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쓰는 노파여

2018-01-16     함성호 시인

낙엽 쓰는 노파여
- 장석남


11월의 아침을 쓰는 노파여
저녁을 쓰는 노파여
바람까지도 쓰는 노파여
낙엽을 이기려는가?
낙엽 쓰는 이 없는 그 어느날을
내게 주시려는가?
고요의 그 어느날을 어쩌시려는가?
나뭇가지 사이 젖어가는 하늘이나
한꺼번에 보이시려는가?
어머니여,
비질 소리가 노래로다
서럽게 서럽게 멀어지는 노래로다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장석남 시집 / 창비 / 2017
어느 날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동네 어르신들이 마치 온 동네를 쓸어버릴듯이, 약속이나 한 듯 각자 마당을 비질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나무들은 한 계절 내내 옷을 벗어 던지고 동네 어르신들은 끝없을 거 같은 계절과 전투적으로 맞서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농경사회의 아들, 딸들은 그렇게 미련하지 않았다. 감나무집은 감나무 잎만 쓰는 게 아니고, 담쟁이 집은 담쟁이 잎만 쓰는 게 아니다. 그저 자기 마당을 쓸며 각자의 일을 하는데 모두가 편안하다. 눈짓 한 번 나누지 않고 돌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