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이해

2009-09-16     장양순 건축사

오스카 와일드는 ‘연애감정이란 서로가 상대방을 오해하는데서 생겨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나친 표현이라 생각될지 모르나 신혼여행 중 이혼에 합의하는 요즈음 세태가 아니더라도, 신혼 때 부부싸움을 하다보면 이런 감정은 누구나 몇 번씩 들 때가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대부분 없어지고, 설령 오해가 생겼다 해도 싸움으로 이어지지 아니하고 방금 푸는 지혜를 갖게 되었다. 앙드레 지드의 말이 아니라도 ‘싸움은 오해를 더 크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해는 세상살이를 하면서 항상 일어나게 마련이어서, 어떻게 보면 세상사가 오해를 푸는 일로 채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수많은 인물들이 적의 이간책과 친구의 모함 등에 의하여 왕의 오해를 사게 됨으로써 억울한 죽음이나 처벌 받는 것을 사례가 수없이 많다.

유명 인사들과 위대한 사람들의 이면에는 치기와 부끄러운 사실들이 숨겨져 있지만 사람들은 한 면 만 보고 열광한다. 그래서 R,M, 릴케는 ‘명성이란 결국, 새로운 이름 주위에 모여든 오해의 총합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설파했으며, 에머슨도 ‘위대해 진다는 것은 오해를 받는다는 것이다’라고 했는지 모른다.

현대는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 시대이다. 한국 최고 유일의 건축사단체인 대한건축사협회의 홈피에도 자유게시판과 회원게시판을 통하여 많은 의견들이 개진되고 그 찬반이 뜨겁다. 이러한 현상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안쓰러운 것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을 매도하는 것이며, 그 대부분이 오해에서 생긴 일이란 것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은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 다음, 그래도 아니라면 상대가 설령 후배라 할지라도 정중하게 진의를 물어야하며, 그다음 본인의 의견과 무엇이 다른가를 설명함으로서 상대를 이해시켜야 한다. 자신의 의견을 소중히 한다면 남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마녀 사냥 식으로 상대를 매도하는 것은 속 좁은 편견이요, 스스로의 품격을 낮추는 일이 되는 것이다.

“오해란 이해의 이전 상태가 아닌가? 실상은 말 밖에 있는 것이고, 진리는 누가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는다.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이전에는 오해일 뿐이다”. 법정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