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감리업 등록기준(안)은 수정되어야 한다.
실측설계기술자에게 감리권을 되돌려라
문화재청은 ‘문화재수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시행규칙’(안)을 제정하면서 문화재수리에 의무감리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는 문화재 수리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법률로써 타당하지만 문제는 감리업 등록 기준안이 ‘보수기술자 또는 실측·설계기술자 중 1인과 실측·설계, 보수, 단청, 조경, 등 등 중 1인을 포함하여 2인 이상’으로 되어 있으며, 감리업의 대표자는 보수기술자 또는 실측·설계기술자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보수기술자나 실측·설계기술자는 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한 자에게 주어지는 문화재 수리기술자로서 보수기술자는 응시자격제한이 없는 반면에 실측·설계기술자는 건축사에게만 응시자격이 주어진다. 이는 실측과 설계가 고도의 전문지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이며 동시에 건축설계 행위는 건축사만이 할 수 있다는 건축사법과의 형평을 고려한 것이라 사료된다. 반면에 보수기술자의 자격요건에 학력제한이 없는 것은, 단순한 시공기술자로서 도제교육과 실무로 익힌 기능만으로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감리자’란 도면에 있는 대로 공사가 진행되는지를 확인하는 단순 업무가 아니라 설계자를 능가하는 전문지식을 갖추어, 설계내용과 의도를 현장에서 구현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전통건축을 복원 보수하기 위해서는 도면과 그에 표현하지 못한 부분을 상세하게 기술한 시방서가 있다. 이렇게 설계도서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경우에도 설계와 현장여건이 일치하지 않거나 해체과정에서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었을 경우, 이들 사실을 적절히 반영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고도의 지식과 능력을 갖춘 감리자가 필요한 것이다. 이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모든 악기의 특성을 알아야만 이들을 적절하게 구사하여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치와 같다. 특히 문화재는 문헌자료 조사와 실측조사결과, 변형원인의 진단과 보존방안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우선되어야만, 현장에서 연속적이고 일관성 있게 작업이 이루어 질 수 있고, 아울러 완성도 높은 시공품질과 효율적인 예산관리가 가능하다.
이렇게 볼 때, 감리를 누가 해야 하는지 명확해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시공기능을 위주로 검증된 보수기술자에게, 실측설계자와 동일한 자격으로 감리권한을 부여하려는 개정안은, 문화재 수리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란 명분이 무색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법령이다. 만약 이러한 발상이 보수기술자의 인력수급문제, 즉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해소할 목적이라면, 감리업의 등록요건에 일정 수 이상의 보수기술자를 확보하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아울러 염려되는 것은 ‘감리업’의 독립으로 기존 ‘실측설계업’이 병행하던 감리업무가 위축되지 않을 까 하는 점이다. 건축법은 설계자가 감리를 하게 되어있고, 주촉법 등에서 일정규모 이상만이 감리업에서 하게 되어 있는바, 그도 건축사사무소에서 겸 할 수 있다. 문화재의 특성과 시장규모 등으로 볼 때, 꼭 ‘감리업’의 신설이 필요한지는 신중하게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화재는 한번 훼손되면 복원이 어렵다. 서까래 하나를 깎아 교체하는 데도 전문적인 지식과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대한건축사협회는 이 문제를 국가의 문화재 보존 차원에서 재고하여 줄 것을 문화재청에 공문으로 접수시켰으며, 대한건축학회 및 한국건축가협회와 함께 공동대처할 것이라 한다. 나아가 국가건축정책위원회와 국토부 및 문광부와도 논의할 것이라 한다. 국가백년지대계를 위해서도 관철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