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재무재표”
직원과 단둘이 사무실을 꾸린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옆 건물에서 부동산사무실을 운영분께서 “왜 인사하러 오지 않느냐?”며, 이웃사촌을 먼저 알아봐주시는 배려에 얼른 찾아뵈었더니 탁자위에 족히 30부가 됨직한 도면들을 손으로 주루루 훑는다. “여자건축사가 처음이지만 ‘가설계’를 잘해주고 인사도 잘하면 설계를 맡길 수 있다”고 그간의 실적을 자랑하신다. 설계사와 건축사가 무엇이 다르며, 가설계와 계획설계를 모르는 분들 앞에서 제대로 신고식을 치렀다.
돌아서며 “계획설계를 할 경우는 건축주께 직접의뢰를 받고 ‘계획설계비’를 받으며 도면은 필요한 경우 사무실에서만 열람케 하여 부동산사무실 탁자위에 뒹구는 도면을 만들지 않겠다”는 나만의 운영방침(?)을 세우게 되었다.
지인이 있을 턱이 없는 곳에서 학교기본계획에 대한 의뢰가 들어 왔길래 협의차 들른 교육청에서도 나의 현주소가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기본계획은 교수님께서, 실시설계는 건축사가’ 하는 것으로 알고계시는 담당과 한 달 가까운 시간을 옥신각신하면서도 꼭 지역/여성/건축사가 기본계획을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겠다고 두 번째의 각오를 다졌다. 지금은 학교건축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2003년 12월경이면 지역 건축사로 3년차가 될 즈음이다.
천안의 경부고속도로로 부터의 초입부는 놀이랜드로 착각할 만큼 야경이 화려한 숙박촌이 자리하고 있다. 가로수로 가릴 수 없는 규모라 도시이미지에 대한 고민을 하던 차에 터미널광장의 건너편에 인지성이 높고 천안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법한 부지에 병의원을 위주로 한 건축물을 공모한단다. 모형까지 만들어서 기다리는데 미팅 스케줄이 도무지 잡히질 않고서 맴돌더니 소개하신 건축사님께서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데이트로 반납하고 나를 믿고 작업한 직원 앞에서 건축주에게 브리핑도 못하고 접어야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직접 찾아 나섰다. 지금은 완공되었다. 어떠한 사항에서도 직원을 실망시키거나 노력한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하게 되었다.
설계만 잘 하면 운영할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무수한 밤을 새워도 경제적인 현실과 거리를 좁힐 수가 없었다. 재무업무는 회계사사무실에 맡기면 된다는데 한 달씩 꾸려가기 급급한 경영에 대한 무지함이 참 부끄러웠다. 1년, 한 달, 하루의 사무실의 운영경비와 자금의 흐름까지 A4 한 장에 파악할 수 있는 표가 만들어 지기까지 2∼3년은 걸린 것 같다. 1인 2역·3역을 감당하는 소규모사무실에 이 위와 관련된 전담부서를 두기에 역부족이기에 누구나 쉽게 관리할 수 있고, 투명하게 알 수 있는 ‘일일재무재표’를 통해서 더 많은 시간을 낼 수가 있었다.
1999년 말 모든 것이 낯설었던 천안지역에 대한 두려움보다 꿈이 많았기에 시작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현실이라는 벽에 멈추고 서있는 듯하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모든 것이 벅차 보인다.
100년, 50년 후에는.... 디에스의 대표건축사는 누구일까?
10년, 5년, 3년, 1년으로 쪼개면서 회사와 나의 목표를 설정하고 또 이를 직원들과 공유하였다.
이제 이 지역 건축사로서 10년차, 하고픈 일은 참 많다. 더 많은 땀과 노력, 함께하는 직원들과 건축에 대한 꿈을 이뤄 나가며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리라. 하루하루 최선의 시간으로 20년이 지난 후 지난날들을 흡족히 되돌아볼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