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완성됐습니다” 3D 프린터가 말했다
80개, 40%, 300만 가구. 2017년 정부가 목표한(2017년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마련한 자료 ‘혁신성장을 위한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 대응계획’)2020년 스마트시티를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80여개 지자체를 통합플랫폼으로 연결시키고, 300만 가구에 지능형 스마트홈을 보급하며, 빅데이터와 3D 가상설계 등을 이용해 건축 생산성을 40%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멀리 있을 것 같았던 2020년이 어느새 상반기 문턱을 바라보고 있다. 2020년, 계획대로 도시는 얼마나 스마트해졌을까. 그리고 건축계는 4차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건축 법규 처리부터
부동산 가치 계산까지
다른 분야처럼 건축계에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술들이 등장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복잡한 건축 법규를 처리하는 것은 물론, 건축물 높이 제한, 용적률, 건폐율, 해당 법규 등을 검토해 부동산 수익률을 분석할 수 있다. VR을 이용하면 가상으로 지어진 공간 안에서 해당 건물 해당 층수에서 각도를 조절해가며 바깥 조망을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햇볕이 드는 방향과 그림자까지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은행 등 금융권을 비롯해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주택도시공사 등의 공공기관과 법인 등에서 이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이 기술로 지난 1년 동안 검토한 토지 면적은 15만 평이며 그 가치는 약 1조 5,000억 원 규모에 이른다.
◆ 세계에서 주목하는 3D 프린팅 건축
2시간 만에 집도 뚝딱
미래 건축 중 하나로 꼽히는 3D 프린팅 건축은 이미 미국, 유럽, 중국 등에서는 관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인포홀릭 리서치는 ‘로봇 기술을 활용한 3D 프린팅 주택 건축 시장’을 통해 2025년 3D 프린팅 건축 시장이 약 1억90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재료나 기술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 3D 프린팅 건축의 기본 원리는 3D 프린터가 설계대에 따라 고분자 화합물이 섞인 특수 콘크리트를 착착 뿜어 구조물을 올리는 식으로 건축물을 짓는다. 거푸집을 짓고 해체하는 복잡한 과정이 없기 때문에 공사 기간과 공사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 3D 프린팅 건축이 미래 건축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두바이는 보스턴에 본사를 둔 3D 프린트 건설사 아피스 코어와 함께 최근 약 640미터 면적에 높이 9.4미터 규모의 2층짜리 3D 프린팅 건축물을 완공했다. 스마트시티 월드 보도에 의하면, 이는 2019년 말 기준 세계 최대 3D 건축물이다. 3D 프린터를 건축 현장으로 이동시켜 별도의 조립 없이 벽을 만들었다. 단열재, 지붕, 창문 등은 전통적인 건축 방법으로 설치했다. 3D 프린터로 지은 건축물은 미국에도 있다. 텍사스 주 오스틴 시에 있는 6제곱미터의 규모의 노숙자를 위한 ‘웰컴 센터’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단 27시간 만에 지은 건축물이다.
3D 프린터로 지은 집도 있다. SQ4D 사는 3D 프린팅과 로봇건축 시스템을 활용해 60제곱미터의 집을 8일 만에 지었다. 그 중 3D 프린팅 작업에 소요된 시간은 48시간, 건축 자재비는 6천 달러 미만이었다. 이는 보통 공사에 비해 40퍼센트 이상 낮은 수준이다. 한편 3D 프린팅 집이 건축물로 소용이 있을까 싶은 의문을 해소시켜주는 집도 있다. 프랑스에 있는 총 면적 95제곱미터의 Y자 모양 하얀 주택엔 현재 프랑스인 라마니 씨 가족이 거주 중이다. 이 집은 낭트 대학의 3D 프린팅 기술을 갖춘 3D 프린터가 4미터 길이의 로봇 팔을 움직여 설계도면대로 벽면을 쌓아 올렸다. 창호와 지붕 작업은 사람이 마무리했다. 다른 3D 프린팅 건축과 마찬가지로 건축비는 전통 방식에 비해 20%가량 절감했으며, 시공에는 이틀이 걸렸다.
이밖에도 다양한 나라에서 3D 프린팅 건축물 시공을 계획 중이다. 앞서 언급한 낭트 대학은 프랑스 북부에도 라마니 씨 주택과 비슷한 방식의 공공주택 18채를 더 지을 예정이다. 멕시코는 올 초 가난한 농촌 지역에 3D 프린터로 만든 주택 2채를 완공했으며, 올해 말까지 50채의 신규 주택을 추가로 건축해 '3D 프린트 주택가'를 만들 예정이다. 지난해 말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의회는 3D 프린터로 노숙자를 위한 미니 주택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시는 2023년까지 세계 최초의 상업용 3D 프린팅 주택 단지를 건축할 계획에 착수했다. 멕시코, 아이티, 엘살바도르 등 남미 빈곤 지역에서도 현재 3D 프린팅 주택 800여 채가 지어지고 있다. 3D 프린팅 건축은 비단 해외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최근 서울 중구 장충동 현대BS&C 사옥 앞에 아담한 회색 경비실이 지어졌는데, 이는 국내 1호 3D 프린팅 건축물이다. 넓이 10제곱미터, 높이 2.2미터의 이 경비실을 짓는 데 소요된 시간은 14시간이었다.
◆ 건축 공사 현장에도 부는
스마트 바람
건축 공사 현장에도 스마트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한 공사 현장에 도입된 머신 컨트롤(Machine Control)은 건설 장비에 디지털 센서를 탑재한 것으로, 기사가 운적석에서 작업 범위, 진행상황, 주변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굴삭기로 별도의 측량작업을 하지 않고도 굴착 작업의 위치와 깊이 등 각종 정보를 20밀리미터 오차 내에서 정밀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한 건설사에서는 스마트기기 앱으로 건물에 부착된 QR코드를 스캔해 시공 현황을 실시간 확인하고 있다.
다관절 산업용 로봇을 현장에 적용한 곳도 있다. 뻣뻣하게 움직이던 기존 로봇과 달리 기술의 발달로 이 로봇은 사람의 손만큼 정밀한 손놀림을 자랑하며 24시간 작업이 가능하다. 업체 측은 공사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뿐만 아니라 사고 위험이 높은 공정에 투입할 경우 안전사고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로봇 산업은 도장, 벽화 분야까지 넘보고 있다. 최근 개발된 프린팅 로봇은 프린팅을 정확하게 작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작업하기에 위험한 고층 건축물까지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 향후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예측된다.
◆ 살아있는 벽돌이 있다?
건축 자재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미 콜로라도대 연구진은 광합성 박테리아를 이용해 시멘트(탄산칼슘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아직 기존 콘크리트의 강도를 따라갈 수준은 아니고, 일부 기술에서는 윤리적 논란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이 벽돌을 계속 개발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일명 ‘살아있는 벽돌’로 알려진 이 벽돌은 손상되면 스스로 재생하고 증식한다. 원리는 ‘박테리아 증식’이다. 벽돌 조각에 영양분과 모래, 젤라틴, 온수를 섞어주면 박테리아가 증식해서 벽돌이 만들어지는 원리다. 현재 연구진은 1개 벽돌이 3세대에 걸쳐 8개 벽돌이 되는 지점까지 실험한 상태다. 연구가 진행돼 단점은 보완된다면 손상된 부분을 재생하거나 증식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 건축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박근 교수 연구팀의 4D 프린팅 기술도 주목할 만하다. 이 연구팀은 최근 형상기억 기능이 없는 열가소성 수지와 4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물체의 모양이 바뀌는 연구를 발표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ABS 수지를 층층이 쌓은 뒤 열을 가하면 납작한 별 모양은 입체 꽃받침 형태로, 길쭉한 막대는 하트 모양의 고리로 바뀐다. 이번 실험은 섭씨 150도에서 변형이 이뤄졌지만 연구진은 앞으로 60도에서도 가능할 수 있도록 연구할 계획이다. 헤어드라이어와 같은 일상 도구를 사용하거나 다양한 개인 맞춤형 도구를 쉽게 만들도록 하기 위함이다.
◆ 장점과 한계 명확하나
가능성은 무궁무진
건축계에 4차 기술이 실제로 적용된 비율은 아직까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현재까지 개발된 3D 프린팅 건축의 경우 특히 아직까진 개발 초기 단계다. 건물보다 더 큰 초대형 3D 프린터 장비를 마련해 공사 현장까지 이동시킬 때,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장비나 법적 정책들도 미비하다. 이러한 이유로 ‘3D 프린팅 건축물은 5층 안팎이 한계’라거나 ‘3D 프린팅 건축물이 건축 시장에 들어오려면 좀 더 장기적으로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의견들이 나온다.
학계에서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건축교육에 활용하자는 의견이 제기된다. 강부성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제39대 대한건축학회장)는 “퀄리티 검증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이 기술들을 잘 사용하게끔 하는 건축교육은 필요하다”면서 “보통의 설계로는 안을 몇 개 못 만들지만 AI를 이용하면 몇 백 개까지 만들어 테스트해볼 수 있으니 교육에 활용하기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건축 공사 현장에서는 4차산업기술에 보다 호의적인 편이다. 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건설기업의 75.3%가 ICT 융합 건설기술을 인지하고 있으며 63.9%가 10년 내 활성화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건설 기업의 노동 생산성은 타 산업은 물론 해외 건설 분야와 비교해도 최하위 수준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스마트 기술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