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건축사’가 엄마로 산다는 것은..
창사이로 스며든 아침 햇살을 받으며 귓속말로 아이의 아침을 달콤하게 여는 것은 하루를 즐기기 위한 삶의 서곡이다. 이처럼 삶의 여유와 즐거움이 맘껏 베어 나오는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내 아이지만, 육아에 대한 자세가 마음처럼 되지 않는 많은 엄마들의 로망일 것이다. 비단 이러한 즐거움에 대한 갈망은 여성건축사라도 엄마라면 예외는 아닐 터이다.
건축사사무소 근무자라면 모두가 5분대기조를 연상할 수 있는 근무환경. 이런 환경 속에서 ‘여성건축사’는 자기개발의 시간은 물론 결혼과 함께 육아의 책임감과 중압감 속에서 일을 병행해야 하는 현실과 만나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음은 건축계에 있는 여성건축사라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현실에서 양자를 함께 취하고 그 무엇도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될 수 없는 것이 여성건축사들이 가지는 자존감이다. 그렇다 보니 일에서 밀린 육아의 문제에 있어서 아픔이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 지금도 가슴 속 깊이 저려오는 아픈 경험이 있다. 큰아이가 4살일 때였던 것 같다. 연일 야근에 항상 아이의 자는 얼굴만 보다가 토요일 낮 환한 시간에 퇴근을 하게 되었다. 깨어 있는 아이를 보니 어찌나 반가운지..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달려가 두 팔 벌려 아이를 안고자 했다. 그런데 아이는 나를 보고 낯가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민망하고 당황스러웠던지, 지금도 가슴 한 켠이 아프도록 시리다. 그러나 이런 일이 어디 나 혼자만 겪는 엄마로서의 슬픔이겠는가? 선배여성건축사들도 비슷하게나마 한 번씩은 겪었을 일일 터, 엄마의 슬픔으로 묻어둘 수 밖에...
그러나 세상에서 오직 소중한 내 아이만이 줄 수 있는 신선한 충격인 육아의 기쁨은 아이들이 자라 학업동반자로서 함께 하지 못할 때 엄마의 슬픔과 아이의 고통으로 자라나 더 이상 혼자서 묻을 수 없게 된다. 간혹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엄마의 훌륭한 정보력은 아니더라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만이라도 보장될 수 있다면 하는 절절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집에 있어서 아이와 견원지간이 되는 재택 엄마들보다는 아이와 사이가 좋으니 이 또한 분명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리고 아이는 아이대로 본인 인생항로의 선장이 되어야 하니 조금은 고달프지만 선장연습은 충분히 하고 있는 셈이다.
후배여성건축사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육아나 가정 내 대소사 등을 생각하면 측은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이를 모두 통과하고 며느리, 딸, 엄마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시킨 선배여성건축사들의 지혜의 샘에 대해서는 절로 감탄이 우러나온다.
우리나라 여성건축사들의 역할모델은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라고 한 조선시대 양사언의 대승적 자세와 ‘모든 일에 최고로 열심히 한다.’는 힐러리의 열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후배여성건축사들은 육아나 일의 병행에 대한 다가오지 않은 사실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육아에 대한 대범하고 유연한 자세, 일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을 함께 병행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가지길 바란다. 나는 항상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준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24시간이라는 동일한 시간을 공평하게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력과 효율이라는 개개인의 능력을 다르게 하여 인간이 시간의 공평성에 의존하지 못하도록 하셨다고. 열심히 하는 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절대 공평하지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