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그레이스랜드 묘역의 교훈, 건축가 추모공원을 꿈꾸며
한국 최초의 근대 건축가는 간송미술관을 설계한 박길룡으로 알려져 있다. 1920년부터 건축계에 몸담은 그는 1943년 이화여전 강의도중에 쓰러져 공평동 사무실로 옮겨졌고 4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목원대 김정동 교수의 기록에 따르면, 박길룡의 묘는 구리시 쪽 아차산과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있는데, 작고 초라한 비석은 마모되어 글씨마저 구분하기 힘든 정도라 한다. 반세기 이상 흘렀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 박길룡의 위상을 생각하면 왠지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누가 뭐래도 한국 최초의 근대 건축가 아니던가? 한국 근대건축사에 남긴 업적은 말 그래도 선구적이지 않은가? 필자가 박길룡을 떠올리면서 루이스 설리반을 떠올려 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미국 근대건축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루이스 설리반이었다. 그가 사망한 것은 1924년. 박길룡보다 20년 앞선 시점이다. 그러나 시카고 그레이스랜드 묘역(Graceland Cemetery)에 있는 설리반의 묘비는 정갈하고 건축적이다. 그의 묘에는 생전에 즐겨 사용했던 장식패턴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 설리반의 묘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설리반의 묘에서 호수 쪽으로 이동하면 미스 반데 로에의 묘가 나타난다. ‘Less is More’를 외쳤던 그의 슬로건처럼 간결하기 그지없다. 바닥에 놓인 검은색의 장방형 대리석에 건축가의 이름만 적혀있을 따름. 미스의 손자인 건축가 디크 로한에 의해 디자인된 군더더기가 없는 묘비는 미스의 건축관을 후대에 알려준다.
설리반과 미스가 묻힌 그레이스랜드 묘역은 1860년대 건설되었다. 예전에는 시카고 시경계에서 2마일 정도 떨어진 곳이었지만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지금은 도심 영역에 속한다. 그레이스랜드 묘역의 분위기는 매우 독특하다. 건축가와 예술가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묘역으로 묘비 디자인은 각양각색이다. 신전양식을 본딴 무덤도 있고 피라미드도 있고 고딕양식도 있다. 시카고학파를 이끌었던 바론 제니와 다니엘 번햄, 근대건축의 리더인 미스 반 데 로에, 시어즈타워를 설계한 구조디자이너 파즐러 칸의 묘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 건축을 좋아하고 건축계의 위인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 그래이스랜드 묘역을 방문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레이스랜드에서 만난 웬만한 사람들은 설리반과 미스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건축 전공자조차도 박길룡을 잘 모른다. 현대건축을 이끈 김수근과 김중업에 대한 기억 또한 점차 엷어져 갈 것이다. 외국건축가의 이름은 줄줄 외우면서도 국내 건축가에 대해선 관심 밖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 열흘간 소쇄원 제월당의 마루에 앉아 생을 정리했던 김수근의 묘는 홍릉연수원에 있다. 가묘는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쑥덤불로 뒤덮인 작고 소박한 실제 무덤에서는 김수근의 건축적 특질은 발견하기 힘들다. 방문객도 별도 없다. 김중업의 묘는 어디 있는지 정보가 없다. 한국에 그레이스랜드와 같은 건축가들의 묘역이 있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추모공원 성격도 괜찮을 듯싶다. 설리반이나 미스의 묘비처럼 건축가의 디자인 특성이 담긴 묘들로 구성된 묘역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인 것이다.
미래학자이자 트렌드 전문가인 페이스 팝콘(Faith Popcorn)은 21세기를 위한 트렌드를 논한 ‘미래생활사전’(Dictionary of the future)에서 이색적인 예견을 했다. 미래에는 자신의 묘를 직접 디자인할 것이라는 독특한 예견이다. 건축가들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필립 스탁과 같은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묘비와 마이클 그레이브스나 이오 밍 페이 같은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무덤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시카고를 현대건축의 중심지로 견인해온 건축가들이 잠든 그레이스랜드에서의 추억과 페이스 팝콘의 논지에 비추어 건축가 추모공원을 제안해 보는 것이다. 후대의 건축학도들이 추모공원을 찾을 때, 당대의 건축문화를 선도한 건축가들에 대한 존재감에 휩싸일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