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적 사유(思惟), 시간을 잇다

「한옥, 건축학개론과 시로 지은 집」 장양순 지음, 기파랑

2017-02-03     백민석 편집국장

이야기는 삶 속에서 생겨나며 삶 속에서 전해진다. 이야기의 일종이며 근대 이후 가장 유력한 이야기 양식인 소설을 비롯한 산문과 시 등의 글들이 삶을 배경으로 하고 그 조건 하에서 작문되어져 소통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내용이 가상의 것이든 현실적인 것이든 간에, 창작과 독서의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각종 산문과 시 등의 글들은 삶의 조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글을 짓거나 읽는 데에서는 삶의 조건을 고려하는 작업을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삶을 조건 지우는 것은 단적으로 시간과 공간이다. 삶은 한정된 시간과 제한된 공간내에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어떠한 삶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월적 시공의 이야기 역시 삶의 공간을 투사한 수준의 것으로 볼 수 있다.
건축사 장양순이 지은 “한옥, 건축학개론과 시로 지은 집”은 시간과 공간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엮은 책이다. 과거 조상들의 지혜가 모여 있는 한옥 등 고건축을 주축으로 과거로부터 현대까지 우리의 삶 구석구석을 노래한 시들과 함께 엮었다.
단문 형식으로 순간을 표현하지만 시대를 초월해 독자에게 회자되는 일반적인 시(詩)와 한 시대를 풍미했고 여전히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한옥이라는 구축물(構築物)의 시간성(時間性)을 배경으로 하여 특정 시기 삶의 바탕이 되는 생활공간을 문자와 건축술로 표현한 구축물(構築物)의 공간성(空間性)을 적절하게 비교 구술(口述)하면서 독자를 설득해 내는 이 책의 구성은 저자의 꼼꼼함과 더불어 다른 책에서 보기 힘든 매력을 지니고 있다. 기존의 한옥(고건축)과 관련된 서적과는 달리 지식의 습득을 강요하지 않고 있으며 옴니버스(omnibus)식 구성으로 분량에 부담감을 줄인 구성 체계 역시 독자에 대한 배려다.
내용적으로 이 책은 ‘집’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시(詩)들은 ‘가족’이라는 인연을 창작의 근원으로 삼고 있음을 알려준다. 함께 생활했던 과거에 대한 회상과 현재의 모습 등이 한 인간으로서의 삶, 특히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사유로서 표현되는데 그 배경의 중심이 동네(마을), 한옥(집) 등의 장소(場所)다. 추상성을 지닌 공간(空間)이 장소(場所)로 치환되어 구체성을 가지면서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이는 글로 표현된 작가에 의해 구성된 자전적(自傳的)공간이 독자에 의해 재창조되면서 시(詩)와 건축(建築)이 접점(接點)을 이루는 부분이다. 이 부분을 파고 든 저자의 노력과 인내의 가치는 단 한 권의 책으로 평가받거나 보상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희망대로 이 책이 시대를 가로지른 조상들의 정교함과 적응력, 시인들의 다양한 시각과 사유(思惟)를 후학들이 이어받아 시대상황과 국민의 삶에 녹아드는 다양한 창작활동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면서 이런 기회를 제공해준 저자에게 감사와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