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화재 반복, 창고식 저가 설계가 주된 원인
성능 반영한 설계 필요, 냉방·방화까지 고려해야
“건축법에 별도 용도 신설, 기준과 책임 분명히 해야”
ESS 설계 정보, 지역건축사회 요청 시 세미나 통해 공유 가능

ESS 설계 누적 용량 4.6GW를 기록한 지재범 건축사는 “ESS는 저장 설비이자 성능과 안전이 설계에 반영돼야 하는 고부가가치 인프라”라며 건축사의 역할과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ESS 설계 누적 용량 4.6GW를 기록한 지재범 건축사는 “ESS는 저장 설비이자 성능과 안전이 설계에 반영돼야 하는 고부가가치 인프라”라며 건축사의 역할과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에너지 저장 설비인 ESS(에너지저장장치)는 지금까지 주로 전기·기계 영역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설비가 들어서는 순간, 그것은 건축물이 된다. ESS 설계와 인허가 과정에서 건축사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지재범 건축사는 지난 7년 동안 ESS 시설만 100건 가까이 설계해 왔다. 설계한 규모는 원자력발전소 4기에 해당한다. 그가 설계한 ESS 시설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건의 화재도 발생하지 않았다. 고온에 민감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다루는 ESS에서 이러한 결과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ESS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일반 창고 수준의 단가로 설계가 이뤄지는 현실에 대해 우려를 전했다. 설계는 제품 성능과 구조 조건, 화재 위험, 냉방 설비까지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하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제도와 설계비 기준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ESS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병원, 호텔, 공동주택은 물론, 앞으로는 가정용 ESS도 보편화될 가능성이 크다. 본지는 지재범 건축사에게 ESS 설계의 핵심 요소와 제도적 과제, 그리고 건축사가 이 분야에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물었다.


Q. ESS범건축이 설계한 ESS 시설 용량이 원자력발전소 4기 수준에 달한다고 들었습니다. ESS 건축설계가 이처럼 대규모 에너지 인프라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건축사의 역할은 무엇이라 보시나요?

ESS는 지금 에너지 시스템의 판을 바꾸고 있습니다. 기존처럼 발전소를 짓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생산된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한 순간에 꺼내 쓰는 흐름으로 가고 있죠. 그런데 이 ESS 설비도 결국 건축물입니다. 허가를 받아야 하고, 설계가 들어가야 하며, 기계·전기·소방 설비까지 다 통합해줘야 하거든요.

그걸 누가 총괄할 수 있을까요? 결국은 건축사입니다. 설계의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ESS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설계 기반을 잡아줘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ESS를 전기설비나 창고쯤으로 여기기도 했지만, 실제론 훨씬 복잡하고 정밀한 인프라입니다. 이걸 이해하는 건축사가 점점 더 필요해질 겁니다.

Q. ESS 설계는 일반적인 창고 설계와 어떤 점이 가장 크게 다르다고 보십니까? ESS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구조적·기능적 차이를 중심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ESS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예민합니다. 온도 변화에 민감하고, 일정 온도를 벗어나면 성능이 떨어질 뿐 아니라 화재 위험도 커져요. 그래서 ESS 설계에는 냉방, 공조, 단열 설비가 기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배터리는 25도 전후로 맞춰야 안정적으로 돌아갑니다.

그뿐만 아니라, 화재나 수분 침투에 대한 대비도 중요하죠. ESS는 보통 땅값이 저렴한 외곽 지역에 설치되는데, 이런 곳은 지반이 약하거나 침수가 쉬운 지역일 가능성이 큽니다. 일반 창고처럼 벽 세우고 지붕 얹는다고 해결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거죠.

건물 내부도 마찬가지예요. 하나의 공간에 다 몰아넣기보단, 배터리 용량이나 화재 확산 가능성을 고려해 구역을 나눠야 합니다. ESS는 저장 기능을 가진 설비이자, 복잡한 공학이 집약된 건축물입니다. 설계 접근부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Q. ESS 화재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ESS범건축에서는 어떤 건축적 대응 전략을 설계에 적용하고 계신가요? 바닥, 벽체, 지붕 등 구조 요소나 기계설계 통합 방식 등 구체적인 접근법이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어디서 문제가 생길까?’라는 질문을 놓고 설계를 시작합니다. 우선 배터리는 열을 많이 내기 때문에 냉방 설비가 필수입니다. 사계절을 고려한 공조 설계는 기본이고, 화재를 막는 구조적 대책도 반드시 필요하죠.

ESS 시설이 들어서는 지역은 종종 지반이 좋지 않은 곳입니다. 침수 위험이 있는 매립지, 물 빠짐 안 되는 평지, 해일 위험이 있는 바닷가 근처 등 여러 상황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설계 자체에서 방어 구조를 만들어야 하죠.

또 하나는 화재 구획입니다. 큰 건물 하나에 ESS를 전부 넣는 대신, 공간을 분할하거나 방화벽을 안에 두고 공간을 나눠 불이 번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저희가 설계한 ESS는 이런 식으로 리스크를 구조적으로 줄여온 결과, 단 한 건의 화재도 없었습니다.

Q. 설계한 ESS 시설에서 화재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성과는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결과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어떤 설계 노하우와 원칙이 있었나요?

가장 기본은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만들자는 생각입니다. 사고는 어차피 언제든 일어날 수 있지만, 그 확률을 줄이는 게 설계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배터리의 특성을 잘 아는 게 중요합니다. 발열량, 작동 온도, 구조 방식, 냉각 기술 같은 것들요. 이걸 염두에 두고 설계 단계에서부터 시스템을 짜야 합니다. ESS 설비를 하나의 공간에 다 넣는 대신, 기능별로 나누거나 건물 자체를 분할해서 설계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ESS 설계는 법규를 맞췄다는 수준이 아니라, ‘성능이 유지되는 구조를 목표로 해야 합니다. 실제로는 법이 정한 기준보다 더 높은 성능을 요구받을 때가 많거든요. 그걸 감당하려면 구조, 단열, 설비 모두 성능 설계 수준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게 저희가 지켜온 원칙이었습니다.

Q. ESS 설계는 아직 업계에 익숙하지 않은 분야입니다. 앞으로 이 시장의 전망과, 건축사들이 이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ESS는 병원, 아파트, 기업 본사까지 빠르게 확산되는 에너지 기반 시설입니다. 일본은 이미 가정용 ESS 보급률이 60%를 넘겼고, 우리나라도 분산에너지법과 RE100 확산으로 관련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ESS를 창고로 간주해 저가에 설계가 이뤄지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큽니다. ESS는 고도의 성능 설계가 필요한 고위험 설비로, 구조·화재·냉방 설비를 통합 설계해야 하며 이에 맞는 설계비 체계가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제도 문제입니다. 현재 건축법상 ESS는 명확한 용도 분류가 없어 변전소나 근린생활시설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설계 기준이나 비용 산정에도 혼란이 생깁니다. ESS가 별도 용도로 분류되면 제도적으로도 건축사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해지고, 시장 안정성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역건축사회에서 요청이 있으면 ESS 설계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가질 수 있습니다.

ESS 건축물 내부에 설치된 리튬이온 배터리 모듈. 열, 화재, 침수 등에 대응한 설계가 필수적이다. (사진=이에스에스범간향 건축사사무소.주)
ESS 건축물 내부에 설치된 리튬이온 배터리 모듈. 열, 화재, 침수 등에 대응한 설계가 필수적이다. (사진=이에스에스범간향 건축사사무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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