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발(發) 파문(波紋)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는 서른두 살이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늙어서 하지 말아야 할 열여섯 가지 금기(禁忌)를 정리해 목록을 만들었다. 이를 '스위프트의 다짐(Swift’s Resolutions)'이라고 한다.
이 목록에는 ‘청하지도 않은 조언이나 훈계를 늘어놓지 말 것’, ‘많은 말, 특히 내 얘기를 삼갈 것’ 등 입단속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 시키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아 사람들 피곤하게 하지 말자는 굳은 결심이 표현만 달리해 여러 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자기 말 많이 하는 사람보다 남의 얘기 잘 들어주는 사람이 환영받는다. 들어주는 척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려고 애쓰는 사람, 한마디로 ‘공감(empathy)’할 줄 아는 사람이 인기가 높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어떤 판단이나 비판도 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멋지게 나이 드는 법』이란 책을 쓴 미국의 여류작가 도티 빌링턴은 말한다. 표정과 말로 맞장구를 쳐줌으로써 상대의 감정과 처지를 이해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구랍 19일 개최된 한국건축단체연합(FIKA) 대표회장 이취임식에서 언급된 이언구 대한건축학회장의 취임사가 건축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년여 동안 대한건축사협회 회원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지루한 논쟁으로 에너지를 소모했던 ‘단체 통합’이라는 화두를 또다시 꺼낸 것이다. 취임사를 보면 통합의 당사자가 아닌 조직의 장이 타 단체의 통합을 강요하고 있다. 더군다나 2012년 4월 30일로 통합 결정의 날짜까지 못 박았다. 건축사들의 생존보장과 권익 신장을 논하면서 건축사단체와 비 건축사단체의 통합을 논하고 있다. ‘건축사단체의 통’을 논하는 것인지, ‘건축단체의 통합’을 논하는 것인지도 모호하다. 언급하고 있는 대상들의 기본적인 본질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3자가 뜬금없이 ‘단체통합’을 운운한다면 환영받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건축사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 궁금하다. 어차피 건축사들 문제는 건축사들 스스로 풀어야 한다. 플라톤은 “현명한 사람은 할 말이 있을 때만 말한다”고 했다. 공인으로서 오피니언 리더는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스위프트의 다짐’을 되새겨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