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시나브로 갑시다
이제 문화는 ‘삶의 방식’이라는 1차적 의미를 넘어서 상품화되고 있으며 도시공간으로 깊이 들어오고 있다. 생활공간을 재생하고 문화적으로 가꾸고자 한다. 이제까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려 온 주변을 살펴보고 삶의 질을 바꿔 보겠다는 의지이다. 달리 보면 신도시 개발의 한계 속에서 등장한 대안적 개발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 원인이야 어찌되었던 이제라도 도시를 문화적으로 재생하고자하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전시적이거나 너무나 서두른다는 느낌이다. 도시재생은 우리 삶의 비전과 방향을 제시해야 하며 사업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심지어 부분적인 투자부터 우선되는 곳도 있다. 각 지자체 마다 중복투자도 우려된다. 이것은 비문화적인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아니 자칫하면 우리의 삶터인 일상의 공간도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시 소비되어질 것이다. 결국 그 희생자는 우리들의 삶터이다.
최근 들어 도시재생정책들을 살펴보면 문화와 예술이 도시의 병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각 지자체마다 도시재생, 경관계획, 공원 및 테마거리 조성 등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화두는 단연 ‘문화’이다. 가히 문화의 홍수라고 할만하다. 그 동안의 공간정책들이 얼마나 비문화적으로 자행되었으면 이리도 문화를 부르짖고 있는가. 문화나 예술이 때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지자체마다 유행처럼 만들어대는 테마거리나 공원을 살펴보라. 테마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디자인 되지 않은 시설들로 눈이 피곤하다. 이는 시민들의 문화적 안목을 무시하는 일이다. 차라리 다음 세대에 남겨 두라. 이것이 지속가능한 개발의 시작이다.
도시정책들은 특정집단의 이익이나 정책결정자의 임기와 관계없이 문화적, 단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래야 도시공간이 새로운 가능성에 놓이게 될 것이다. 도시재생은 시간과 정성이 요구된다. 행정가의 임기 내에서만 끝내야 할 일은 아니다. 전문가의 실험장은 더욱 더 아니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서 더디 가도 사람 생각하고, 제대로 만들어 나가는 문화적 안목이 필요하다. 이것이 문화다. 일상의 삶터인 생활공간은 더욱 더 그리하여야 한다. 생활공간은 문화공간이 아니라 단지 생활공간이다. 이 공간은 그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주민들의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방도시가 대개 그렇듯이 부산은 스스로의 모습을 보기 보다는 늘 타자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검열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마을만들기는 의타적이거나 종속적이 아니라 자율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주민들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보여주기로 진행된다면 그 공간은 다시 한 번 타자화 되고 말 것이다. 우리네 삶도 풍경과 따로 떼어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바람직한 재생은 주민들의 삶을 담아내야 하며, 또 다른 개발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려되는 것은 저가주택에서 잘 살아오던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재생은 주민들의 희망을 담아내야 한다. 누군가는 재생을 통한 명품동네를 말하지만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생존과 현실의 공간이다. 도시공간과 주민들의 삶은 서로 스며들고 섞이어 희망의 장소로 새롭게 엮어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