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주 찾는 영천시 임고 서원
정몽주 선생의 일생, 한국 서원의 역사가 숨 쉬는 곳
임고 서원은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의 학력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경상도 관찰사 정언각의 건의로 1554년 명종 9년에 창건되었다.
‘포은 정몽주 선생’하면 보통 선죽교, 단심가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포은 정몽주 선생의 생가가 영천시 임고면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학창 시절 누구나 열심히 외웠던 단심가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 있으랴
임고 서원에는 한국 서원의 전형적인 배치 형식이 잘 나타나 있다. 전형적이란 두 개의 요소로 정리할 수 있다. 바로 서원의 중심이 되는 마당과 축선이다. 서원은 보통 가운데 마당이 놓이고 이를 중심으로 서원의 주요한 건물들이 지어진다. 임고 서원 역시 서원의 주요 건물들이라고 할 수 있는 동재, 서재, 누각과 강당인 홍문당이 마당을 중심으로 둘러서 있다. 마당의 위치는 서원 전체로 볼 때 중앙에 있다. 축선은 서원 전체를 가로지르는 일종의 기준선이다. 이 축선 역시 서원 전체를 놓고 볼 때 중앙에 있다. 즉, 서원의 중심 뼈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축선은 시설 전체를 잇는 길이 되기도 한다. 임고 서원에도 이런 축선이 존재한다. 이 축선을 따라 전문, 누각, 강당, 사당이 배치된다.
동방이학지조(東方理學之祖) 송비탑
이학이 성리학을 줄여서 부르는 말인 것을 보면 포은 정몽주 선생은 동방 성리학의 대가란 뜻이 된다.
조룡대와 용연
포은이 낚은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용(龍)이라고 해서 조룡대라 부른다. 그리하여 조룡대 밑에 있는 연못은 용연이라는 말로 부르게 되었다. 평소 포은 정몽주 선생이 낚시를 즐겨 하던 곳이라고 한다.
임고 서원의 명물 은행나무
임고 서원 앞에 있는 은행나무는 수령이 500년이나 된다. 이 은행나무는 임고 서원이 수리산에서 이곳으로 옮겨올 때 함께 옮겨온 것으로, 500년이 지난 노거수(老巨樹)임에도 늠름한 풍채를 자랑하고 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의 생가(生家)
포은 정몽주 선생은 이곳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서 1337년 12월 22일 부(父)일성 부원군 운관공과 모(母) 영천 이(李)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참고로 임고 서원에 가면 포은 정몽주 선생의 일생을 하루 일정으로 볼 수 있다. 인근에는 안강 양동마을과 운곡서원, 보현산 천문대, OK목장, 경주관광단지 등 여러 볼거리와 답사처가 즐비해 우리 조상들의 숨결과 역사를 이해하기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