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건축주·건축사가 의기투합해 만든 ‘스마트팩토리’ 새 모습

“시대·사람따라 새롭게 해석되는 공간 만들려 해”

건축주 임세철 대표 “공간 곳곳에서 웃는 모습 볼 때마다 설계 참 잘 됐다 생각”

국내 건축 문화를 이끌 다채로운 건축물들을 선정했던 한국건축문화대상, 해마다 심사위원들의 경탄을 자아내며 시기마다 건축문화를 선도했던 작품들은 주변 환경과 함께 잘 숨 쉬고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들을 다시 찾아 그 건축물들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그 두 번째 작품은 2019년 준공 민간부문 대상 수상작 ‘연희화학공장’(설계자 박훈·김석천 건축사)이다.

생산동은 가로 120m, 세로 72m의 대공간으로 중심부에 에코샤프트가 위치한다. 이곳을 통해 자연채광, 환기는 물론 작업자들이 휴식도 취할 수 있다. (사진 아이아크건축사사무소)
2019 한국건축문화대상 민간부문 대상 수상작 연희화학공장 (사진=박영채)

산업화의 산물, 대량 생산 그 자체인 공장의 미래는 어떠할까? 2019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부문 민간부문 대상에 선정된 ‘연희화학공장’(설계자 박훈, 김석천 건축사/(주)아이아크건축사사무소)은 산업화시대 공장에 대한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마트팩토리(Smart Factory) 현재와 미래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설계를 총괄한 박훈 대표((주)아이아크건축사사무소는 “좋은 건축주가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라고 수상 당시를 회고한다.

 

◆ ‘사람’에 주목한 공장

‘공장’하면 우리는 파란색을 떠올린다. 아니 파란색보다는 남색에 가깝다. 남색 점퍼를 맞춰 입은 사람들이 기계처럼 이동해서 하루 종일 기계와 함께 기계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곳. 떠올려 보면 드라마·영화에서 공장노동자가 말하는 공간은 출근길 아니면 퇴근한 이후다.

화장품 용기 제조회사 연희화학은 제조 과정 시 자동화 설비가 점점 늘어나면서 공장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른바 ‘스마트팩토리’를 지으려 했다. 최첨단 기술을 장착한 거대한 기계가 딱딱하게 굴러가는 삭막한 공장이 아닌 사람이 중심인 작업 공간. 그래서 연희화학공장 속 공간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대지 경계 없는 공장

생산동은 가로 120m, 세로 72m의 대공간으로 중심부에 에코샤프트가 위치한다. 이곳을 통해 자연채광, 환기는 물론 작업자들이 휴식도 취할 수 있다. (사진 아이아크건축사사무소)
생산동은 가로 120m, 세로 72m의 대공간으로 중심부에 에코샤프트가 위치한다. 이곳을 통해 자연채광, 환기는 물론 작업자들이 휴식도 취할 수 있다. (사진 아이아크건축사사무소)

이에 설계자 김석천 건축사(수상 당시 아이아크건축사사무소 소속, 현재 서로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대표)가 내놓은 콘셉트가 바로 ‘숨 쉬는 공장(Breathing Factory)’이었다.

북서풍을 고려해 생산동은 서쪽에 배치됐고 업무동과 생활 기숙사는 동편에 자리했다. 연희화학공장은 주변 다른 공장과 달리 담장이 없다.

보안상 문제와 함께 넘쳐 들어오는 빗물을 막기 위해 일반적으로 공장은 고립 형태로 짓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공장은 담장 없이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계단을 통해 건물을 넘어 뒤편 공장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2019 한국건축문화대상 민간부문 대상에 선정된 ‘연희화학공장’ 전경. 이 공장은 스마트 팩토리로 ‘숨쉬는 공장’을 표방한다. (사진=박영채) 
2019 한국건축문화대상 민간부문 대상에 선정된 ‘연희화학공장’ 전경. 이 공장은 스마트 팩토리로 ‘숨쉬는 공장’을 표방한다. (사진=박영채) 

설계자 김석천 건축사는 “건축주가 처음부터 제대로 스마트팩토리를 만들어서 관심 있는 업체들이 언제든 보고 배워 갈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며 “담장이나 축대벽을 없애고 대신 단차를 이용해 지하층에는 기계실을 넣어 기능적 문제를 극복했다”고 설명했다.

◆“공장이 숨을 쉰다?”

생산동은 가로 120미터, 세로 72미터의 대공간으로 꾸며졌다. 건축주와 건축사 모두 공정 분석과 제조 환경 변화, 사업 증대 등을 고려했을 때, 생산 설비에 맞춰 짜여진 공간은 얼마 쓰지 못할 것이라는 데 뜻을 함께 했다. 미래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연희화학공장 외부 전경. (사진=박영채) 
연희화학공장 외부 전경. (사진=박영채) 

김석천 건축사는 “향후 생산라인과 설비 규모가 변화할 경우 생산라인의 재배치만으로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다해석적인 공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공간 자체가 너무나 크다 보니 한 가운데에서 작업할 경우 외부로 나가기 위한 물리적 불편함과 심리적 불안감이 우려됐다. 이 문제는 "숨 쉬는 공장"이라는 개념에 맞게 대공간 중간에 구조역할과 함께 공장 내부의 환경 조절 기능을 하는 에코 샤프트(Eco shafr)를 배치하여 해결했다. 

연희화학공장은 담장이 없고 지형의 단차를 이용해 1층에 기계실을 배치해 누구나 공장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사진=박영채) 
연희화학공장은 담장이 없고 지형의 단차를 이용해 1층에 기계실을 배치해 누구나 공장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사진=박영채) 

‘연희화학공장’ 설계자 박훈 건축사(㈜아이아크건축사사무소 대표)와 김석천(서로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그리고 건축주 연희화학 임세철 대표이사와의 일문일답이다.

 

[박훈·김석천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Q 건축물을 설계하시게 된 과정과 설계 과정에서 특히 염두에 뒀던 점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박훈 (주)아이아크건축사사무소 대표, 연희화학공장 설계총괄

박훈 (주)아이아크건축사사무소 대표(이하 박) : 저희와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건축주 연희화학공장 측에서 아이아크가 그동안 지어온 작품과 작업 프로세스를 보고 선택해 주셨습니다.

건축주가 원하는 스마트팩토리는 단순히 자동화에 의해 작업자가 최소화되는 환경이 아니라, 자동화에 따른 여유 시간을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이었습니다.

김석천 건축사(서로아키텍츠 공동대표) : 건축주가 세심하게 준비한 풍세산업단지의 좋은 환경을 공장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습니다. 대지의 효율적이고 적극적인 활용을 위해 대지환경을 분석해야 했으며, 유연한 공간 구성 역시 앞에 주어진 과제였습니다.

Q 그러한 점을 어떻게 구현하셨는지요?

연희화학공장은 다른 공장과는 다르게 외벽을 벽돌조로 마감했다. (사진=박영채) 
연희화학공장은 다른 공장과는 다르게 외벽을 벽돌조로 마감했다. (사진=박영채) 

김 : 우선 연희화학의 공정부터 파악했습니다. 일단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야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찾을 수 있으니까요. 공간에서 벌어지는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그때그때 달라지기 때문에 공간이 다양하게 이용될 수 있도록 가변적인 설계를 접근했습니다.

박 : 쾌적한 작업환경을 위해 자연과 어우러진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보통 자연환경은 건물 외부에 둘러두고 보는 것을 뜻하잖아요? 휴게마당을 건축물 가운데로 끌어들여 모든 공간에서 자연환경 요소를 접할 수 있도록 했지요.

Q 건축주와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진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원활하게 소통이 이뤄질 수 있었던 요인이 있을까요.

박 : 먼저 열린 자세로 협의에 임해 주신 건축주의 배려가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더하자면 정형화된 건축물 설계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미래 건축 콘셉트에 적응하기 위해 디자인 전체과정에 BIM 설계를 도입했던 것도 효율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김 : 대표님 말씀처럼 아이아크가 국내 최초로 래빗을 이용한 설계를 현장에 도입하고, 설계 과정뿐 아니라 건축주와의 협의 과정에서도 이용하다보니 양 측이 공간에 대한 더 명확한 상을 공유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서로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결과물도 잘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아크를 떠나 서로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대표로 일하고 있는 지금도 아이아크에서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Q 2019년 당시 수상이 ㈜아이아크건축사사무소와 김석천 건축사님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되는지요.

김석천 건축사(서로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 연희화학공장은 김석천 건축사가 (주)아이아크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하면서 설계실무를 담당했던 건축물이다.

김 : 4차 산업혁명, 스마트팩토리, 무엇보다 사람…. 미래의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미래 시대의 가치는 ‘열려 있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간마다 너무 명확하게 역할을 지정할 경우 세월이 지나면 자칫 과거의 유산으로만 인식될 수 있지요. 그래서 되도록 시기마다, 또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마다 새롭게 해석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꿈꿨습니다.

박 : 좋은 건축주와 계속해서 고민하는 건축사가 만들어 낸 멋진 결실이라고 자부합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변화하는 트렌드에 적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교훈도 남긴 프로젝트입니다.

[임세철 연희화학 대표와의 일문일답]

생산동과 업무동, 생활동은 3층이 브릿지로 연결돼 있으며 가운데 연희광장이 있지만 커튼월로 인해 하나의 건물로 느껴진다. (사진=박영채) 
생산동과 업무동, 생활동은 3층이 브릿지로 연결돼 있으며 가운데 연희광장이 있지만 커튼월로 인해 하나의 건물로 느껴진다. (사진=박영채) 

Q 스마트팩토리 건축을 고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임세철 대표 : 스마트팩토리 건축을 고민 했다기보다는 공장과 관계하는 사람과 사람의 삶을 위해 수렴되고 종합될 수 있을지는 고민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 같습니다.

Q. 아이아크 건축사사무소에 설계를 맡기신 이유, 그리고 건축 당시 특별히 주문하신 내용이 있나요.

저희가 설계를 맡겼다기보다 설계를 맡아 주셨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우연한 계기에 서울시청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는데, 유걸 선생님(아이아크건축사사무소 전 대표)이 이끄는 아이아크건축사사무소 사람들이 수많은 난제와 갈등을 성숙하고 진정성 있게 포용했던 부분을 보게 됐습니다. 그중에서도 김석천 건축사님과 프로젝트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 숨 쉬는 듯한 공간에서 사람과 설비와 우리가 만든 가치가 귀하게 어우러지는 합리적이지만 낭만적인 공간. 언뜻 들으면 너무나 이상적이고 난해한 이야기들을 언제나 빠짐없이 진지하게 경청해주시고, 훨씬 더 큰 생각으로 현실로 구현해 주셔서 지금 연희 화학공장이 지어질 수 있었습니다.

Q 건물이 지어진 지 몇 년이 지났습니다. 건축주 측에서 원하신 대로 건축물이 잘 이용되고 있는지요. 그리고 공장 직원들의 만족도도 궁금합니다.

생활동 실내 모습. 스마트 팩토리 답게 바람이 아닌 구체축열 냉난방과 결로유도형 복사 냉난방패널을 이용해 실내 온도를 조절한다.  (사진=박영채) 
생활동 실내 모습. 스마트 팩토리 답게 바람이 아닌 구체축열 냉난방과 결로유도형 복사 냉난방패널을 이용해 실내 온도를 조절한다.  (사진=박영채) 

건축물을 이용한다기보다는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희 공장은 주체적으로 사람과 소통에 참여하는 것 같습니다. 공간 곳곳에서 밝게 웃고 어울리는 사람들 모습을 접할 때 공간 설계가 의도대로 잘 정리됐다고 생각하게 하며, 그 모습에 함께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Q 앞으로 공장을 새로 지을 것을 고민하는 건축주들에게 하실 말씀이 혹시 있으시다면.

공장 내 휴식공간 (사진=박영채) 
공장 내 휴식공간 (사진=박영채) 

대한민국이 지금에 있기까지 중소 제조업이 기여한 바는 매우 큽니다. 지금도 중소 제조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고된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여러 어려움을 묵묵히 견뎌 내고 있습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공간을 고민하고 선진 기술을 앞서 도입한다고 해서 그 어려움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공장의 모습을 보며, 공간의 변화가 그 안의 사람도 변화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어요. 공장을 새로 지을 것을 고민하신다면 그 안에 있는 사람도 꼭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생산동은 가로 120m, 세로 72m의 대공간으로 중심부에 에코샤프트가 위치한다. 이곳을 통해 자연채광, 환기는 물론 작업자들이 휴식도 취할 수 있다. (사진 아이아크건축사사무소)
연희화학공장 내부 (사진=박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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