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건축의 부도는 건축계 내부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공간건축은 건축설계업계 황금기인 70년대∼90년대 기간 동안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성장세는 2000년도 중반까지 이어지다가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당시 상근직원 450명을 264명으로 줄여가면서까지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매출액도 2007년 588억원, 2008년 500억원, 2009년 510억원, 2010년 490억원 등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이 와중에 공간은 국내설계시장에서 해외설계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해외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앙골라, 루안다, 두바이, 카자흐스탄, 알제리, 필리핀 등에 지사 및 법인을 설립하며, 활발한 해외진출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활발한 수주 뒤에 공간건축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원활하지 못한 설계비 회수였다. 실제로 공간건축은 ‘양재동 화물터미널개발사업(파이시티)’에서 100억 원대 설계비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설계비를 제때 받지 못한 것으로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
설계비에 대한 미수는 이미 건축계에선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일로, 이는 건축설계를 소홀히 여기는 사회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축설계를 ‘건축사’라는 전문직이 수행하는 것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즉, 일반국민들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건축사를 찾아야 하는데, 누구에게 먼저 알아봐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건축설계가 마치 건설에 종속되어 있는 시각도 건축설계를 소홀히 여기는 이유 중에 하나라고 건축인들은 말한다.
건축계 “또 다른 부도 우려”
건축계 내부에선 공간건축의 부도는 ‘한국건축의 몰락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이번 부도는 그간 건축계 내부에서 곪은 부분이 터진 것으로 제2, 제3의 공간건축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건축계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로는 △수십년간 변함없는 저가설계비 △좁은 설계시장·늘고 있는 설계인력 △공공 프로젝트의 턴키, BTL/BTO, PQ 등 발주방식 △건설 위주의 법제도 △건축에 대한 올바른 인식 부재 △수급의 불균형(건축사사무소 상위 30%가 설계시장 90% 차지) 등으로 꼽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건축사들은 생계의 위협까지 받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직원들의 급여를 못주는 문제를 떠나, 이젠 건축사 자신도 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공간건축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2006년까지 소장으로 몸담았던 한 오섬훈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는 “공간건축은 설립된 지 50년이 다 되어가는,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건축설계조직으로서 우리네 도시건축환경에 기여하고 건축설계를 기능적 기술일 뿐 아니라, 문화적 기술임을 일반인에게 알게 한 큰 역할을 한 조직이다. 더구나 건축사관학교처럼 수많은 인재들이 거쳐 나와 활동하고 있다. 그 뿌리가 흔들리고 뽑힐지도 모르는 지경에 처해있다. 전설이 되어 사라질지도 모른다.”며 공간건축 부도에 대해 아쉬워했다. 오 건축사는 공간건축 부도에 대한 향후 전망에 대해 “요행히 살아있어 보이는 다른 업체들은 살아있어도 건강하지 않고 당당하지 못한 행태로 유지되고 있을 것이다. 건축 설계를 둘러싸고 있는 관행적인 요인들이 개선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프로젝트의 발주방법과 업무량의 쏠림, 설계단가의 열악함, 비전문적인 시행사의 서비스 요구, 실적제한으로 인한 신인의 시장 진입제한, 국내 건축사에 대한 차별적대우로 인한 박탈감 등등… 이러한 관행적이고 동등하지 못한 여건들은 재주 있고 똑똑한 학생들로 하여금 건축설계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끝으로 오 건축사는 공간건축 부도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또 다른 전설이 생길 수 있을까. 우리에게 건축의 미래가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