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양재동 언덕배기에 들어선 횃불선교센터를 한두번 가 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를 압도하는 것은 건물 정면에 예수그리스도가 양떼를 거느리고 있는 ‘선한 목자상’ 모자이크 벽화이다. 8층 높이의 대형그림을 그린, 아니 1cm의 타일 240만개를 하나하나 붙여 완성한 모자이크화가 박동인 화백. 그가 사는 경기도 마석은 기자가 춘천의 강원대 출강을 위해 10여 년 간 드나들었던 20여 년 전의 모습은 간데없고 아파트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인조의 동생 능양군 묘 앞에 자리한 그의 화실은 그린벨트 속에 농촌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살림집을 지나 정원 안에 세워진 그의 모자이크작품을 보며 화실에 들어서자 그리고 있던 캔버스에서 유화 특유의 파라핀 냄새가 진하게 풍겨 나왔다.
“유화를 하고 계셨군요?”
2년 전 개인전 때도 모자이크화와 함께 자리한 유화를 보았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모자이크 화가라는 이미지가 강하였기에 다소 의외여서 물었더니 “유화는 화가의 기본이지요”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본래 모자이크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켜주는 그리스여신 MUSE에서 유래한 말로 어떠한 표면 위에 작은 크기의 유리나 자기, 돌 들을 부착하여 장식하는 미술의 한 장르입니다. 최초의 모자이크는 기원전 2,500년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되었으며,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를 거치며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으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후 동서 문화를 절충한 기독교미술인 비잔틴미술의 주역 또한 모자이크벽화죠. 로마 모자이크가 주로 돌조각으로 제작된 반면 비잔틴모자이크는 유리를 고온에 녹여 만든 색타일을 사용함으로써 강렬하고 풍부한 색채를 띠며 유리의 편린에서 반사되는 빛과의 조화는 환상적인 색감을 더욱 느끼게 해 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비잔틴 모자이크는 유리와 미세한 돌가루 및 자연에서 얻어지는 갖가지 안료를 혼합한 후 1,300°C의 용광로에서 녹입니다. 이것을 넓은 판위에 부어 식힌 다음, 불규칙한 직사각형 형태로 일일이 손으로 자르는데 그 크기는 1.5cm이하로서 이를 1,000가지 이상의 색상을 갖게 되며 크기와 두께 그리고 무게가 같은 것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를 일일이 수작업에 의한 짜맞추기로 이뤄지는데, 햇볕에 따라 반사되는 각도가 조금씩 다름으로 보는 이의 눈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또한 겉과 속이 모두 같은 색상이고 물을 전혀 흡수하지 않아 방수는 물론 산성비에 의한 부식의 염려가 전혀 없고 어떠한 기후조건에도 강한내구성으로 그 예술성과 더불어 실용적 재료로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펑소 아름다운 빛깔, 보는 각도에 따라 미묘한 변화를 갖는 재료에 대해 묻자 역사부터 제조방법, 장점까지 자세히 설명해 준다.

▲ 서울 양재동 횃불선교센터 '목자' ⓒ장양순

그는 서울예고 미술과를 거쳐 홍익대학 건축과를 졸업한다. 원래 서양화가를 꿈꿨던 그는 ‘순수예술가의 생활이 어렵기에 응용예술을 하라’는 부모의 권유에 따라 당시 유일하게 미대 속에 속한 홍익대 건축과를 택하였으나 졸업 후 그림과 건축 사이에서 방황하며 미국으로 가게 된다. 그 후 3년 이상을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의 도시들을 유랑하며 수많은 벽화들에 감동을 받았다. 그리곤 대학 때 정인국교수의 슬라이드를 통해 본 멕시코대학 본관건물의 전면벽화를 보러 갔다가 그 화가 우피노 띠가요 외에 디에고 리비에라, 시케이 로스 등 멕시코를 대표하는 거장들에게 매료되어 아예 1년 동안 멕시코에서 생활을 한 후, 자신의 길이 여기 있음을 깨닫게 되어 미국에서 창작활동을 시작한다.

로스앤젤리스 올림픽에 즈음하여 시장직속의 벽화제작국에서 얘산을 지원받아 LA 중심가인 코리안커뮤니티센터에 ‘WELL COME TO LA OLYMPIC, SEE YOU AGAIN 88 SEOUL OLIMPIC’이란 글과 함께 봉산탈춤의 화려한 모습을 그리게 된 것이 벽화제작의 시발이 된다. 이후 후리멘트생명보험 사옥, 죠셀오토센터 사옥 등 많은 벽화를 제작하여 1998년에는 LA 시장으로부터 벽화제작공로상을 받는다.

1983년 MM 슈노 갤러리, 85년 아트코어 갤러리, 87년 시몬스 갤러리 등 LA에서 개인전을 꾸준히 갖으며 아크릴페인팅 벽화를 제작하던 그에게 그토록 염원하던 대형 모자이크벽화는 한국에서 먼저 찾아온다. 신동아그룹 총수 최순영장로가 LA에 있는 그의 벽화에 반하여 부탁한 횃불선교회관의 선한 목자상으로 1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가로24미터 세로25미터의 대작을 완성하게 된다. 이후 그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수많은 모자이크작품을 제작하다가 아예 벽화와 장식물 등 정교한 예술작품을 제작하는 국내유일의 캡 모자이크 아트스튜디오(Cap Mosaic Art Studio)를 설립하여 제자양성에 나섰다. 한편으로는 7회의 개인전 갖는 왕성한 열성도 보였다.

▲ WINDSONG VILLAGE ⓒ박동인

건축주의 간섭과 시공사의 멋대로 시공 때문에 건축사의 길은 너무 어렵고 자존심이 상한다는 기자의 말에, 외국의 경우 일단 선정된 직품이나 작가에 대하여는 어떠한 제재나 간섭이 없는데 한국에서는 건축물의 특성, 건축주의 취향이나 발주청과 관계 등으로 작가의 작품성이나 의도가 모두 반영되기는 어렵다며 “개인전요? 벽화 작업을 하면 건축주들의 무리한 요구가 많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지요. 나만의 세계,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세상을 화폭에 담는 게지요.” 라면서 씩 웃었다. 상대가 있는데,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그래도 그에겐 캔버스라는 도피구가 있으니 우리네 건축사들보다야 행복한 것 아닐까?

그는 모자이크 작품이 쓰이는 곳에 대하여 ‘공공건물의 내외조형물, 교회 성당의 벽화, 기념관의 모뉴먼트, 호텔로비장식 및 입체조각, 개인건물과 주택의 인테리어 등 그 응용 범위가 무한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도시문명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어느 곳이나 비슷해져가는 현대도시는 콘크리트, 돌, 유리 스테인레스 스틸, 알루미늄 등 차갑게만 느껴지는 재료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나마 쉴 자리를 만들어 주는 공원들까지 같은 종류의 재료로 된 가로등, 벤치 또는 작품들이 있음은 재고해야 될 것입니다. 특히 도시공원은 그 속에 생활하는 시민들의 정서를 고려하여, 모두는 아니더라도 이를 중화시킬 수 있도록 특정한 곳에는 반드시 아름다운 색상의 예술작품을 설치해야 될 것입니다.”

그는 그동안 횃불선교센터의 선한 목자상을 비롯 부산 부민병원, 롯데영등포 마그넷, 롯데 제주호텔 중앙분수대, 강남메리어트 호텔과 각종 병의원 등에 많은 작품을 남겼고 최근에는 천안소재 송파드림랜드공원에 설치된 입체물의 모자이크 벽화작업을 완료했다.

스페인가우디성당, 멕시코대학 본관 전면벽화,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분테르트 밧세 뮤지움벽화, 로마지하철역사의 ‘로마시가 선정한 10명작가의 작품’ 모자이크, 브뤼셀 지하철역사, 미국 달라스 국제공항 로비벽화, 미국 미주리시 지하철 본부청사벽화, 미국 LA의 경찰청본부와 이민국청사벽화 및 콘비나 훠레스트로운의 예수의 일생, 허리우드공원의 남북전쟁기념관벽화를 최고의 비잔틴 모자이크벽화로 꼽으면서, 그는 여행 시 건물만보지 말고 벽화도 봐 줄 것을 당부했다.

▲ 호텔 롯데제주 분수대 '사신도' ⓒ박동인

건축을 공부하였기에 다른 화가들보다 공간감이 좀 앞서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또한 이러한 것이 모자이크화를 하게 된 동기인지도 모른다는 그는 건축을 안 하고 그림을 하겠다는 자신의 의지가, 지금 보면 결국 건축과 함께하는 가장 가까운 예술가가 되었다며 ‘이는 운명’이라고 입가에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20대 젊은이들처럼 청바지를 즐겨 입고, 약사인 부인과 함께 예술에 전념하기 위해 자식대신 진돗개 3마리를 미국과 한국으로 계속 데리고 다니는 자유인, 서너평 텃밭에서 생명의 신비를 새삼 터득한다는 자연인, 누나· 자형· 처형· 동서 등 모두가 그림과 조각, 응용미술을 전공한 예술가 집안, 마음에 들면 작품 값 안 따지고, LA에선 한국에서 온 화가들 뒷바라지로 궂은 일 도맡은 의리파, 그의 특징과 수식어는 많기도 하다.

건축을 전공했기에 그 공간속에 머무는 자가 되었다는 박동인, 그는 인터뷰를 마치자, 시골까지 왔으니 무공해 식사나 하고 가라면서 안내한 식당에서 꽁보리비빔밥에 막걸리 한잔을 곁들이며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 중의 한 대목이 지금 인터뷰를 정리하는 기자의 뇌리 속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차가운 현대도시에 따사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사명은 비잔틴 모자이크 작가인 나의 사명입니다. 건축사들은 대부분 대형건물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하는 예술품을 조각으로만 한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쪽에 관심을 가져 준다면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화사한 도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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