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건축의장 서설(24) - 우리나라 석탑은 똑바로 놓인 게 하나도 없네!

2010-10-01     김홍식 명지대 건축대학 교수

언젠가 내가 순천 선암사에 들렸더니 대웅전 앞 3층 석탑을 해체 보수하고 있었다. 탑 안에서는 사리장치가 나왔기 때문에 도굴이 되지 않은 몇 안 되는 탑으로 많은 문화재 관계자들이 방문하고 있었다. 사리함 안에 고려시기 도자기가 비단에 싸여 있고 그 안에 통일신라 때 사리장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말하자면 이 탑은 최초 통일신라시기에 조성되었다면 사적기의 기록처럼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중수되었고 조선조에도 다시 보수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 순천 선암사의 3층(유가계) 석탑(선암사는 천태종으로 알려짐)

그런데 문제는 탑이 비뚤어져 세워 있다는 것이다. 많이 비뚤어진 것은 아니지만 대웅전에 대해서 좌우대칭도 아니고 서로 간에도 똑바로 놓여 있지 않았다. 보수자는 이거 예전 사람들이 혹시 측량을 잘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걱정하기도 하고) 우리가 똑바로 고쳐 세우면 어떻겠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손 사레를 치면서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우리가 그 의도를 모르는 이상 그대로 두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결과는 그렇게 보수했을 것으로 안다.

우리나라의 사찰의 많은 석탑들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다. 구례 화엄사 5층석탑이 대표적인 예이다.

▲ 구례 화엄사 5층 석탑

심지어 제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은 석탑도 많다. 마곡사 석탑, 고창 선운사 석탑, 동래 범어사 석탑 등이다. 이것은 우선 절의 종교관(철학)이 달라진데 기인한다. 화엄사의 경우는 원래 일탑식 가람이었는데 종파가 선종으로 바뀌면서 자신의 종지를 기존의 축에 직각으로 배치하고 대신 비뚤어져 보이는 탑을 하나 더 세워서 좌우 대칭성을 유지하고 있다. 선운사의 경우는 마당 안에 무탑식으로 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탑을 한쪽으로 치운 것이다.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 눈에서 보이지 않는(있지만 없는) 세계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 마곡사 오층석탑(문화재관리국, 마곡사 실측조사보고서, 1989)

다음은 진입방식에 따라 석탑의 위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사진4> 석탑은 사찰의 주 건물인 금당(대웅전 등), 뒷산(진산)과 함께 주요한 3대 시선목표(시각점)로서, 이것을 앙시하는(우러러보는)데 있어 똑바로 놓을 것인가 아니면 비뚤어 놓을 것인가? 만약 비뚤어 둔다면 중앙에 무엇을 둘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복잡하다. 탑은 뾰쪽하므로 木형에 해당하고 금당은 대게 용마루가 웅장하므로 토형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진산은 무슨 형이면 상생하고 이것을 어떤 시각 상에 놓아야 할까? 이것이 일직선이면 공간이 정적이 될 것이고 비뚤어져 있으면 동적이긴 하지만 공간에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마당에 진입하는 관자의 위치(관측점)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미학(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이 달라졌을 때, 관측점을 달리하고 석탑의 위치를 바꿔서 전체적인 율동을 맞춘다. 관찰자가 중문을 통과하여 마당에 들어서게 할 것인가? 어두운 누마루 밑을 지나서 마당에 진입케 할 것인가? 아니면 누마루 밑을 막고 돌아들게 할 것인가? 어려운 문제인데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대체로 누마루 밑을 끼어오게 했는데 조선후기에 오면 거의가 누마루를 막고 돌아들게 만든다. 마당 모퉁이로 진입할 때 마당 공간이 움직이는 느낌을 받는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화엄사이다. 누마루 동쪽을 돌아들면 분명 좌우대칭이 아닌 전체 공간이 균형 있는 공간으로 느껴진다. 지금은 관광객을 위해 계단을 넓게 확장했기 때문에 그 느낌이 떨어지긴 하지만 만세루 동북쪽 끝 모퉁이에서 바라보는 화엄사 마당은 하나의 음악이 흐르는 듯 율동적이다.

▲ 동래 범어사 배치도(문화재관리국, 한국의 고건축, 1994)

서산 개심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누마루 동쪽 모퉁이를 돌아들면 하나 밖에 없는 고려 때 5층탑이 대웅전과 심검당(마당 서쪽에 있는 요사) 사이 빈 공간을 채워준다. 정적인 공간에서 동적인 공간으로 이동한다고나 할까? 면밀히 살펴보면 동쪽 요사채 뒤에 있는 건물이 대웅전에 바싹 다가가 있으며 서로 비뚤어져서 방문자를 대웅전 측문으로 안내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선운사의 경우는 반대이다. 동측면에서 진입하고 있기 때문에 한쪽 마당에 놓인 석탑이 마당 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대웅전 누마루 앞에 서 있으면 석탑은 간데 온데 없어지고 만다. 이런 것이 우리나라 건축의 묘미인 것으로 보인다. 선암사 석탑도 그런 이유로 비뚤어진 것인데 이것을 굳이 똑바로 놓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인 통도사 영산전 앞에 있는 3층 석탑이다. 이것은 원래 비뚤어져 놓였던 것을 어떤 분이 부러 전각 중심에 이전해서 복원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