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타개 안간힘 ‘건설·엔지니어링’, 건축물 ‘설계·감리’ 기웃
정보통신공사업계 분리발주 방안 입법추진 재점화…건설사 “설계업 허용” 또 주장
“전문자격사와 동등 경쟁” 요구는 ‘자격제도 근간 부정하는 것’
경기불황을 맞아 위기 타개에 안간힘을 쓰는 엔지니어링·건설업계가 영역 확장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먼저 건축물 내의 정보통신설비를 건축물과 분리해 별도 발주토록 의무화하는 법률 개정안이 또 다시 발의됐다.
2011년, 2015년에 이어 벌써 세 번째다. 17일 국회에 따르면 송희경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은 1월 1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정보통신공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건축물의 건축 등과 관련된 정보통신공사에 대한 설계, 감리를 정보통신용역업자가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건축사업계, “건축물 내 정보통신설비 분리발주 의무화는 법안 개정취지와 맞지 않다”
송 의원은 제안 이유에서 “현행법에서는 정보통신공사의 설계, 감리의 범위에서 건축사법에 따른 ‘건축물의 건축 등’에 대한 설계 및 감리를 제외하고 있어 건축물 내 정보통신 설비의 설계·감리 업무는 건축사법에 따른 건축사만이 할 수 있다”며 “이러한 정보통신공사 설계·감리에 대한 시장진입 규제는 저가 하도급 구조와 수직적 협력관계를 고착화시켜 시장질서를 왜곡할 우려가 있고 설계·감리 품질저하로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작년 12월 12일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는 ‘정보통신공사 설계 및 감리 수행주체 개선 관련 협의’를 대한건축사협회(이하 사협)와 진행하며, 정보통신공사업법 제2조 제8호·제9호·제10호의 설계, 감리, 감리원의 정의에서 ‘「건축사법」 제4조에 따른 건축물의 건축 등’을 제외한다는 규정삭제 개정안을 사협에 주장, 요구한 바 있다. 올 1월 24일에는 조달청 ‘건축설계 하도급 개선안 관련 간담회’에서 낮은 대가와 지급시점이 늦다는 점을 거론하며 분리발주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건축사업계는 건축물 내 정보 통신설비 분리발주를 의무화하는 것은 법안이 밝힌 개정취지와 정면배치된다고 지적한다.
◆ 건축사협회 “정보통신공사업은 누구나 기능계정보통신기술자(기사·기능사) 고용해
사업가능한데, 전문자격사와 동등하게 경쟁하겠다는 주장 말 되냐”
엔지니어링업계 관련서류 안보고 도장 찍어주는 면허대여도 만연
특히 건축사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건축물의 품질 저하다. 건축통신설비를 포함한 건축물의 설계·감리업무는 건축사가 모든 책임을 지고 총괄 조정업무를 수행하면서 분야별 원활한 협력하에 건축물의 품질을 확보케 하고 있는데, 별도 분리 시에는 이를 담보할 수 없어서다. 건축설비는 정보통신, 기계, 전기, 소방 등 각각의 설비가 종합적으로 조정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부분은 사실 관계전문기술자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이다.
또 국민 부담도 커진다. 건축사협회(이하 사협) 정책연구실은 “건축주인 국민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각개 기술분야를 구분하여 발주하게 되면 건축주 직영형태가 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이럴 경우 비용이 대폭 상승해 국민 부담이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정보통신공사업계 요구가 자격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점도 문제다. 발의안은 제2조(정의) 용역업자에 건축사를 포함시켰다. 정보통신공사업법의 설계는 기능계 정보통신기술자(기사, 기능사)도 할 수 있는데 전문자격사와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겠다는 발상은 있을 수 없다는 게 건축사들의 주장이다.
한 A건축사는 “건축물의 설계·감리업무는 건축사법에 따른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한 건축사만이 할 수 있는데, 정보 통신공사업법상 일반인 누구나 기사자격 혹은 기능사 자격을 가진 사람을 고용해 사업등록을 하면 정보통신공사업을 할 수 있다”며 “책임질 능력·권한이 없는 자가 전문자격사와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겠다라는 발상은 자격제도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다”고 전했다.
전문자격사 없이 운영하는 사업자가 정보통신공사업상 설계업무를 할 수 있다 보니 면허대여도 만연돼 있다.
또 다른 B건축사도 “공공공사의 경우 일정 규모 이상은 기술사 날인을 요구하는데, 정보통신공사업을 하기 위해선 기술사자격자 고용은 의무사항이 아니라서 기술사 도장이 필요할 경우 업계에서는 보통 도장을 빌려온다”고 말했다. 관련 서류도 안보고 도장만 찍는 이른바 면허 대여다. B건축사는 “엔지니어링업계가 분리발주를 주장하기 이전에 엔지니어링 업계에 만연된 불법 기술사 자격증 대여를 근절하고 관련 서류를 정상적으로 검토·설계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게 먼저다”고 지적했다.
◆ 건축사 공적영역을 사적 이익집단이 지배하는 구조 있을 수 없는 일
아울러 1월 24일에는 한국건설경제산업학회와 대한건설협회, 국토연구원, 건축도시공간연구소 공동주최로 ‘2017년 건설산업의 10대 정책 이슈와 과제’ 세미나가 개최됐다. 이날 세미나에선 설계와 시공의 겸업 금지가 건설업 영업범위의 개선차원에서 폐지돼야 함이 거론됐다. 세미나에서 김영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생산효율성을 저해하고 경쟁을 제한하는 대표적 규제로 ‘건축·설계 진입제한’이 있는데, 건설산업 혁신유도 및 생산체계 합리적 개편을 위해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
그러나 건축사업계는 국가전문자격사인 건축사의 설계업무를 규제라고 보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반박한다. 의사의 ‘의료’, 약사의 ‘조제’, 변호사의 ‘법률’행위가 규제일 수 없듯이 국가에서 자격을 인정한 국가전문자격사인 건축사의 고유 업무인 설계도 규제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협 류치열 정책연구실장은 “불황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건설업계에서 틈만 나면 설계 진입제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며 “국가전문 자격사인 건축사의 공적영역을 사적 이익집단이 지배하는 구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전했다. 류 실장은 또 “공익을 위해 자격사가 배타적 권리를 갖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업무를 규제라 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