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학유산 찾기 이제부터다
필자는 80여권의 책을 출간하는 동안 우리 유산의 과학성을 많이 다루어왔다. 사람들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기계 및 물리를 전공한 필자가 우리 유산의 과학성을 다루는 이유를 궁금해 한다. 고고학자나 역사학자, 민속학자들이 많이 다루고 있는 우리 유산에 대해 과학자가 손을 댄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모양이다.
1977년 필자가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입소할 때만해도 우리 유산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보잘 것 없었다. 과학 선진화를 기치로 내걸고 발족한 연구소였지만 조국 근대화를 강조하던 산업화 단계에 있던 당시의 우리나라 연구소의 프로젝트들은 하나하나가 곧바로 실용화되는 분야에 집중되었으므로 우리 유산의 과학성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필자와 우리 유산의 접목은 매우 우연하게 이루어졌다. 처음 연구소에 들어가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설이 좋다는 실험동(L3)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장치가 하나 있었다. 한국에서 1974년 즉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봉덕사신종’ 소위 ‘에밀레종’을 복제하여 미국에 선물로 보냈는데 바로 그 에밀레종 복제에 사용된 장치로 에밀레종 복제가 끝났지만 아직 해체하지 않은 것이다. ‘우정의 종’이라고 불리는 이 종은 현재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산 페드로에 있으며 영화 「유주얼서스펙트」에 배경으로도 등장했다.
그런데 복제 장치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 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이때 문뜩 머리에 들어온 것은 에밀레종은 771년에 제작되었으므로 1200여 년 전의 것인데, 신라 장인들이 어떻게 그렇게 커다란 에밀레종을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놀라움이었다.
청동으로 된 종을 만드는 방법 자체는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밀납으로 주형을 만들고 청동 주물을 주형에 부어 완성시키면 에밀레종과 같은 아름다운 문양 등을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 연구소에서 복제할 때도 동일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런데 복제에 참가했던 연구원들은 자동주물주입기, 크레인, 컴퓨터 등을 동원하여 신라 장인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여건에서 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에밀레종을 복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1200년 전 별 다른 장비도 없었던 신라 장인들은 무슨 기술과 방법을 사용했는지 궁금하여 곧바로 에밀레종 제작에 대한 논문이나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자료를 구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처음에 흥미를 가졌더라도 변변한 자료를 구할 수 없으므로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자료가 없다는 것을 역으로 생각한다면, 즉 누군가가 자료를 만든다면 그 분야에서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에밀레종을 보고 우리 유산을 연구하는 것이 과학도로서는 그야말로 노다지를 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지만 연구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연구소에서 직접 에밀레종을 연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에밀레종에 대한 충격을 잊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필자가 연구하는 건축 에너지 분야 중에서 우리 유산에 관련되는 것을 접목시키려고 했고 창호지를 첫 번째 과제로 삼았다. 놀라운 것은 창호지에 대한 실험 결과였다.
창호지는 바람과 빛을 통과시키고 습도를 조절하는 3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습기가 많으면 그것을 빨아들여 공기를 건조하게 하고, 공기가 건조하면 습기를 내뿜어 알맞은 습도를 유지하게 하는 신축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창호지를 흔히 ‘살아 있는 종이’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의 한지는 중국 역대 제왕의 진적을 기록하는 데에 고려의 종이만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유명했는데 건물의 창호로 사용하는 창호지의 열적 효과는 놀라웠다. 필자는 실험을 통해 단순하게 한지(창호지)를 사용한 2중 창호지 문이 에너지 파동 이래 많은 건물에서 사용되고 있는 값비싼 2중 창문(페어 그라스)보다 열적 효과가 높다는 실험 결과를 얻었다. 온돌의 열적 효과도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았으며, 조선 세종 때 만든 온실, 포석정의 유상곡수는 과학적 성과 그 자체였다. 그동안 우리가 늘 가까이 접하고 있어 간과하던 우리의 유산 속에 그 무엇보다도 높은 과학성이 있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이 외국 것에 비해 매우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것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보 부족이 과학성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폭풍과 같다는 20세기를 거쳐 21세기 첨단 과학시대로 들어선 현재 문화를 변화시키는 가장 주요한 동기는 과학기술의 발달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과학 기술 자체가 문화의 일부라고 설명해도 틀린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이 이미 과거부터 갖고 있었던 유ㆍ무형 유산에 대한 과학적 해석은 매우 시급하면서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유산은 미래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있어야 할 것’을 예견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우리 것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유산을 과학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하면 또 다시 새로운 유산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물론 과학과 인문학의 접목을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할 것이다. 우리 유산에서 과학성을 찾고 또 이를 발전시키는 것은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