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AA, 2010년 프리츠커상·2025 RIBA 골드메달 수상
빛·공간 활용, 사용자 경험 극대화 한 설계
생성과 소멸, 건축의 라이프 사이클까지 고민 넓혀
“서울과 도쿄는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습니다. 지형의 굴곡이나 가로수의 종류도 서로 다릅니다. 특히 건축물에 쓰인 재료와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이 저에게는 다르게 보입니다. 아마도 반도와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에서 비롯된 영향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화적·지형적 요소들이 쌓여 한국과 일본의 건축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2010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카즈요 세지마(Kazuyo Sejima, SANAA)가 지난 5월 20일 한국을 찾았다. 한국여성건축가협회가 주관한 ‘2025 여성건축가 기획전’의 일환이다.
카즈요 세지마가 이끄는 SANAA의 건축은 시적이면서도 실험적이다. 유려하고 투명한 형태, 빛과 공간을 활용한 설계,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한 레이아웃 등을 통해 조용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구현한다. 이러한 건축적 특징을 높이 평가한 RIBA는 SANAA를 2025년 골드메달 수상자로 선정했다.
“건축은 공간의 관계성입니다. 추상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고, 각각의 건축 재료가 어떻게 연결되고 그것들이 어떤 공간을 완성할지를 질문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러한 질문들을 모으다 보면 결국 ‘사용자들은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질문에 이르게 됩니다. SANAA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가 설계한 건축물이 그 지역과 연속성을 갖고, 새로운 경관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사용자가 건물을 이용함으로써 또 다른 건축적 풍경으로 변모하는 것, 그것이 SANAA가 지향하는 건축입니다.”
SANAA의 작품은 공간의 유동성을 지향한다. 뉴 뮤지엄 오브 컨템포러리 아트(New Museum of Contemporary Art, 미국, 2007), 루브르 랑스(Louvre-Lens, 프랑스, 2012), 시드니 모던(Sydney Modern, 호주, 2022) 등 SANAA의 건축은 지리적·문화적 특색과 건축 철학이 어우러져 새로운 건축적 정경을 만들어낸다.
특히 SANAA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21st Century Museum of Contemporary Art, Kanazawa, 2004)은 세지마가 추구하는 건축적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세 면이 도로에 접한 이 미술관은 지역사회에 열린 공원 같은 공간을 콘셉트로 삼았으며, 어느 방향에서든 접근할 수 있도록 앞뒤 구분이 없는 원형 디자인이 특징이다. 건물 외벽과 내부 벽면에는 유리를 사용해 투명성과 개방감을 강조했다.
“모든 작품이 기억에 남지만, 꼭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이 떠오릅니다. 처음 맡았던 대규모 공공 프로젝트였고, 이후 SANAA가 지향하는 건축적 방향도 점점 정교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SANAA는 건축물 고유의 목적에만 국한되지 않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포용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공원 같은 공간입니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면서도, 동시에 함께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건축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국가에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SANAA는 로컬 건축사와의 협업을 통해 문화적 다양성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지역의 특색을 수용하고, 자생적인 재료를 활용하는 방식 등을 통해서다. 견고한 건축 철학을 바탕으로, 카즈요 세지마는 건축과 환경은 물론 생성과 소멸, 소멸과 순환 등 건축 이후의 영역까지 고민을 확장해가고 있다.
“건축물에도 생성과 소멸이라는 라이프 사이클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물성이 없는 빈 공간조차 순환의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무(無)의 상태에서도, 제가 추구하는 건축적 가치가 남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앞으로의 건축적 방향이기도 합니다. 이번 기획전에 참여하면서 SANAA의 건축 철학을 한국의 여성 건축사분들, 그리고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나눌 수 있어 뜻깊었습니다. 저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는 자리였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여성 건축사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건축이라는 분야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와 시각이 자연스럽게 공존하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