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미륵사지 터’와 어우러진 보이지 않는 박물관

신수진 건축사 “경사로 따라 옛 백제 이야기 속으로, 드러나지 않아 더 많은 이야기 담을 수 있어”

최홍선 국립익산박물관장 “한국인이라면 일생 중 한 번은 방문하는 역사 유적지 되었으면”

국립익산박물관 조감도 (사진 = 윤준환 사진작가)

국내 건축 문화를 이끌 다채로운 건축물들을 선정했던 한국건축문화대상, 해마다 심사위원들의 경탄을 자아내며 시기마다 건축문화를 선도했던 작품들은 주변 환경과 함께 잘 숨 쉬고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들을 다시 찾아 그 건축물들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그 다섯 번째 작품은 2020년 준공건축물 사회공공부문 본상 수상작 ‘국립익산박물관’(설계자 신수진 건축사)이다.

분명히 건축물이 있어야 할 자리인데 건축물이 없다. 미륵사지 터를 둘러보다가 자연스럽게 이어진 경사로를 통해 지하로 들어가 1,000년 전 백제 유물을 보고 나왔는데 건축물의 모습은 없다. 단지 약간 솟은 언덕 같은 모양만 보일 뿐.

2020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 사회공공부문 본상 수상작 국립익산박물관(설계자 신수진 건축사, 유선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은 마치 바닥에 납작 엎드린 모양으로 설계돼 위에서 보면 건축물이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설계를 통해 이 건축물은 미륵사지 터가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을 방해하지 않고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을 탁월히 수행하고 있다.

국립익산박물관 외부투시도(사진 = 윤준환 사진작가)
국립익산박물관 외부투시도(사진 = 윤준환 사진작가)

국립익산박물관은 미륵사지 터에 남아 있는 두 개의 석탑과 주변을 둘러싸는 용화산, 남측 연못이 유려하게 어우러지는 바로 옆에 자리 잡았다.

박물관에 보관된 각종 백제 시대 유물에는 무왕과 선화공주, 왕비로 추정되는 귀족의 딸과 얽힌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미륵사지터를 찾은 방문객들은 경사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내려가 옛 백제의 이야기와 만난다.

국립익산박물관 익산군산의 고대문화실 (사진=국립익산박물관)

“건축물의 높이를 가능한 한 낮추려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서 지하로 진입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러면서 미륵사지터를 둘러본 방문객들이 시간의 갱도를 통해 역사라는 콘텐츠를 발굴하는 광산에 도달한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박물관을 ‘역사를 발굴하는는 시간광산, 국립익산박물관’이라고 소개하곤 합니다.” (신수진 건축사)

박물관 부지는 미륵사지 서측 유물 전시관을 포함하는 삼각형 모양이다. 전시관 입구에 다다르는 경사로 길을 건축물 중앙에 배치하고 높은 층고가 필요한 전시실 공간 등은 좌우로 배치하는 방법을 택했다. 일주문을 통과하며 마음을 정화하는 사찰의 진입 방식을 구현했다.

신수진 건축사는 미륵사지 터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가급적 모든 장식적인 요소는 배제했다. 그 아래 건축물이 있다는 것을 유일하게 증명하는 지붕도 잔디로 덮어 멀리서 보면 작은 언덕처럼 보이게 했다.

외부로 향하는 계단 (사진 = 윤준환 사진작가)
외부로 향하는 계단 (사진 = 윤준환 사진작가)

신 건축사가 처음 기획해 공모에서 선정된 설계안은 지금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최초 설계안은 미륵사지 석탑의 중심 돌인 ‘심주석’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정사각형의 건축물 외형이 두드러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선정 후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 위원·익산시청 등과 협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설계안은 완전히 다시 태어났다. 관람객이 마치 시간여행 하는 것처럼 박물관을 찾아 백제의 이야기를 들은 뒤, 다시 지붕으로 올라가 박물관과 미륵사지 터의 풍부한 자연환경의 향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동선이 자연스럽게 고민됐다.

지난 2020년 1월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은 개관 첫 달에만 2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지만 개관 한 달 만에 찾아온 코로나 대유행으로 당시 준비했던 프로그램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

최홍선 국립익산박물관장은 “코로나 대유행이 지나간 올해 하반기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여러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라며 “한국인이라면 일생에 한 번은 찾는 역사적 명소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국립익산박물관 설계자 신수진 건축사와 최홍선 국립익산박물관과의 일문일답이다.

신수진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Q. 미륵사지터가 갖고 있는 고유의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박물관’으로 건축 전략을 세우셨는데요. 이 콘셉트를 어떻게 생각해 내셨는지요?

신수진 건축사 (유선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신수진 건축사 (유선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신수진 건축사(이하 신) : 익산 미륵사지터는 남아있는 두 개의 석탑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용화산, 남측 연못이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그 자체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곳입니다.

새로 지으려고 시도하지 않고 세월의 바람을 그대로 맞은 모습으로 세계유산이 된 미륵사지터와 맞닿은 건축은 대지 경계선 내의 영역을 점유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는 도시건축과는 다른 접근을 요구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건축물의 외형을 최대한 보여지지 않게 하는 것이 좋은 건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이렇게 미륵사지터와 같이 땅의 기운이 강력할 때에는 형태적 모티브 보다는 주어진 과제를 대지의 조건에 맞추어 충실하고 단순하게 풀어내는 것 자체가 좋은 건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는 건축물의 높이를 가능한 한 낮추기 위해서 경사로를 내려가서 지하로 진입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미륵사지터를 둘러본 방문객들이 시간의 갱도를 통해 역사라는 콘텐츠를 발굴하는 광산에 도달한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박물관을 ‘역사를 발굴하는 시간광산, 국립익산박물관’이라고 소개하곤 합니다.

Q. 국립익산박물관은 공공건축물인 데다가 세계문화유산인 익산미륵사지터에 자리잡다 보니 건축 과정에서 여러 제약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국립익산박물관 외부경사로 (사진 = 윤준환 사진작가)
국립익산박물관 외부경사로 (사진 = 윤준환 사진작가)

: 본래 처음 기획돼 공모에 당선된 설계는 미륵사지 석탑 심주석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2009년 발굴된 사리장엄구를 명품전시기법으로 구성하는 안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선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익산유물관, 조달청, 익산시청 그리고 문화재 위원들과의 협의를 거치면서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당선된 안은 새로운 안으로 대체하는 것은 부담도 되고, 사무소 입장에서도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문제도 있었지요.

더 나은 설계를 위해 미륵사지터에 오랜 기간 머물다보니 과거와 현재, 시대와 시대를 연결하고 있는 것은 건축이 아니라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구되는 기능에 충실하되 유적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문화재 위원과 발주처를 비롯한 관련기관들에 전하고 설득했습니다. 지금의 모습은 그러한 노력의 결실입니다.

Q. 2020년 ‘국립익산박물관’의 수상은 건축사님께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수상 후에도 자주 들르시는지요?

국립익산박물관 로비 (사진 = 윤준환 사진작가)
국립익산박물관 로비 (사진 = 윤준환 사진작가)

: 꼭 수상작이어서가 아니라, 제가 기획단계부터 마무리까지 온전히 함께 한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국립익산박물관을 설계하며 제 자신이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행히 제 고민의 시간들이 인정받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여러 경로로 연락을 해주십니다. 그럴 때마다 제 시간이 허락하는 한 함께 박물관을 찾아 설계자로서 직접 건축물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Q. 익산박물관 외에도 포항 중앙도서관이나 국립임시정부기념관 등 많은 공공건축물을 설계하셨습니다. 건축사님이 생각하시는 ‘공공건축’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 민간건축물이 특정 건축주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건축된다면 공공건축물은 이 땅에 사는 모두에게 행복감을 주는 건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사용자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사용자도 적극 활용하고 감동과 행복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공공건축에 임할 때마다 과거에 대한 학습을 바탕으로 현재를 반영하고, 변화될 미래의 삶을 예측하여 설계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현재의 이익 추구를 우선시하는 ‘민간건축’보다는 공공의 예산이 투입되는 ‘공공건축’분야에서 선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홍선 국립익산박물관장과의 일문일답

국립익산박물관 미륵사지실 (사진 = 윤준환 사진작가)
국립익산박물관 미륵사지실 (사진 = 윤준환 사진작가)

Q. 보통 박물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의 박물관입니다. 올해 초 관장으로 취임하시기 전에도 실무자로서 시공 과정을 지켜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최홍선 국립익산박물관장(이하 최) : 보이지 않음으로 역사를 담은 더 멋진 공간으로 탄생하는 모습에 경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미륵사지터 안에서 박물관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지와 어우러지는 모습을 함께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Q. 박물관을 찾는 분들 중에 박물관의 존재를 모르다가 나중에 알게 되는 분들도 있는지요?

국립익산박물관 미륵사지실 내부 (사진 = 국립익산박물관)
국립익산박물관 미륵사지실 내부 (사진 = 국립익산박물관)

: 실제로 있습니다. 주위를 걷다가 자연스럽게 경사로를 따라 이동하고 한참 유물들을 보고 나서야 “아 여기가 박물관이었구나”하고 알아차렸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박물관에 들어간다는 인식 없이 자연스럽게 옛 백제의 모습을 만나는 것이지요.

Q. 얼마나 많은 분들이 박물관을 찾고 계시는지요? 그리고 향후 계획은?

국립익삭박물관에 전시 중인 익산 왕궁리석탑 출토 사리함과 병 (사진 = 국립익산박물관)
국립익삭박물관에 전시 중인 익산 왕궁리석탑 출토 사리함과 병 (사진 = 국립익산박물관)

: 2020년 1월 개관 직후에는 20만 명이 찾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는데 바로 다음 달 코로나19 대유행이 찾아와 2년 동안 방문 인원을 제한하거나 휴관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다행히 올해 상반기부터 거리두기 제한이 없어져 하반기부터는 더욱 더 적극적으로 박물관을 알리려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 하반기 중 전라남도의 성곽을 소개하는 특별전을 계획 중입니다. 앞으로 경주처럼 미륵사지터와 국립익산박물관도 우리나라 사람이면 일생동안 적어도 한 번씩은 다녀가는 역사적 명소가 되길 기대합니다.

국립익산박물관 고도익산 전시실  (사진=국립익산박물관)
국립익산박물관 고도익산 전시실 (사진=국립익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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