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패
지금 수원박물관에선 ‘소강 민관식 컬렉션’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5선 국회의원에 문교부장관과 대한체육회장 등을 두루 지낸 그의 컬렉션 품목에는 각국의 올림픽 성화봉, 1991년 세계탁구대회 남북단일팀 사인 탁구채, 손기정의 청동투구 복제품 등 희귀한 물품이 많다. 조성관 조선일보 기자는 5만 여 점에 달하는 그의 컬렉션에 감동하여, 부인 김영호 여사에게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고 ‘민관식 컬렉션 탐험기’를 썼다.
이 중 그의 명패에 대하여, ‘우리나라에선 어떤 사람이 높은 관직에 오르면 그 사람의 책상 앞에 검정색 자개 명패가 놓인다. 한국에서 검정색 자개 명패는 출세의 상징이다. 고위직에서 물러난 사람 집에 가면 으레 검정색 자개명패가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되어있다. 민관식 컬렉션에서는 출세의 상징인 검정색 자개명패 수 십 개가 한데 모아져 있는데,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 직위의 화려함과 다양함에 입을 다물기가 어렵다’고 기술하고 있다.
지금은 아파트가 주거의 주종을 이루고 있어 동호수로 끝나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서민들은 내 집 사서 이름 석자 문패 만들어 대문에 다는 것이 소원이었고, 감히 명패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예전 관공서는 ‘장’자만 달면 직급에 맞는 명패가 있었는데, 네임카드를 목에 거는 요즈음에는 독립적인 방을 갖게 되어야만 명패를 놓는 것 같다. 명패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은 국회인데, 이는 증인이나 발언하는 모든 사람 앞에 명패가 놓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회의원은 명패가 3개나 된다. 자기자리에 놓이는 것 외에도 출결용 명패가 있어 출석하면 백색바탕에 녹색 이름을 녹색바탕에 흰색글씨로 바꿔 놓는다. 그리고 투표할 때는 흰색바탕에 세로로 쓴 명패를 쓴다. 국회의원 노무현은 전두환 전 대통령 청문회에서 그에게 명패를 집어던져 이름 석자를 국민에게 각인시켰고, 청문회 스타에서 대통령까지 지내게 되었다.
건축사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업인들은 자기 사무소를 개업하면서 자격자 명칭과 함께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를 놓고 전문인으로서 성취감을 만끽하게 된다. 몇 주 전부터 건축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MBC의 수목 드라마 ‘개인의 취향’에서 주인공 전진우의 명패는 투명아크릴에 ‘소장 전진우’로 쓰여 있다. 그렇지 않아도 건축사를 설계사로 부르는 국민이 많다. 재질이야 시대를 따라간다 해도 소장 대신 건축사를 쓰기로 한지가 언제인데, 모처럼의 기회가 아쉽기만 하다. 더구나 유수한 건축사사무소가 제작지원을 하고 있는 마당에.