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초당동 자리 잡은 고요한 공간
문성희 건축사 “외부 시선 벗어나 온전한 휴식 누리는 공간 설계”
건축주 “조용한 탐험 이루는 자기만의 우주 되길”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는 새로 지어진 건축물 중 탁월한 작품을 선정해 건축상을 수여한다. 당시 건축 문화를 선도하며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던 수상작들은 지금도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져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을 다시 찾아 해당 건축물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맡았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2024 강원도건축문화상 비주거 부문 우수상 수상작 ‘스테이 니와’(문성희 건축사, 아틀리에무이종합건축사사무소, 강원특별자치도건축사회)이다.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수백 년 된 옛집과 새로운 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지금도 천천히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 고요한 주거지 한켠에 2024 강원도건축문화상 비주거 부문 우수상 수상작 ‘스테이 니와’(문성희 건축사, 아틀리에무이종합건축사사무소)가 자리 잡았다.
건축사는 잠시 머무는 공간이 아닌, 머무름 자체가 하나의 삶의 태도로 이어질 수 있는 집, 사람의 시선과 외부 세계에서 잠시 물러나, 방문객이 ‘나’로서 조용하고 단단히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그리고자 했다. 그는 이러한 의도를 좁고 긴 대지 위에 정원을 중심으로 둔 ‘ㄷ자형 매스’ 구조로 풀어냈다.
설계를 맡은 문성희 건축사는 여행자들이 외부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히 휴식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한다.
전통 한옥의 안마당처럼 건물 안쪽에 마련된 작은 중정은 바람과 빛, 식물과 자갈로 채워진 또 하나의 방이었다. 이 정원은 조경 이상의 역할을 하며, 사용자의 감각과 시선이 머무는 공간의 중심이 됐다.
‘스테이 니와’ 설계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장면의 흐름’을 고려한 공간 구성이다. 대문에서 실내로 이르는 짧은 동선에는 작은 변화들이 반복된다. 높게 솟은 대나무 숲은 시선을 부드럽게 가리면서도 걸음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툇마루는 실내와 마당을 잇는 전이 공간이며, 자갈 위에 떨어지는 햇빛은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설계자는 “기능적 연결에 그치지 않는, 장면이 이어지는 시퀀스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창은 고측창으로 계획해 외부 시선을 차단하고, 내부 정원과 자연광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구성은 이용자에게 ‘밖이 아닌 안을 보는 건축’, 즉 내면을 향하는 감각적 체험을 유도한다.
비록 2동 4객실로 구성된 소규모 공간이지만, 그 안에 담긴 건축적 밀도는 결코 작지 않다. 자쿠지 욕조와 천창이 있는 욕실, 목재와 타일의 촉감, 간접조명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그림자까지. 각각의 재료는 공간에 경험의 층위를 더한다.
이 건축이 특히 인상적인 이유는 시간의 흐름을 공간 안에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아침이면 햇빛이 중정의 자갈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고, 저녁이면 처마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공간은 하루 동안 서서히 다른 얼굴을 드러내며, 하나의 풍경이자 회화처럼 다가온다.
설계자는 이를 ‘장면의 건축’이라 부른다. 기억에 남는 풍경, 걷는 동안 스치는 빛의 조각, 사색을 가능하게 하는 고요한 틈. ‘스테이 니와’는 바로 그런 공간이다.
다음은 설계자 문성희 건축사, 건축주 김관미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문성희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Q. 이 건축물을 설계하게 된 계기와, 설계 과정에서 특히 중점적으로 고려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강릉 초당동은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변화하며 많은 이들이 찾는 매력적인 관광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고택과 현대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죠. 건축주 역시 이러한 초당동의 정서가 건축에 담기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복합적인 도시 맥락과 좁고 긴 대지 조건은 설계에 제약이 많았습니다. 특히 숙박시설에서 중요한 조망과 프라이버시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죠. 저는 여행자들이 외부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히 휴식에 집중할 수 있는, 프라이빗하고 안정된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동시에 초당동의 지역성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건축이 되도록 고민하며 설계를 진행했습니다.
Q. 앞서 말씀하신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도시지역 안에서 관광숙박시설인 호스텔을 설계하는 일은 법적인 제약이 많았습니다. 대지도 삼면이 다른 건물로 막힌 좁고 긴 형태였기 때문에, 외부를 향해 열린 배치보다는 마당을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외부창을 최소화해 프라이버시 확보에 중점을 뒀습니다. 각 실은 중정을 바라볼 수 있도록 계획했으며, 툇마루를 두어 실내와 외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했습니다. 전통 한옥의 안마당에서 느껴지는 공간적 감각을 의도한 것이죠.
공간의 흐름 역시 설계에서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대문에서 객실 현관까지 이어지는 짧은 동선 안에 다양한 장면이 펼쳐지도록 계획했습니다. 독립된 벽체와 시선 차단 장치를 활용하고, 예상치 못한 위치에 큰 조경 공간을 배치해 사용자가 마주하는 순간에 놀라움을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히 대나무 식재를 통해 외부 시선을 가리는 동시에 동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자 했습니다.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라, 장면이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시퀀스를 구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Q. 설계 과정에서 특히 어렵거나 고민이 많았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어려웠다기보다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습니다. 공사비 상승으로 인해 최초의 설계 방향에서 일부 조정이 불가피했어요. 건축주의 예산과 예측하기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 규모나 재료 선택에서 원안과는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설계자로서 늘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Q. 건축설계를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지향해 온 건축적 가치가 있다면요?
저는 ‘장면의 건축’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작업합니다. 공간 안에서 사람이 무엇을 경험하고 기억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멋진 형태나 시각적 인상보다는, 빛과 재료, 시선의 방향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의도한 방식으로 어우러져 일상 속에서도 특별한 순간이 만들어지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그런 장면을 만들어내는 건축사가 되고 싶습니다.
Q. 그 지향점이 이 프로젝트에도 잘 반영되었다고 보시나요?
‘스테이 니와’는 숙박시설인 만큼,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각 실에서 중정을 바라보며 느낀 감상이나, 대문에서 객실까지 이어지는 동선에서 받은 인상을 담은 후기들을 보면, 제가 의도했던 장면들이 잘 전달됐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물론 출입구를 근린생활시설 입구로 착각했다는 후기를 보면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처음 상상했던 포토 스팟에서 실제로 사진이 찍혀 공유되는 모습을 볼 때면, 그 장면이 사용자에게 기억으로 남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듯해 큰 보람을 느낍니다.
Q. 이번 수상이 건축사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설계자로서 제가 고민하고 구축한 방향이 사용자와 사회에 잘 전달될 수 있을지 늘 고민합니다. 이번 수상을 통해 제 건축적 지향점이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작업에 대한 확신도 조금 더 커졌습니다. 또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사로서 보다 큰 무대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Q. 근래 들어 관심을 두고 계신 주제나 설계에 적용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최근에는 지붕 설계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지붕은 기능적 완성도가 중요하고 유지·보수도 용이해야 하기 때문에 제약이 많은 영역입니다. 건축주가 보수적인 재료를 선호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럼에도 젊은 건축사들의 작업을 보면 벽돌, 박판 타일, 천연 슬레이트 등 다양한 재료를 지붕에 적용한 사례가 늘고 있어 많은 영감을 받고 있습니다. 저 역시 재료와 디테일을 다양하게 실험하며 지붕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 보고 싶습니다.
건축주 김관미 님과의 일문일답
Q. ‘스테이 니와’를 설계하게 된 계기와, 그 안에 담고자 했던 의도는 무엇이었나요?
기대 수명이 점점 늘어나는 시대에, 장수가 반드시 축복이기만 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세상의 규칙에 맞춰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나만의 규칙에 따라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스테이 니와’는 그런 생각에서 시작된 공간입니다. 조용히, 그리고 느긋하게 머물 수 있는 나만의 우주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Q. 문성희 건축사와의 협업 과정은 어떠셨나요? 함께 작업하며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문성희 건축사님을 가장 먼저 좋아한 건 제 남편이었어요. 외모도 훈훈하시지만, 그보다 더 인상 깊었던 건 따뜻한 내면이었습니다. 제가 수없이 많은 요청과 변덕을 드렸음에도 늘 웃으며 응대해 주셨고, 덕분에 제 취향이 잘 반영된 결과물을 얻게 되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매 미팅마다 기대를 뛰어넘는 아이디어를 제시해 주셔서, 즐겁고 만족스러운 협업이었습니다.
Q. 처음 의도한 대로 공간이 잘 운영되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네. 기능성과 미학이 정교하게 조율된 설계 덕분에 구조적인 변경 없이도 본래의 분위기와 흐름이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공간 자체가 설명 없이도 감각적으로 사용자를 이끌어주는 느낌이 있어서, 저희 역시 최소한으로만 개입하며 처음 설계의 철학을 지키고자 합니다.
Q. ‘스테이 니와’가 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시나요?
혼자 남아 조용히 지냈던 어느 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마루에 누워 마당의 이끼를 바라보던 고요한 순간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자극 속에서 살고 있고, 때로는 그런 자극에서 벗어난 조용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스테이 니와’는 그런 고요함과 여백을 제공하는 공간이길 바랍니다.
‘탐험의 끝은 출발점으로 돌아가 그곳을 비로소 처음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처럼, 이곳에서 자신을 새롭게 마주하는 조용한 탐험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