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
인류의 역사에는 수 없이 많은 영웅호걸과 각 분야의 명사들이 이름을 들어냈지만 대를 이어 이루는 명문가는 많지 않다. 조선 500년의 경우, 명문가 연구에 독보적인 조용헌 교수의 저서를 보아도 20여 집안이 등장 할 뿐이다.
조교수는 명문가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고풍(古風)의 종가를 유지하고 있어야하며, 출세한 후손이 있어야 하고, 대대로 내려오는 문집(文集)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한다. 또한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가(How to live), 즉 돈이나 벼슬만이 아닌 진 선 미에 부합되는 삶을 대대로 이어온 집안을 명문으로 정의하고 있다. ‘종가’란 단순한 건물이 아니고 가문의 정신이며 자존이라는 것이다. 건축인의 한 사람으로서 유쾌한 정의이다.
그렇다면 현대에서 명문가는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 가?
같은 일을 3대에 걸쳐 계승하면서 그 직업군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일단 그 분야의 명문가가 될 수 있는 필요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하니 유형의 조건에 무형의 조건이 하나 더 있어야 한다. 이는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또는 선비정신이다. **메디치기와 경주 최부잣집
로마 1,000년의 유지 비결은 지도층인 귀족들의 국민을 위한 재산 헌납등 공공정신과 전쟁에 솔선수범하는 투철한 도덕의식을 명예로 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며, 이후 기독정신과 함께 서양인 리더그룹의 삶의 지표가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139명의 장군 아들들이 참전하여 35명이 죽거나 부상당한 것이나, 연세대학교의 창립자 중 한분인 언더우드의 3대에 걸친 한국사랑은 좋은 본보기이다.
우리도 계백장군 결사대를 이길 수 있는 동인을 제공한 김품석 장군의 아들 관창의 화랑정신이 신라 천년을 이끌었고, ‘무릇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직 나라를 위하여 도모하고, 일을 당해서는 과감히 실행하고 환난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 선비의 마음 씀이다’ 라는 조광조의 선비론처럼, 극기복례(克己復禮)·신민(新民)의 바탕인 인의(仁義)의 유교정신에 바탕을 둔 선비정신이 조선 500년의 역사를 만들었다.
본지에 연재 중인 건축명문가의 김홍식 부친은 뇌물을 받지 않는다고 중학동창에게 맞아 고막이 터진 일이 있었는데, 금번 장순용 선친은 아들의 건축사 시험에 출제위원직을 사양했다 한다. 가히 의의 실천이다. 이후 명문가에는 어떤 일화가 있을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