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辛卯) 토끼
세월의 빠름을 뜻하는 말 중에 ‘토주오비(兎走烏飛)’가 있다. 예부터 토끼는 달을 상징하고 까마귀는 해를 상징한데서 연유한 것으로, 달이 달리고 해가 날듯이 세월이 빠름을 이르는 말이다. 토끼를 이르는 한자는 넷째 지지로서 ‘묘(卯)’가 있고, 토끼와 달의 이칭으로 사용하는 ‘토(兎)’가 있으며 교활한 토끼 ‘준(㕙)’도 있다.
꾀보로서 토끼는 신재효 명창이 부른 수궁가에 잘 나타나는데, 이의 원형인 귀토설화는 이미 삼국사기 김유신 전에 기록되어 있다. 김춘추가 백제군을 치려고 고구려에 원병을 청하러 갔다가, 죽령 땅을 내놓으라는 왕의 말에 불가하다 하여 오히려 구금이 되자, 그의 뇌물은 받은 고구려 총신 선도해가 말한다. “용왕의 딸이 병이 들어 약에 쓸 토끼 간을 얻기 위해 거북이가 토끼를 데려가나, ‘간을 두고 왔기에 다시 가서 가져오겠노라’하여 뭍에 돌아온 후, ‘세상에 간 없이 사는 것도 봤냐’는 이야기를 귀공도 알지 않소?” 이에 김춘추는 “태양에 맹세하고 돌려주겠다”는 말로 무사히 귀국한다. 삼국통일의 승자와 패자, 그 밑그림이 그려진 순간이다. 이러한 꾀보로서의 토끼는 호랑이를 골려먹는 민담 등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같이 토끼는 신화적으로 힘이 약하고 몸집이 작은 것에 반해 매우 영특하고 착한 동물로 그려진다. 유교에서는 민첩한 측면에서 충성스런 동물로 보고 있다. 경북 문경의 ‘토천(兎遷)’이란 곳은 고려 태조가 전투하다 길을 잃어버렸는데 토끼가 나타나 절벽을 뛰면서 길을 안내했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다. 도교(道敎)는 달에서 방아 찧는 민간설화에 근거, 불사약을 만들고 있다는 비정 하에 장생불사의 표상으로 쓰고 있다.
서양에서는 마녀의 상징으로 선상에서는 ‘토끼’란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한다. 아메리칸 인디언은 최초의 인간을 지하세계에서 해방시킨 성스러운 동물로, 아즈텍 문명에서는 불륜을 상징한다. 이렇듯 지역, 종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토끼의 보편적 공통점은 영리 내지 교활하다는 것이다.
우리 문화 속에서 토끼는 12지신의 하나로서 왕릉의 호석에 조각으로 나타나고, 호랑이와 함께 민화에도 등장한다. 경복궁 근정전에는 돌로 만든 토기좌상이 있고, 고려시대의 청자칠보투각향로(국보95호)는 토끼 세 마리가 앙증스럽게 떠받치고 있다. 선암사 대목전 법당문에는 토끼의 소신공양 전설과 함께 달에서 방아 찧는 두 토끼 조각이 우측의 삼족오와 함께하고 있다.
일본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조작파문의 광개토대왕비 신묘(辛卯)년 조가 새삼스러운 신묘(辛卯)년이 밝았다. 두 토끼 잡으려다 몽땅 놓지는 우를 범하지 말고 하나라도 제대로 성과를 거두는 새해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