夢幻

2012-06-01     이맹룡 건축사

#1 새벽에 눈을 떴다.

무슨 해괴한 꿈을 꾼 것 같은데 뭐라 꼭 집어 설명할 수가 없다. 본디 꿈이란 무의식의 세계라 의식의 세계에선 넘을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다.

 

#2 夢幻

최근 나의 삶이 몽환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침부터 열심히 일하지만 저녁이 되어도 딱히 한 것이 없다.

건축주로부터 일을 의뢰받으면 우선적으로 인터넷 검색부터 한다. 네이버지도에 들어가서 위성사진, 로드뷰로 현장을 답사하고 대강의 지적현황을 확인한다. 토지이용규제정보서비스에서 토지이용계획을 열람하고, 법제처에서 건축법 등 관련법규를 확인한다.

건축사협회에서 조례나 기준을 검색하고, 부가적으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네이버에서 지식을 보충한다.

일의 양과 정도를 가름하여 개략설계비를 결정하고 제안서를 메일로 보내고 문자를 날린다. 따로 전화하기도 멋쩍어 며칠을 버티다 전화를 하면 터무니 없는 설계비를 제시하고…

직접 현장을 밟아 보지도 않았지만 이건은 꿈 속의 일처럼 금방 지워질 것이다.

 

#3 몇년 전 보았던

인셉션이라는 영화가 생각나서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다시 한 번 보았다.

주인공 코브, 꿈과 현실, 꿈 속의 꿈, 꿈의 가장 밑바닥인 림보, 다시 보았지만 결말이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기는 매한가지였다. 영화에서 코브조차도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될 때는 토템이라는 팽이를 돌려서 팽이가 멈추면 생시이고 아니면 꿈이란 걸 인식한다. 코브는 천재 건축학도 아리아드네에게 꿈의 설계를 맡기면서 기억에 의존해서 설계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코브의 장인 마이클케인경은 나는 꿈을 만드는 남자라고 말한다. 과연 기억이 없는 건축이 가능할까? 꿈의 조작이 가능할까?

 

#4 건축사는 꿈을 설계하는 직업이다.

건축주의 평생의 꿈이었던 집을 대신 꿈꾸고 현실로 만들어 준다. 간혹 우리는 건축주의 꿈이 아니라 나의 꿈을 설계하고 있는 자신을 본다.

나에겐 꿈과 현실을 구분할 토템이 없다.

 

#5 재작년 몽골에 출장을 갔다.

예정에 없던 일이 긴급하게 생겨 현지에서 설계업무를 하게 되었다. 컴퓨터 상에 네이트온으로 국내직원과 실시간 대화하면서 설계를 할 수 있었다.

자료조사 및 설계업무 분장 등 마치 같은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들 정도로 완벽하게 공동 작업이 가능하였다.

 

#6 며칠전 건축과 학생들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건축사가 되면 개업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노”라고 대답했다. 개업을 하는 순간 건축사 이전에 경영자가 되어야 함을 상기시켜 주었다. 매월 말이면 직원들 월급, 임대료, 외주비…등을 감당해 내야 하는 생활인에게 우리가 꿈꾸었던 건축사의 모습은 기대난망이다.

건축사는 영혼이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고객의 꿈을 설계해야 한다. 젊은 영혼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어야 한다. 그들에게서 우리가 못다한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7 클라우드 서비스가

미래의 대세인 것 같다. 예상보다 빨리 공간적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업무환경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우리 협회도전 자협회로의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협회가 클라우드가 되어 사무실을 개업하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세상을 꿈꾸고 여행할 수 있는 정거장이 되어야 한다. 건축사가 행복한 협회가 되어야 한다.

#8 선조들의 선견지명이었나?

인생은 뜬구름 같다고 했다. 일장춘몽이라고도 했다. 이제 우리가 비몽사몽 뜬구름(클라우드)을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