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영화” 이야기

2012-03-01     김향희 건축사

몇 해 전부터 모교에서󰡒영화 속의 건축󰡓이라는 강좌로 후배들과 만나고 있다. 건축을 전공한 후배는 물론, 교양과목으로 개설된 강좌인지라 타과의 학생들도 듣게 되는 강좌다.

과연 영화 속에서 그 얼마나 건축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시작된 강좌는 어느덧 5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충남 보령에 근거지를 두고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매주 대전으로 출장해야 하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해 올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건축을 해오면서 발견되는 수많은 영화적 내용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많은 영화감독들이 건축을 이야기 하고, 건축인들 또한 영화를 이야기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 역시 그런 맥락에서 영화를 이야기 한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강좌를 찾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영화를 좋아하거나 또는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다. 간혹, 본인의 시간표에 맞춰 교양 과목을 찾다보니 오게 되는 학생들도 있지만, 이 또한 필자로 하여금 아주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가 얻어지는 감동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의 기대치가 훨씬 큰 효과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이라는 건조한 물성이 품고 있는 그 안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나는 매 시간 영화를 매개체로 등장시킨다.

영화 “My Architect”는 Louis Kahn의 아들인 Nathaniel Kahn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다큐 영화다. 감독은 73세에 거리에서 객사한 아버지의 미스터리한 죽음에 대한 의문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 건축물과 대면한다. 감독의 수행적 여정에 따라 화면이 옮겨지면서 하나 둘 만나게 되는 건축물은 단순한 기능적 공간으로서의 일반적인 사고에 멈추지 않음은 물론, 아버지(Louis Kahn)와 이야기 할 수 있는 매체로서 감독과 관객에게 다가선다. 건축물에 주제와 이야기가 있고, 때론 소통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처음 강좌를 접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못 신기한 눈으로 건축을 보기 시작한다. 기분 좋은 일이다. 슬슬 학생들과 나와의 건축적 소통도 시작된 것이다.

대체로 건축과 영화를 연계해서 묶어 본다면 앞서 거론한 영화 “My Architect”처럼 건축사가 주인공 이거나, 건축을 전공한 감독의 영화, 내지는 건축물을 주제로 하는 영화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굳이 필요치 않은 것은 영화 속에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그를 배경으로 하는 건축물이 이야기의 전개를 받쳐주고 있으며, 주제를 부각 시키거나,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공간의 감성 전달 전반에 깔려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나의 건축과 영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누군가가 내게 어떻게 “영화 속의 건축”으로 강의를 하게 되었냐고 묻는다.
내 대답은 언제고 영화와 건축은 꼭 붙어 다니는 껌 딱지랍니다.
모르셨나요? 하며, 웃어 준다.

건축을 하며 만나는 소소한 일련의 일들이 영화 속 어떤 장면과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것이다. 더구나 필자가 머무는 이 곳 소도시의 경우는 그 다양성면에서 대도시와 달리, 다양한 경우의 수를 만나기에 매우 적당한 곳이 아닌가 싶다.

그야말로 사연도 많고, 이유도 많으며, 절절한 애증도 만들어 내는 일상과 수없는 대면을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 타는 감정의 기복을 만들기에 나는 이곳에서 내 삶의 영화를 찍어 내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내겐 좀 황당한 꿈이 있다. 내 삶 속 건축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나누는 한 바탕 잔치에 내가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때론 주인공의 대상자가 되어 작은 영화를 만들어 보는 일이다.

인생의 주인공은 지금 바로 내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