나 용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건축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이는 방치한다는 뜻이 아니라, 변화를 예측해 필수적인 부분은 치밀하게 계획하면서도 변화 가능성 자체를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Q. 그 지향점을 이번 작품에 잘 반영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객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건축이 만들어내는 공간감은 지속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모서리를 비워 깊은 발코니를 두었는데, 이는 세월이 지나도 아늑함을 유지하면서 바다를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합니다. 1층 로비에 들어서기 전 마주하는 중정 역시 여행의 시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변하지 않는 공간입니다. 변화 가능성을 인정하되, 변하지 말아야 할 요소를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Q. 이번 수상이 건축사님께 어떤 의미를 주었습니까?
저는 늘 스스로에게 좋은 건축을 하고 있는지 자문합니다. 소규모 프로젝트 특성상 그 질문을 다른 이들과 충분히 공유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는데, 이번 수상은 그 물음에 대한 큰 답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더 나은 다음을 향한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또한 좋은 건축은 설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호텔이 완성되기까지 건축주와 다양한 전문가들의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앞으로는 건축물을 넘어 더 넓은 차원에서 건축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Q. 최근 관심을 두고 계시거나 앞으로 설계에 적용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건축사의 설계 범위를 단순히 건물 외관으로만 한정해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건축과 인테리어를 구분하지 않고 설계를 진행합니다. 덕분에 프로젝트에 더 깊이 개입할 수 있고, 토목·구조·설비 등 협력 분야는 물론 기획, 브랜딩, 그래픽, 조경 등 다양한 영역과도 협업을 주도합니다.
오늘날 건축사의 역할은 점점 세분화되는 동시에 타 분야와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저희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협업한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건축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