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라, 첫사랑 물방울 벌레들아
잘가라,
첫사랑 물방울 벌레들아
- 조길성
방충망에 투명한
벌레들이 맺혀있는 것을 본 적 있다
오늘 문득
유리창에 기어 다니는
투명한 벌레들을 본다
살아있었구나
내 몸속에서 수많은 물방울들이
아우성치고 있다
나는 물방울의 숙주
언젠가 이 몸을 버리고 떠날 것을 안다
난 이 투명한 벌레들이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다
어쩌면 비구름 위에 떠있는
별들보다 오래되었을 것이다
불보다 더 뜨거운 존재일지도
너희들의 마음은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웜홀을 지나
다른 우주를 향하고 있다
혜성에 실려 왔을 거라는 학설을 지나
거꾸로 혜성 쪽을 향한다
첫사랑 그 아름다운 벌레들이
차창 가득 별똥별처럼 붐빈다
붐비며 내 몸속의 물방울들과
교감하고 있다
기다릴 것이다
유리창이 녹슬 때까지
그 녹물 속에서 피 묻은
첫사랑 물벌레들이 다시 눈 뜰 때까지
-『나는 보리밭으로 갈 것이다』조길성 시집 / 도서출판 b / 2017
“모르겠다”는 고백을 이 시인처럼 절묘하게 쓰는 예도 없는 것 같다. 차창 밖의 물방울들을 보며, 시인은 우리 몸속의 70%나 차지하고 있다는 물의 동조를 느낀다. 시인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 느낌은 그대로 인간이라는 생물종의 시원에 닿고, 그럴 때 유리창이 녹이 스는 먼 미래를 가늠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첫사랑’이란 단어가 갑자기 부상한다. 인류의 시원 속의 물방울들은 이 한 단어와 만나 갑자기 우리들 앞에 놓인다. 그것이 남녀 간의 사랑인지, 더 넓은 의미인지 알 수는 없다. 단지 피가 묻어있다. 그것만이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빛이다. <함성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