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의 얼굴
2017-05-17 함성호 시인
백색의 얼굴
- 이재연
자의식과 자의식이
비슷해져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너의 키가 나를 훌쩍 넘어버리자
내 목소리의 색깔이 변하였다
듣고 싶지 않다고
늘 손에서 빠져나가던 그 아이 머리맡에
물방울처럼 달이 내려온다
터지지 않고 공중에 머물다
블라우스 속으로 몰래 들어와
하얗게 익는다
-『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
이재연 시집 / 실천문학사 / 2017년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이 있다. 한 화가가 아름다운 청년 도리안 그레이를 만나며 자신의 온 예술적 정열을 불태워 그의 초상을 완성한다. 청년은 그 초상을 보며 지나가는 말로, 자신은 늙지 않고 초상화 속의 자기가 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다. 그런데 그의 바램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도리안 그레이는 영원한 젊음을 얻는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도 이와 같지 않을까. 아이는 젊음을 향해 자라고 부모는 자식이 젊음을 향해 가면 갈수록 늙음에 가까워 진다. 나중에는 같이 늙어 가겠지만 부모에게 자식의 성장은 아마도 도리안 그레이의 젊음을 보는 초상화 속의 도리안 그레이가 아닐까? 소설속의 청년은 영원한 젊음을 얻었지만, 현실의 아이는 젊음을 향해 가며 동시에 늙음에 다가간다.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와 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