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본래의미

2010-10-01     도창환 포항시청 시정건축가

현존하는 나는 과거의 내 생각의 결과이다. 헤겔의 방식대로 내 존재와 내 생각은 나누어지지 않는 하나이다. 나는 그렇게 내 생각대로 나를 만들고 확장시켜 왔으며 현재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무원건축가인 시정건축가가 되었다. 그동안 필자는 1992년부터 최근까지 경기대학교의 학부 건축설계디렉터와 인문학프로그램의 코디네이터를 하면서 인문학 강의를 열었다. 그러면 그들은 초청학과가 건축과라는 걸 안 후에는 한결같이 의아해 한다. 그러나 인류 문화사의 첫 장을 열면 항상 건축이 펼쳐지지 않던가?

특히 르네상스시대에는 건축은 모든 것이었다. 건축과 더불어 모든 예술이 함께 숨을 쉬던 시대에 왕의 건축가로 왕의 생각과 교류하며 건축과 관련예술로 펼쳐냈던 왕정건축가가 존재했었고, 600년이 지난 현대에 들어와서 나는 그 역할의 복원이라는 의미로 시정건축가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근대철학의 새로운 시대를 꿈꾸었던 헤겔은 그가 쌓아올린 최고의 가치인 객관적 논리학을 세계에 관한 학문적인 건축물이라는 건축 ‘구법’의 용어로 설명하고 있고, 현대의 기호학에서는 이해의 ‘관문’으로 건축과 영화라는 두 개의 영역을 지정해 놓고 있다. 한편으로는 현대철학의 대가인 들뢰즈는 인류업적 최고의 ‘예술’로 건축을 거론한 바가 있지 않았던가?

이렇게 건축은 모든 것이었다. 아니, 건축은 모든 것 뿐 아니라 그 모든 것에 관한 모든 것이었다. 건축과 연관된 모든 것 또는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이 건축이었기 때문이다. 건축을 생각하는 자체가 사유의 건축(컨셉)이고 건축을 만들어 가는 과정도 과정적 건축(형태)이며 그 결과인 건축물 자체도 디자인된 건축(공간)이었다.

그러나 현재도 그러한가? 현재도 건축이 모든 생각의 시작이 되고 모든 구축방법의 표본이 되고 모든 표현의 결과가 되고 있는가? 그리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과거의 건축가와 과거의 인류 그리고 과거라는 시간 그 자체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자문하려 한다. 우리는 그렇게 과거로부터 현재의 우리에게 주어진 건축에 관한 그 수많은 자격들을 과연 자랑스럽게 가질 만한가?

건축디자인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마다 나는 항상 마음이 불편하다. 왜냐하면 디자인의 어원 때문이다. 독일의 빌렘 플루서 교수는 디자인의 뜻인 계획 또는 의도의 의미는 ‘음모를 꾸미다’와 ‘현혹시키다’와 관련이 있는 라틴어의 어원에서 나오며, 속임수와 책략이라는 문맥 속에서 이해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플라톤에게 예술가는 이데아를 누설하는 사기꾼을 의미한다. 또 디자인과 관련하여 노자는 매번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디자인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키지 말라고 전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디자인의 영역에서 디자인의 개념은 다양하게 변해 가고 있다. 디자인은 그런 부정적인 의미로부터 스스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확장해 가며 인간의 정신과 물질 활동의 전체로 올라서기 위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다. 즉, 디자이너들은 이제 모든 것 위에 디자인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건축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건축은 그동안 잃어버렸던 모든 것 위에 있던 본래의 지위를 찾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디자인은 ‘좋은 생각의 실천’이어야 한다고 부산디자인센터 김재명 원장은 강조한다. 디자인은 존재하는 사물들의 욕망적 꾸밈이라는 그동안의 부정적인 뜻으로부터 우화되어 비로소 좋은 생각의 실천이라는 의미로 확장된다. 그리고 디자인 서적 ‘do good design, do good’ 에서는 좋은 디자인만 하려고 대들지 말고 좋은 생각과 좋은 일을 하라는 실천적 방식을 디자이너의 선언적 의미로 강조하기도 한다.

나는 이번 2010 ‘건축의 날’ 행사의 공동위원장으로, 또한 이창섭 집행위원장의 후원으로, 이 날을 ‘건축인 재능기부의 날’로 컨셉화 하면서 최소한의 대 사회적인 책임을 실천해 보고 싶었다. 건축이라는 본래의 뜻인 모든 것의 좋은 생각을 세우고 구축하고 디자인하는 실천적 원년이 되기를 기대했으며, 한편으로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에 걸맞는 새로운 개념의 건축디자인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우리들 모두에겐 아직도 준비가 덜 된 듯하다. 건축의 본래의미를 모두 함께 되찾고 또 건축이 모든 것 위에 있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