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룸

2009-12-16     권영호 건축사

최근 건축법령 어디에도 없는 ‘원룸’이라는 신종어의 용도를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원룸이란 하나의 공간에서 거실, 침실, 식당, 작업실 등 모든 주거기능을 다함께 하는 최소한의 주거형태가 아닌가 싶다.

70∼80년대에는 수도권 대학교의 근거리 지역에서, 통학을 못하는 지방 학생들을 위하여 ‘자취방’이란 이름으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이 언제 부터인지 도시의 주거지역내 깊은 곳에서도 그 자취방과 같은 원룸이라는 것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산업단지가 있는 도시는 공장근로자의 수요에 부응하여 기숙사를 대신하는 원룸이 주거지역에서 공급되고 있지만 그들만의 수요로 보기에는 그 수량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어느 도시를 가나 원룸이라는 임대 안내문을 너무도 쉽게 볼 수 있어 낯설지도 않다. 지난 1997년 말에 IMF라는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그 수요가 급진적으로 불어난 것이 아닌가 싶다. 원룸이란 말 그대로 혼자서 생활하는 공간이라고 본다면 그 수요가 많아졌다는 것이 우리에게 서글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기업마다 자사의 생존을 위해 감원바람이 불어, 직장을 잃고 거리를 방황하는 실직자들이 지하철이나 철도역사에서 노숙하는 사태까지 겪은 뼈아픈 과거가 우리에게 많은 상처로 남아있다. 정부에서 많은 외국자본을 들여와 외적인 경제안정을 보일 때 신용카드라는 돈 먹는 괴물(?)이 또 한번 우리의 가정을 파탄시키고 많은 사람에게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을 찍어 거리로 내 몰았었다.

어려운 경제난에 결혼을 늦추고 혼자 생활하는 독신자도 증가 하였겠지만 높은 이혼율도 원룸의 수요 촉진에 한 몫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답답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G20의 강대국이라고 하는데...그다지 우리의 생활은 여유롭지 않게 느껴지고 많은 사람들이 어렵게 살아가는 이유는 왜일까? 원룸에서 살아야만 하는 많은 사람들의 뼈아픈 사연들이 우리의 심정을 울린다.

이렇듯 시대적환경이 만들어낸 원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서운함으로 다가온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가구수위반이라는 불법건축물이 양산되어 많은 건축주들이 이행강제금이나 과태료에 시달리며, 범법자로 낙인 되고 또한 불법개조로 인한 구조적 결함이 발생할 수 있는 건축물에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원룸의 세입자는 누가 보호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애절한 애환은 누가 달래줄 것인가! 불법인 건축물에 이행강제금이나 부과하는 졸속 행정으로는 계속되어지는 불법건축물의 양산을 저지할 수 없고 원인과 과정을 검토, 연구하여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한때는 아파트의 발코니 무단확장으로 인하여 불법증축과 구조적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하던 것이 문제화되어 확장발코니를 법적으로 구제하고 구조적 결함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한 사실이 있듯이 소외된 계층의 원룸에 거주하는 어려운 사람들도 국민의 한사람으로 새롭게 인식하고 그들의 고통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할 때라 생각된다.

원룸의 수요가 계속하여 증가한다고 볼 수 없으며, 국가가 발전하고 국민 삶의 질이 높아진다면, 자연스레 원룸이라는 형태는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12월 달력의 마지막장을 바라보며 어렵고 힘든 많은 불우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 그들의 그늘진 얼굴에도 작은 웃음이 피어나길 기원하며 국가와 이웃이 있어 힘들지만 살아가는 의미가 느껴지길 간절히 소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