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사이클

2009-04-01     장양순 건축사

요즈음 라이프 사이클이란 말은 '상품이 시장에 등장하여 매상이 끊어질 때까지의 과정'이란 경제용어나 보험설계 등에 자주 쓰이지만 원뜻은 출생에서 사망까지 인간의 생활주기를 말한다.

필자의 학창시절 강명구 교수께서 '너희들은 건축학도로서 내가 못한 일 즉 라이프 사이클에 맞는 자신의 집을 설계하여 지어보라'고 하였다. 자녀계획에 맞춰 설계를 한 후, 신혼부부일 때는 둘만 사는데 필요한 부분만 짓고, 자녀들이 태어나면 그 때마다 그들을 위한 방들을 늘려가라는 것이었다. 결국 그러한 꿈은 이루지 못하고 다시 제자들에게 은사의 말씀을 되풀이하고는 있지만, 나의 라이프사이클과 주택의 라이프사이클을 맞춰 일생을 한곳에 정착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참 멋진 일임에 틀림이 없다.

20수년 전 교사부부의 라이프 사이클에 맞는 주택을 설계하게 되었다. 그들은 시골태생답게 전원주택을 꿈꿔 자곡동에 부지를 마련했는데, 현관에서 지하층과 다락방을 모두 계단으로 연결하였다. 지하층은 세를 주어 외출 시에도 안전을 도모하며, 다락방은 두 자녀가 쓰다 분가하면 임대하고, 1층의 모친방도 사후에는 현관에서 문을 내어 세를 주며 부부는 안방만 사용할 수 있게 설계했다. 사람에 비해 집이 크면 집에 사람이 눌리고, 빈방이 많으면 가세가 기운다는 선조들의 오랜 경험과 노후의 재테크까지 감안한 계획이었다.

서울시는 내년부터 건축물의 생애관리시스템을 가동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건축의 기본계획 및 심의에서부터 ‘건축허가 사용승인’ ‘성능유지 용도변경’ ‘수명종료 철거’까지 모든 과정에 걸쳐 건축물을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홍역, 볼거리 등 각종예방접종을 하며 성인과 노년에도 그에 맞는 암을 비롯한 각종 검진을 통하여 병을 예방하고 있다. 또한 자동차도 엔진오일은 물론 휀 벨트 등 모든 부품을 주기에 맞춰 교환함으로서 최상의 컨디션과 불의의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한 개인이나 한 가족의 몸과 차랑도 이럴진대, 불특정 다수인이 사용하는 건물이, 더구나 전 건물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소형건축물이 사용검사 2년 뒤부터 방치됨으로써 가져온 피해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제라도 서울시에서 매뉴얼에 의해 체계적 관리를 한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며, 전국적 시행으로 인명존중사회가 빨리 실현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