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간마을 품에 안긴 보건진료소
‘사람 중심’ 설계로 따뜻한 공공건축의 모범
전서희 건축사 “목재와 돌로 자연과 조화 이루는 건축 지향”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는 새로 지어진 건축물 가운데 탁월한 작품을 선정해 건축상을 수여한다. 당시 건축 문화를 선도하며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던 수상작들은 지금도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져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을 다시 찾아 해당 건축물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맡았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2024 강원도건축문화상’ 대상 수상작인 ‘용대보건진료소’(전서희 건축사, 바른건축사사무소, 강원특별자치도건축사회)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들어선 ‘2024 강원도건축문화상’ 대상 수상작 용대보건진료소(전서희 건축사, 바른건축사사무소)는 크지 않다. 단층에 낮은 지붕, 나무로 둘러싸인 외벽, 마당 한쪽 구석의 벤치. 이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풍경이 아름답다.
이 작고 소박한 건축물은 이곳 주민들의 몸 건강을 지탱할 뿐 아니라, 마음의 휴식처 역할도 하고 있다.
용대보건진료소는 진료만을 위한 공간이라고 하기 어렵다. 의료 서비스가 닿기 힘든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 이 진료소는 ‘공공건축’이라는 말이 주민들에게 얼마나 섬세하고 따뜻한 의지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곳의 설계는 무엇보다 사람을 중심에 두고 이뤄졌다. 건축물은 마을 어귀에서 시선과 발길이 자연스럽게 머무는 자리에 배치됐다.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어서 접근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고, 겨울철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한 마감재 선택부터 지붕의 적설 하중까지 세심하게 챙겼다.
안쪽은 밝고 포근한 분위기다. 진료 공간은 건물 안에서도 산을 바라볼 수 있도록 계획됐다. 높은 층고와 통창을 통해 자연을 향해 열린 구조로 구성해, 시각적인 개방감을 주고자 했다. 특히 진료 대기실에는 천창을 두어, 지루한 대기 공간이 아닌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라운지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진료실 내부에도 외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큰 창을 두어, 환자에게는 심리적 안정을, 의료진에게는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효과를 기대했다.
내부 공간 구성은 단순하지만 세심하게 배려됐다. 주 방문자의 연령대를 고려해 진료실, 건강 상담실, 주사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계획했다. 용대보건진료소는 고령화 시대, 지역 주민들이 기댈 수 있는 공공건축의 하나의 전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음은 설계를 맡은 전서희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전서희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Q. 이 건축물을 설계하게 된 계기와, 설계 과정에서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용대리의 기존 보건진료소는 매우 노후하고 공간도 협소해, 주민들은 오랜 시간 동안 새로운 진료소를 간절히 원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2021년 ‘농어촌 의료서비스 개선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추진이 가능해졌습니다. 처음 대지를 방문했을 때,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풍경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머무르고 싶다는 감정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느낀 그 첫인상을 이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도 그대로 느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것이 용대보건진료소 설계의 출발점이자, 끝까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입니다. 내부 공간은 기능에 따라 배치했고, 중목 구조는 노출시켜 창을 통해 보이는 외부 경관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습니다. 마감재는 목재와 돌을 사용해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을 지향했습니다.
Q. 설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보건진료소는 진료 공간뿐 아니라 상주 의료인을 위한 숙소 공간도 함께 갖춰야 합니다. 공공성과 사적 공간이 한 건축물 안에 공존해야 하기에, 두 공간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건축물로 읽히도록 설계하고 싶었습니다.
대부분의 보건진료소는 1층에 진료실, 2층에 숙소를 배치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용대보건진료소의 대지 특성을 고려했을 때, 그런 수직적 구성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서로 다른 성격의 공간을 불편함 없이 하나로 통합하는 일, 그리고 용대리의 경관과 어울리는 진료소의 형태를 구상하는 데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Q. 건축 설계를 시작할 때 늘 염두에 두는 가치나 지향하는 건축적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단순하고 편안한 건축을 지향합니다. 대지가 지닌 고유한 특성과 건축물이 수행해야 할 기능이 자연스럽게, 과하지 않게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힘을 주지 않아도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에게 필요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공간. 그런 건축이 제가 가장 바라고, 늘 고민하는 지점입니다.
Q. 그 지향점이 이번 작품에 잘 반영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준공 후 다시 건축물을 찾았을 때, 진료실과 대기실에 설치한 통창 너머로 익숙한 경관이 펼쳐졌고, 내부의 중목 구조는 창을 통해 바라보이는 외부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습니다.
숙소동은 별도의 작은 마당을 품고 있으며, 담 너머의 풍경이 거실까지 스며드는 모습은 계획 당시 그렸던 장면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설계를 마치고 완공된 건축물을 마주할 때면, 늘 아쉬움과 후회,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함께 듭니다.
Q. 이번 수상이 건축사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
설계할 때도, 준공 후에도 이 건축물이 상을 받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감사하고,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큰 감사의 이유입니다.
건축은 언제나 정답이 없는 숙제처럼 느껴집니다. 완공 이후 느끼는 미안한 마음 속에서도, 이번 수상을 통해 ‘아주 틀린 답을 낸 건 아니었구나’ 하는 작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Q. 최근 관심을 두고 있거나 향후 설계에 적용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아직 다뤄보지 못한 프로그램이나 사용해보지 않은 재료에 관심이 생깁니다. 이번에 적용한 중목 구조도, 바로 전 작업에서 처음 경험한 것을 계기로 보건진료소 설계에 이어 도입해봤습니다. 비록 완벽하진 않지만, 이렇게 조금씩 발전해 나가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