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마당 열어 이웃과 함께, 공간 만든 새로운 콘셉트 어린이집
수업 중에도 자연 만날 수 있게 교실마다 테라스 설계
임재용 건축사 “공공성의 풍경 구현 위해 프로젝트마다 노력”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 새로 지어진 건축물 중 탁월한 작품을 선정해 건축상을 수여하고 있다. 당시 건축 문화를 선도하며 심사위원들의 감탄을 자아낸 작품들은 지금도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들을 다시 찾아가 그 건축물들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 소개할 쉰한 번째 작품은 2024 한국건축문화대상 공공부문 대상 수상작인 ‘시립 장지 하나어린이집’(임재용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오씨에이)이다.
어릴 적 다니던 유치원에는 널찍한 공간이 많았다. 특별히 무엇을 하는 곳이라고 정의하기 힘든 공간에서 특별한 목적 없이 친구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다. 그 공간은 우리 모두에게 평등하게 열려 있었다. 책을 읽다가 지루해지면 즉석에서 게임을 만들어 놀고, 그러다 또 지루해지면 잠시 낮잠을 자기도 하던 그런 공간 말이다. 언제든 창밖 풍경을 볼 수 있는 커다란 창이 있었고, 경계 없이 지나가는 어른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어느새 늦은 오후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오면, 아쉬움을 한 아름 안고 돌아가곤 했다. 돌이켜보니, 나와 친구들은 그곳에서 제약 없이 세상과 소통하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 받은 것 같다.
화성시 장지동 945번지에 자리한 2024 한국건축문화대상 공공부문 대상 수상작 ‘시립 장지 하나어린이집’(임재용 건축사, 주.건축사사무소 오씨에이)은 기자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마치 40년의 세월을 넘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우선, 주위와 경계가 뚜렷한 다른 어린이집과 달리, 이곳의 앞마당은 이웃들과 상시적으로 공유되는 공간으로 조성돼 눈길을 끌었다.
설계자 임재용 건축사는 최근 설계에 임하면서 건축물에 어떻게 ‘공공성’을 구현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공공성의 풍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모든 프로젝트에서 공공성의 풍경을 일관되게 이어가야만 공공성이 구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앞마당을 비워 이웃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된 점에 대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설계자는 어린이집 입구 쪽에 캔틸레버 구조로 지붕이 있는 마당을 조성해, 어린이집 앞 보행로이자 이웃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 공간은 아이들과 학부모, 학부모와 대화하는 선생님들, 그리고 이웃까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만남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임재용 건축사는 모든 교실에 테라스를 배치해, 수업 중에도 자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한, 1층의 중정 마당과 놀이터, 2층 테라스인 ‘하늘 마당’에서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놀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어린이집은 그의 ‘공공성의 풍경’이라는 철학이 잘 담긴 새로운 유형의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음은 설계자 임재용 건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임재용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Q. ‘시립장지하나어린이집’을 설계하시면서 설계 과정에서 특히 염두에 뒀던 점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크게 두 가지를 시도하고 싶었습니다. 첫째, 마당을 주변과 공유하여 공공성의 풍경을 구현한 어린이집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둘째,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어린이집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Q. 그런 점을 어떻게 구현하셨는지요?
크게 네 가지 방향으로 구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공공성의 풍경을 구현한 어린이집 ▲공원의 일부가 된 어린이집 ▲다양한 마당이 있는 어린이집 ▲빛이 가득한 어린이집, 이렇게 네 가지입니다. 각 주제별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일반적으로 국공립 어린이집은 마당이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웃들과 공유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어린이집 앞에 지붕이 있는 전면 마당을 조성해 보행로 역할을 하면서도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대지는 장지천을 따라 형성된 공원과 맞닿아 있습니다. 전체적인 풍경 계획은 장지천을 걷는 시민들을 고려해 건물의 높낮이를 공원의 경사에 순응하도록 설계했습니다. 건물이 주변 공원 및 자연과 대립하지 않고 공원의 일부가 되는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곳 아이들은 대부분 아파트에 거주해 마당에서 뛰어놀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이 다양한 마당에서 뛰놀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특히, 영유아를 제외한 모든 교실에 테라스를 배치해 공부 시간 중에도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다양한 높이와 형태의 창과 천장을 통해 빛이 가득한 어린이집을 설계했습니다. 어린이집의 중심 공간인 다목적 홀에는 원형 천창을 설치해 공간의 중심을 잡는 동시에 밝은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뛰어놀아 더 풍요로운 경험을 누리고 있습니다. 영아반에는 누워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삼각형 천창을, 유아반에는 다양한 높낮이의 창과 천창을 배치해 아이들이 다채로운 빛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Q. 설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요?
화성시에서 새로운 유형의 어린이집임에도 불구하고 열린 마음으로 계획안을 수용해 주신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화성시 당국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Q. 건축설계를 시작하면서 가진 건축적 지향점이 있다면?
모든 프로젝트에서 제가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공공성의 풍경과 새로운 유형의 건축입니다.
Q. 그 지향점을 이 작품에 잘 반영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공공성의 풍경은 모든 프로젝트에서 일관되게 이어 나갈 때 비로소 구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앞마당을 비워 이웃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 점이 매우 뿌듯합니다.
Q. 근래 들어 관심을 두고 있거나 설계에 적용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공공성의 풍경과 새로운 유형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프로젝트를 구현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