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월명동 8-9번지 가옥, 옛 모습 간직한 상점 건물로 재탄생

김현아 건축사 “100년 시간 겹쳐 보이도록 노력,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

건축주 노욱 대표 “대대로 살아온 가옥이 멋지게 변신해 뿌듯, 거리가 생기 찾아 기뻐”

국내 건축 문화를 이끌 다채로운 건축물들을 선정했던 한국건축문화대상, 해마다 심사위원들의 경탄을 자아내며 시기마다 건축문화를 선도했던 작품들은 주변 환경과 함께 잘 숨 쉬고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들을 다시 찾아 그 건축물들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그 세 번째 작품은 2019년 신진건축사부문 우수상 수상작 ‘월명 1930’(설계자 김현아 건축사)이다.

월명 1930 전경(사진=건축사진작가 황효철)
월명 1930 전경(사진=건축사진작가 황효철)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야구부와 반세기 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극중 정원)가 운영하던 초원사진관, 이성당 빵집으로 기억되는 전라북도 군산.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 그 무엇이고 탁류째 얼려 자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일제강점기, 우리네 서민의 삶을 그려낸 소설가 채만식은 대표작 ‘탁류’에서 고향 군산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렇다. 목포처럼 군산도 항구다. 힘겹게 근대사회로 이행하던 100년 전, 항구 군산에는 이전까지 없던 분주함과 시끌벅적함이 찾아왔다.

‘월명 1930’ 출입구(사진=건축사진작가 황효철)
‘월명 1930’ 출입구(사진=건축사진작가 황효철)

100년 전 군산은 일제강점기 호남평야의 질 좋은 쌀을 일본으로 운송하기 위한 주요 항구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군산은 목포와 함께 부(府)로 승격해 전라도의 중심도시가 됐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군산 곳곳에는 당시 관공서나 적산가옥의 흔적이 남아 있다.

2019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진건축사부문 우수상 수상작 ‘월명 1930’이 위치한 월명동 거리가 대표적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아픈 수탈의 흔적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흔적들은 1930년대 가장 화려했던 군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후 100년, 격동의 현대사와 함께 여러 흔적을 쌓아온 군산 월명동은 도시재생 선도사업(2014∼2018) 성공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월명 1930 작은마당 내부 (사진=건축사진작가 황효철)
월명 1930 작은마당 내부 (사진=건축사진작가 황효철)

‘월명 1930’은 군산시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다시 태어난 건물이다. 1930년대 목조건물로 지어졌지만 1980년대 개축하며 벽돌건물로 한 번 모습을 바꿨다. 개축 후로도 30년 넘는 세월이 지났다.

“상투적인 표현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100년 세월이 거리에 켜켜이 쌓여 있더라고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산업화 시대를 거쳐 21세기까지….”

설계를 맡은 김현아 건축사(아이앤 건축사사무소)는 처음 월명동 거리를 봤을 때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옛 모습을 살리면서도 지금을 사는 사람들도 거리감 없이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풀어낸 김현아 건축사 그리고 건축주 노욱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인터뷰] 김현아 건축사(아이앤 건축사사무소)

김현아 건축사(아이앤 건축사사무소)
김현아 건축사(아이앤 건축사사무소)

Q. 사무소 소재지가 서울인데 어떻게 군산까지 가시게 된 건지요?

A. 지난 2016년 4월에 군산시가 월명동 일원 도시재생 선도지역의 주거재생 지원과 근대역사경관 회복을 위한 근대·일반건축물 리모델링 보조사업을 추진했는데요. 사업 추진을 위해 건축사 풀(pool) 구성을 위한 건축사를 모집했습니다.

원래 안면이 있던 교수님께서 이 사업에 관여하시고 계셨는데, 그 교수님께서 사업이 군산만이 아닌 다른 곳에도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서울에서 활동하는 건축사도 좀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당시는 사무소를 연 지 얼마 되지 않던 시점이었는데 여러 경험을 쌓는 것도 좋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Q. 아 그렇게 훗날 월명 1930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월명동 8-9번지 가옥과 인연이 되신 것이군요.

A. 중간에 우여곡절이 좀 있기는 했습니다. 월명 1930을 만나기 전에 먼저 다른 곳과 협의를 진행했었는데 건축주님의 사정으로 중간에 더 이상 작업이 진행되지 못했었습니다. 월명 1930은 그렇게 두 번 정도 결실을 맺지 못하다가 세 번째 인연이 된 건축물입니다.

월명 1930은 2차 프로젝트에 속했는데, 월명 1930 설계를 시작할 당시는 주변 거리가 근대건축물로 인해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거리가 활성화되고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건축주께서도 그 흐름에 맞춰 그동안의 주거목적이 아니라 상점으로 꾸미길 원하셨습니다.

Q. 거리를 처음 봤을 때 느낌은?

리모델링 전 모습(사진=건축사진작가 황효철)
리모델링 전 모습(사진=건축사진작가 황효철)

A.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 100년이 넘는 기간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습니다. 중간에 시에서 복원해서 만든 그런 모습들도 남아있고,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 거기에서 통일성을 찾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Q. 설계에서 염두에 둔 점을 소개해 주신다면?

A. 처음에는 용도도 주거용에서 상점으로 바뀌고 하는 만큼, 전체적으로 건물을 나름대로 재해석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방향으로 작업한 설계가 심의에서 반려됐습니다. 아마도 “원형적 가치를 존중한 수선, 증·개축”이라는 프로젝트 취지와 어긋난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월명동 거리를 재생하는 취지에 맞게 옛날의 가치를 그대로 살리는 방향으로 재설계를 진행했습니다.

제가 처음 설계한 대로 작업을 했다면 설계에서 시공까지 더 쉽게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 당시 반려돼서 다시 프로젝트 취지에 맞게 더 고민해서 진행했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1987년 리모델링 후 거리의 모습을 만들었던 조적벽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 그 시간 이후의 흔적을 하나의 켜로 남기고자 했고, 기존 출입구 방향인 고우당으로 열려있는 새로운 출입구는 이 벽돌 너머로 1930년대 건축물을 재해석한 모습이 열리도록 하여 도시의 시간이 겹쳐 보이도록 했습니다.

Q. 사무소가 있는 서울에서 현장이 있는 군산까지 자주 내려가 보시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아이앤 건축사사무소 작업대 위에 건축물 모형이 놓여져 있다.
아이앤 건축사사무소 작업대 위에 건축물 모형이 놓여져 있다.

A. 그래도 제 설계의도가 시공 과정에서 잘 구현되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하니 시공이 한창일 때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길이 많이 막히지 않는 시간 기준으로 군산까지 빨리 달리면 2시간에서 2시간 30분 걸리는데요. 그렇게 직접 운전하고 가서 30분 현장 상황 보고 올라와서 또 다른 프로젝트 작업하고 그렇게 바쁘게 지냈습니다. 보통 4∼5개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다보니 군산에 오래 머물 수가 없어서요. (웃음)

Q. 최근에 월명 1930에 다시 가신 적이 있는지?

A. 2019년 현장심사 당시에는 본 건물에 카페가 있었고 증축된 작은 공간에서는 옷을 팔았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증축한 공간은 일식집으로 변경되었는데요. 현재 모습이 궁금해서 얼마 전 로드뷰를 보니 지금은 그 일식집이 확장해서 전체 건물을 쓰고 있더라고요. 언제 어떤 용도로 이용되든 자연스럽게 그곳에 머무는 이들을 위한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 설계 작업을 해오시면서 가지게 된 지향점이 있다면?

처음에는 제가 설계하는 건축물 자체에만 신경 썼다면, 이제는 주변 환경과의 관계성 그리고 무엇보다 이 건축물에서 시간을 보낼 사람들에 주목하게 된 것 같습니다. 경험이 쌓이면서 그 공간을 사용하고 거주하는 사람들, 사용자 입장에의 그 공간들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어떠한 건축물이 돼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 말입니다.

뭔가 세련되고 엣지 있는 모습도 좋지만 잠시 잠깐이 아니라 시간이 가도 자연스럽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한 건축물. 제가 요사이 고민하고 있는 건축물의 모습입니다. 제가 설계한 건축물이 주변과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인터뷰] 노욱 대표(월명 1930)

Q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A.  대대로 오랫동안 살아온 곳이 시대 변화를 맞아 다시 태어난다는 취지에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시행될 당시 이미 증축(1987)한 지도 30년이 흘러서 손을 봐야 하기도 했고요.

Q. 월명동 8-9번지에 오래 살아오셨는지요?

A. 예 오랫동안 살아왔습니다. 저와 제 가족들 삶의 흔적이 서린 곳입니다. 그래서 월명동 거리에도 애착이 많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어쩔 수 없이 퇴락하는 모습에 안타까웠는데 이번 프로젝트로 거리가 다시 생기를 띄게 돼 좋습니다.

Q. 김현아 건축사님과 소통은 잘 이뤄지셨는지요?

월명 1930 최근 모습. 리모델링 직후에는 카페와 옷가게가 있었는데 지금은 초밥집이 들어와 있다. (사진=허욱 월명 1930 대표)
월명 1930 최근 모습. 리모델링 직후에는 카페와 옷가게가 있었는데 지금은 초밥집이 들어와 있다. (사진=허욱 월명 1930 대표)

A. 서울에 사무소를 운영하시는데도 불구하고 틈 날 때마다 내려오셔서 이야기 나누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저도 제 생각 잘 전달하고, 거기에 대해 건축사님이 잘 설명해주시고 소통도 잘 됐습니다.

리모델링도 제가 바라던 것처럼 너무 잘 됐고, 이곳이 2010년대 말부터 월명동의 또 다른 상징이 돼 건축주로서 뿌듯합니다.

Q. 도시재생프로젝트에 참여해 본 건축주 입장에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세월이 지나면 거리도 건축물도 당연히 변해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변하냐 하는 것인데, 역사와 전통을 버리지 않고 옛 모습을 지키면서도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도시재생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시 당국과 건축주 그리고 건축사의 뜻도 맞아야 하고 예산제약도 염두에 둬야 했기에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꼭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저희 월명동 사례가 널리 알려져서 도시재생이 필요한 다른 곳에서도 사업이 잘 진행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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